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수습기자 시절 〈기자협회보〉 인터뷰에 응한 적이 있다. 입사 동기인 김은지·임지영 기자와 함께였다. 당시 기사는 “〈시사IN〉 공채 2기 수습기자 합격자 전원이 여기자여서 화제다”로 시작된다. 속으로 엄청 구시렁거렸던 기억이 난다. ‘때가 어느 땐데 공채에서 여성만 뽑았다고 기삿거리가 되나.’
〈시사IN〉이 1기부터 6기까지 공채로 선발한 기자 13명 중 남성은 단 3명이다. 선배들은 “성적순으로 뽑으면” 그렇게 된다고 했다. 〈시사IN〉은 지난해 공채에서도 전원 여성 기자를 선발했다. 이 안에서 여성이라서 차별받는 일은 없었다. 이처럼 안온한 조직 안에 있는 내가 ‘진짜 뭘 몰랐구나’ 하고 깨달은 건 일하는 여성들을 취재원으로 만나면서부터였다.
남녀고용평등법 제7조는 ‘사업주는 근로자를 모집하거나 채용할 때 남녀를 차별해서는 안 된다’라고 못 박고 있지만 대부분의 기업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KB국민은행·KEB하나은행·신한은행처럼 고용시장에서 성비 불균형이 크지 않은 업종으로 인식되는 은행권은 물론이고, 대한석탄공사·한국가스안전공사 같은 공기업도 예외 없었다. 이들 기업은 여성을 고의로 탈락시키기 위해 면접 점수를 조작하거나, 미리 최종 합격자 남녀 성비를 설정해뒀다. 지난해 10월 KB국민은행은 채용 성차별에 대한 1심 판결에서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다. “500만원 내가 줄 테니 제대로 처벌하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흔히 여성 일자리 문제를 이야기할 때 유리천장이나 경력 단절 등을 거론하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일자리 진입 자체의 어려움이다. ‘유리천장’이 깨졌다느니, ‘여풍’이 거세다느니 하는 일자리도 마찬가지다. 이런 일자리는 대부분 고시로 선발되는 공직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성이 전체의 절반도 되지 않으며, 임원급으로 올라갈수록 여성은 찾아보기 힘들다. 여성의 사회 진출을 돕기 위해 도입한 양성평등채용목표제를 통해 오히려 남성이 혜택을 보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확대되고 있다고 말해도 될까? 성평등한 일자리가 그만큼 적다고 해석하는 게 더 옳지 않을까? ‘여풍’ 같은 단어가 없어지는 사회를 원한다. 그러니 더 많은 성평등한 일자리를 마련하라고 요구할 수밖에 없다. 혜택이 아니라 정책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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