수그러드는 듯했던 ‘노란 조끼(Gilets jaunes)’ 시위대의 열기가 다시 타오르기 시작했다. 새해 첫 주말인 1월5일 토요일, 8차 시위를 위해 프랑스 전역에서 노란 조끼 시위대 5만여 명이 거리에 나섰다. 이날 시위대는 지게차를 이용해 파리 그르넬 거리에 위치한 정부청사 출입문을 부수고 진입했다. 뱅자맹 그리보 정부 대변인을 비롯한 몇몇 직원은 급히 집무실에서 대피했다.

프랑스 정부는 강경 대응에 나섰다. 각 지역 원형 교차로에 있는 시위대의 활동 거점을 강제로 진압했다.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콩코르드 광장에 온 시위대 대표 에리크 드루에를 불법시위 주동 명목으로 체포했다. 1월5일 그리보 대변인은 라디오 방송 〈프랑스 앵포〉에 출연해 “공격받은 것은 내가 아니라 프랑스 공화국이다”라고 말했다. 같은 날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역시 자신의 트위터에 “공화국을 공격하는 극단적 폭력을 규탄한다”라고 썼다. 마크롱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노란 조끼 시위대를 “분노에 찬 민중”이라고 불렀다. 현지에서는 이 표현이 시위에 더 불을 붙였다는 관측도 나온다.

 

ⓒReuter1월5일 프랑스 프로복싱 헤비급 챔피언 출신 공무원 크리스토프 데틴제(맨 오른쪽)가 시위 진압 경찰에 맞서고 있다.

그간 노란 조끼 시위대의 요구에 대해 프랑스 정부는 정책상 유연하게 접근해왔다. 지난해 12월5일 마크롱 대통령이 지시한 유류세 인상 취소가 대표적이다. 유류세 인상 정책은 노란 조끼 시위가 촉발된 직접적 계기이기도 하다. 12월4일 에두아르 필리프 총리는 유류세 인상을 6개월 유예한다고 발표했으나 시위대의 반발에 떠밀려 하루 만에 전면 취소로 방침을 바꾸었다. 이후에도 시위는 멎지 않았다. 12월8일 4차 시위에는 13만6000여 명이 모였다. 정부는 경찰 병력 8만9000명과 장갑차 12대를 투입했다. 이날 경찰은 파리 근방 톨게이트와 시위 장소를 봉쇄하고 시민들의 소지품을 수색했다. 정부는 폭력 시위를 하자는 SNS 게시글에 참여 의사를 밝힌 인물들을 추적했다. 파리에서만 920명, 프랑스 전역에서 1385명이 검문을 받았다. 노란 조끼 시위는 이제 정책 하나를 둘러싼 이견의 차원을 넘어섰다.

 

유류세 인상 취소 조치가 먹혀들지 않자 12월10일 마크롱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그는 시국을 “국가의 사회·경제적 위기”라고 선언했다. 마크롱 대통령이 제안한 대책은 최저임금 월 100유로 인상, 퇴직자들의 사회복지 기여금(CSG) 인상 철회, 추가근로수당 면세, 그리고 연말 상여금 지급 등 네 가지다.
대통령이 ‘깜짝 제안’을 내놓은 직후 정치권은 다양한 시각에서 비판을 쏟아냈다. 진보 정당인 프랑스 앵수미즈(굴복하지 않는 프랑스)의 에리크 코크렐 의원은 “국회의 논의도 없이 정부가 예산을 그런 식으로 바꿀 수는 없다”라고 비판했다. 사회당 올리비에 포르 의원도 “대통령 제안은 이미 봤던 것이다. 새로운 건 하나도 없다”라고 말했다. 보수 정당인 공화당 출신 다미앙 아바드 도의원은 “미래의 세금 인상을 선언하는 것과 마찬가지다”라고 평했다. 국민연합(RN) 대변인 세바스티앙 셰뉘는 “결국 정책 방향은 바뀌지 않았다. 문제는 정부 시스템이다”라고 말했다.

 

ⓒAP Photo지난해 12월31일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신년사를 발표하는 모습.

