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7월 대통령 직속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문재인 정부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서 ‘국정과제 3단계 이행계획’을 밝혔다. 대통령 임기 5년을 혁신기·도약기·안정기 세 단계로 나눴다. 이 계획에 따르면 20개월간의 혁신기를 마치고 도약기가 시작되는 해가 2019년이다. ‘공식적인 2기’가 시작된 셈이다.


1기인 혁신기의 주된 업무는 적폐 청산이었다. 국정기획위는 “적폐 청산, 반부패·권력기관 개혁, 경제민주화”를 과제로 꼽았다. 혁신기가 ‘정상화’ 과정이라면 도약기는 정책의 성과를 내는 시기다. “일자리, 4차 산업혁명, 사회적 경제, 국민안전, 자치분권, 조세·재정개혁, 국방개혁”을 도약기에 추진할 대표 정책으로 꼽았다.


국정과제 3단계 이행계획 중 눈여겨볼 만한 부분은 ‘국민 지지’라는 용어다. 혁신기에는 빠졌고 도약기와 안정기에는 들어갔다. 적폐 청산 등 혁신기 추진 과제는 2016년 말 촛불집회로 정당성이 확보된다. 그러나 도약기부터 본격적으로 추진할 경제·사회 정책들도 그만한 공감대를 얻을지는 불분명하다. 문재인 정부는 “국민 지지를 통한 과제별 체감 성과 본격 창출”이라는 선순환을 도약기의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고 본다.

ⓒ연합뉴스문재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위) 모두발언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는 ‘경제(35회)’였다. ‘혁신’은 21회 나왔다.
정부는 국민 지지라는 동력을 꽤 잃은 채로 2기를 맞았다. 2018년 5월 한국갤럽 조사에서 77%에 달하던 대통령 국정 지지율이 12월에는 46%까지 떨어졌다. 주로 경제가 문제로 꼽힌다. 한국갤럽이 지난해 12월28일 발표한 ‘한국인이 보는 2019년’에서 새해 살림살이 전망을 낙관하는 응답자는 11%다. 지난 40년간 나온 조사 결과 중 2016년과 더불어 최저치다.

1월10일 열린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은 2기를 앞둔 청와대의 인식을 가늠할 수 있는 자리였다. 신년 모두발언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는 ‘경제(35회)’였다. 문 대통령은 고용지표, 자영업자, 제조업, 분배 등 여러 경제 문제를 열거하며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신뢰가 낮아졌다. 상황을 매우 엄중하게 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사람 중심 경제’와 ‘포용적 성장’이라는 경제정책의 기조를 바꾸지 않겠다고 했다. “경제정책의 변화는 분명 두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가야 할 길입니다.”
일문일답에서 비판적 질문이 나오자 문 대통령은 더 강하게 소신을 드러냈다. 한 기자가 “경제 분야에서 대통령과 생각이 다르고 솔직하게 쓴소리를 할 인사를 등용할 생각이 있는가?”라고 묻자 “정부 경제정책 기조가 토론을 통해 결정됐는데도 그와 다른 개인적 생각을 주장하는 분이라면 원팀(one team)으로 활동하기 어렵다”라고 답했다. 뒤이어 다른 기자는 “정책 기조를 바꾸지 않으려는 자신감, 근거는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문 대통령은 “양극화와 불평등 구조를 바꾸지 않고서는 지속 가능한 성장이 불가능하다. 그에 대해 신년사(모두발언)를 통해 30분 내내 말씀드렸다”라고 답했다.

정부 경제정책이 신임을 잃은 원인으로 문재인 대통령은 ‘체감’을 꼽았다. “올해는 국민의 삶 속에서 정부의 경제정책이 옳은 방향이라는 것을 확실히 체감되도록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문 대통령은 “일자리가 기대만큼 늘지 못했기 때문에 국민들이 체감하는 고용 상황이 여전히 어렵다”는 게 원인이라고 봤다. 대통령은 “제조업의 오랜 부진”이 근본 문제라고 말했다.

대책은 ‘혁신’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2018년 신년사에서 혁신이라는 단어는 9차례 나왔는데 이번 신년사에는 21차례 나왔다. 문재인 정부가 그려놓은 혁신의 청사진을 설명하는 데에 시간을 많이 할애했다. 전략적 혁신산업을 하나하나 열거해 예산 투자 규모를 구체적으로 밝혔다. 지난해 제정된 인터넷 전문은행특례법 등을 언급하며 규제 혁신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정부의 경제 인식을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사 발언에 기초해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은 옳다. 국민이 그렇게 느끼지 않는 이유는 일자리가 충분히 늘지 않아서다. 제조업 위기가 근본 원인이다. 이를 타개하려면 혁신이 필요하다.’


정무 기능 강화해 여야 협치 유도

혁신은 문재인 정부가 2기(도약기) 목표로 삼았던 ‘과제별 체감성과 본격 창출’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 1기의 적폐 청산과 달리, 2기 키워드인 혁신은 각론으로 들어갈수록 난점이 많다. 적폐 청산은 민주주의나 법치와 같은 가치가 기준이 되는 반면, 혁신이 무엇인지는 합의하기가 더 어렵다. 한정된 예산을 어떤 산업에 투자해야 할지, 규제 법안을 없애는 게 옳은지 결정하는 과정은 훨씬 첨예한 대립을 초래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이 혁신 사례로 꼽은 ‘인터넷 전문은행특례법 제정’은 은산분리 원칙 완화라는 논쟁을 낳았다. 지난해 직접 현장을 찾았던 의료기기 규제 혁신 역시 안전성 측면에서 비판을 샀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 2기에서는 제도와 예산을 다루며 갈등을 조정하는 국회의 역할이 더 중요해질 가능성이 높다. 문재인 대통령의 오랜 측근인 김경수 경남도지사(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는 2017년 문 대통령 취임 100일께 〈시사IN〉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1기는 국민과의 협치가 핵심이다. 대통령과 행정부가 중심이 되어서 혁신을 추진하는 게 1기다. 2기는 도약기인데, 도약하려면 확실하게 제도화하고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 그때는 여야 협치가 지금보다 더 중요할 것이다(〈시사IN〉 제518호 ‘가장 잘한 인사는 김상조 위원장’ 기사 참조).

한 여당 관계자는 청와대 참모진 개편도 같은 맥락에서 풀이했다. 그가 주목하는 인사는 강기정 신임 정무수석이었다. “‘친문’은 표면적 분석이다. 향후 추진될 주요 법안이나 예산 편성, 개헌까지도 국회 없이는 돌아가지 않는다. 3선 의원 출신 강기정 수석을 임명한 것을 보면 청와대에서도 정무 강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 일문일답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강기정 의원도 마찬가지로 3선 의원을 거쳤고 (중략) 정무 기능을 강화했다고 봐달라”고 말했다.


2기를 여는 문재인 정부는 전환이 아니라 보완을 천명했다.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은 “경제와 민생을 최우선으로 하는 대통령 의지가 잘 드러난 회견이었다”라고 평했다. 반면 자유한국당은 “국민을 버리고 마이웨이 경제정책을 고집”한다고 비판했다. ‘국정과제 3단계 이행계획’상 문재인 정부 2기는 2020년 말까지다. 하지만 2020년 4월 총선 결과가 1차 성적표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총선에서 여당이 승리한다면 청와대는 더욱 힘을 받을 것이다. 반면 국정기획위 복안과 달리 ‘국민 지지’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다면 연말까지 ‘도약기’가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아마 그다음 단계가 ‘안정기’로 불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