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신선영
“저한테 말씀하시면 됩니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책임자의 모습은 자주 남성으로 상상됐다. 눈앞의 여성은 종종 투명인간 취급을 받았다. 가부장적이고 남성 목회자 중심인 한국 교회의 의사 결정 과정에서 여성은 그렇게 배제되곤 했다. 김애희씨(41)는 그 틈을 비집고 나온 ‘모난 돌’이었다. 대형 교회 세습·비리 등 교회 내 문제에 앞장서고 있는 개신교 시민단체인 교회개혁실천연대 실무자로 2004년 활동을 시작한 김씨는 2013년 ‘평신도, 실무자 출신, 여성’으로는 최초로 사무국장에 발탁됐다. 이전까지만 해도 남성 목회자들이 돌아가며 맡아왔던 자리다. 그 안에서 김씨는 여성 목사 임명이나 교회 내 성평등처럼 그동안 눈길을 끌지 못했던 이슈와 관련해 꾸준히 목소리를 내왔다.

지난해부터는 아예 본격적으로 교회 내 성폭력 문제에 팔을 걷어붙였다. 2018년 7월 문을 연 기독교반성폭력센터 센터장을 맡았다. 센터는 삼일교회가 전병욱 목사의 성폭력 사건에 도의적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 기금을 지원하며 만들어졌다. “개신교 진영 안에 성폭력상담소가 아예 없는 건 아닌데 문제를 신앙의 프레임 안에서 해석하고 해결하려는 경향이 너무 강했어요. 센터를 열면서, 또 운영하면서 다짐한 게 ‘종교계 내부 기관으로 복무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었어요. 기존 교계 질서에 지배받거나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해 계속 긴장하고 있어요.” 김씨는 센터 활동이 ‘종교란 무엇인가’에 대한 하나의 대답이 되기를 바란다.

2018년 센터에 접수된 상담 사례는 총 86건으로 목회자와 평신도 간 성폭력 문제가 절반 이상이었다. 이른바 ‘이단’으로 분류되는 교회에서 벌어진 성폭력보다 일반 교회에서 벌어진 성폭력 수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전체 상담 건수 중 4분의 1 정도는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성폭력 사건이었다.


교회 내 성폭력 문제는 교회라는 공간의 특수성을 세심하게 고려해야 한다. 생존자 대부분은 가해자에 대한 민·형사상 처벌만큼이나 교회법에 따라 목사직 박탈 등의 처분을 바란다. 교회 내 헌법기구인 재판국을 통해 재판을 열기 위해서는 별도의 절차가 필요하기 때문에 기존 단체가 지원해줄 수 없는 공백이 생긴다. 센터의 지원도 힘에 부치긴 마찬가지다. “재판 한 번 열려면 감리교 같은 경우는 700만원이 필요해요. 피해자가 재판 비용을 감당해야 하는 부담을 완화하는 방법을 찾아보려고 해요.” 2기까지 진행된 생존자 글쓰기 자조모임도 계속 이어갈 예정이다. 상반기 중 결과물을 책으로 묶을 계획이다.

기자명 장일호 기자 다른기사 보기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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