언론도 비판적이었다. 마크롱 대통령이 제안하는 정책이, 노란 조끼 시위대가 요구해왔던 ‘구매력 상승’에 도움이 될지 의혹을 품는 이들이 적지 않다. 가장 눈에 띄는 최저임금 인상 정책이 일종의 ‘눈속임’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프랑스 앵포〉는 12월11일 ‘왜 마크롱이 약속한 최저임금 인상은 사실상 인상이 아닌가’라는 기사에서 “마크롱 대통령의 최저임금 인상 은 국가가 지급하는 근로장려금 인상일 뿐이다”라고 비판했다. 이 기사에 따르면 마크롱 대통령이 제안한 월 최저임금 인상분 100유로에는 근로장려금이 들어가 있다. 고용주가 지급하는 임금과 달리, 국가가 지급하는 근로장려금은 퇴직 시 연금 산정에 들어가지 않는다. 근로장려금 인상은 이미 2021년까지 순차적으로 인상이 예정되어 있었다. 국민 처지에서 순수한 임금 인상이라고 보기에 찜찜한 구석이 있다. 지난해 12월10~11일 〈프랑스 앵포〉와 〈르피가로〉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59%는 “대통령에게 설득되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마크롱, 시위대 분열에 성공했다” 시각도

대통령 제안을 시행하는 데에 드는 예산이 감당 가능한 규모인지도 큰 문제다. 12월11일 〈프랑스 2〉 뉴스에서는 학계 반응을 소개했다. “몇몇 경제학자는 정부가 예산 150억 유로 상당을 노란 조끼 시위대에 양보했다고 분석한다. 대통령이 제안한 정책을 시행하면 당초 내년 재정적자 규모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2.8%로 예상되었는데 3.4%로 급증할 것이다.”

유럽연합은 회원국들에 재정 규약을 통해 재정적자 규모를 GDP의 3% 이내로 제한하고 있다. 프랑스는 2008년부터 이 ‘3% 룰’을 지키지 못하다가 2018년 재정적자 규모를 GDP 대비 2.7%로 줄였다. 12월16일 필리프 총리는 〈레제코〉와의 인터뷰에서 “(대통령 제안을 정책에 반영했을 때) 재정적자 규모가 증가할 것이다. 2019년 재정적자 규모가 GDP 대비 3.2% 정도 예상된다”라고 말했다.

마크롱 대통령의 제안에 대한 긍정적 반응도 없지는 않다. 연말 들어 시위대 인원이 주춤한 데에 영향을 줬다는 분석도 나온다.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원(CNRS) 소속 정치학자 올리비에 코스타는 〈프랑스 앵포〉에 출연해 “마크롱 대통령이 시위대를 분열시키고 여론을 돌리는 데 성공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시위대 내 평화주의적 견해를 대변하는 ‘자유로운 노란 조끼(Gilets jaunes libres)’에서 호의적 반응을 내놓았다. 대통령의 연설 다음 날인 12월11일, 자유로운 노란 조끼의 뱅자맹 코시 대변인은 “정부가 손을 내밀었다. 우리는 구매력 상승을 위한 사회적 협상과 대화를 우선시한다”라고 말했다. 이날 ‘자유로운 노란 조끼’는 토요일 시위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마크롱 정부에 대한 프랑스 국민의 불신은 여전하다. 노란 조끼 시위대 내부나, 정부 경제정책의 차원을 뛰어넘는다고 볼 여지도 있다. 12월28일 프랑스 라디오 채널 〈RTL〉이 여론조사 기관 해리스 인터랙티브에 의뢰해 수행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3명 중 한 명만이 정부를 신임한다고 답변했으며, 47%가 2019년 전망이 긍정적이라고 밝혔다. 마크롱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 뒤에 조사한, 지난해 12월16일 프랑스여론연구소(IFOP) 조사에서도 응답자 23%만이 현 정부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전국의 노란 조끼 시위대는 이제 점점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다. 새해 첫 시위에서 이들은 ‘감세로 인한 구매력 상승’과 ‘부유세(ISF) 부활’, 그리고 ‘국민투표’를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5만명의 시위대와 격하게 부딪치며 새해를 맞은 마크롱 정부가 여론의 지지를 다시 얻을 수 있을까.

기자명 파리∙이유경 통신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