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에는 2018년에 비해 깜짝 놀랄 만한 메시지가 없었다. 국제사회의 제재와 압박에도 자립경제와 자력갱생을 통해 경제 전 분야에서 나름대로 성과를 이루었다는 자평과 더불어, 인민 생활 향상을 새해 목표로 설정하고 이를 위한 다방면의 개혁을 독려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군수산업도 민수 부문의 경제성장과 주민의 생활수준 향상에 공헌해야 한다고 강조한 대목 역시 같은 맥락이다.

때로는 한 말보다 하지 않은 말이 더 흥미롭다. 올해 신년사에서는 핵 단추, 침략 세력, 전쟁 도발이라는 자극적이고도 상투적인 용어들이 사라졌다. 남북관계에 대해서는 지난해 ‘경이로운 성과’를 이룩했다고 평가하면서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다자협상을 제안하는가 하면, 전제조건과 대가 없는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를 촉구하기도 했다. 나아가 남북관계가 대전환을 이룬 것처럼 북·미 관계도 개선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한국·미국 정부가 김정은 신년사에 우호적인 이유

김 위원장은 이번 신년사에서 ‘완전한 비핵화’를 분명히 언급하며 “더 이상 핵무기는 만들지도 시험하지도, 사용·전파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내외에 천명하고 실천적 조치를 취해왔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조건을 제시했다. 새로운 북·미 관계 수립, 항구적이며 공고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그리고 상호 인정과 존중, 공정한 제안에 따른 협상을 통해야만 완전한 비핵화의 길로 가겠다는 것이다. 반대로 일방적 압박과 제재를 가하면 “부득불 나라의 자주권과 국가의 최고 이익을 수호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이룩하기 위한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될 수도 있다”라고 경고성 발언도 남겼다.

신년사에 대한 한국과 미국 정부의 반응은 우호적이다. 물론 이는 단순히 그 내용뿐 아니라 신년사를 전후한 북한의 외교 행보도 한몫했을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연말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내 관계 개선 의지를 다시 한번 밝혔다. 두 지도자와 친근감 혹은 신뢰를 유지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판단 때문이었을 것이다.

비판적 시각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진들은 이번 신년사가 “핵보유국 선언을 한 것”이라고 정의한다. 그 자신감을 바탕으로 “핵 포기 의사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한 신년사”라는 해석이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빅터 차 한국석좌도 이번 신년사를 통해 북한이 “우리를 책임 있는 핵보유국으로 받아들여주면 거래할 수 있다”라는 의사를 표명한 것이라 본다. 에번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태 담당 부차관보는 북한이 이번 신년사에서 미국이 요구하는 ‘완전한 비핵화’에 동의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었다며 “평양은 핵무기를 보유한 가운데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바라고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평양 조선중앙통신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1월1일 발표한 2019년 신년사에서 ‘기존 핵무기의 비핵화 과정이 험난할 것’이라는 점을 시사했다.

 

 

 


필자는 몇몇 표현을 극도로 확대해석하는 이러한 평가에 동의하기 어렵다. 텍스트 전체를 있는 그대로 보는 대신, 일부 내용만을 뽑아 그간의 자신들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활용하는 방식에 가깝기 때문이다. 북한은 2016년부터 줄곧 ‘책임 있는 핵보유국’이라고 천명해왔다. 물론 이번 신년사에서 이러한 입장을 백지화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아니나, 행동 대 행동 원칙에 따라 공정한 협상이 이뤄지면 완전한 비핵화를 할 수 있다고 명백히 표현한 것도 사실이다. 아직 협상 관련 논의가 진행되고 있음을 감안하면, 평양이 단숨에 그간의 모든 언급을 무효화하지 않았다고 해서 회의적 해석만을 강조하는 게 과연 적절한지 의문이 든다.

가장 염려스러운 것은 이러한 회의론이 협상 자체의 무용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북한을 비핵화의 길로 이끄는 것이지, 비핵화 가능성이 없다고 포기하는 게 아니다. 이미 핵 보유를 선언했던 평양이 이제 협상을 통해 완전한 비핵화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면, 당연히 이를 지렛대로 활용해 협상의 강도를 높여나가는 게 순리이자 상식 아니겠는가. 회의론 혹은 무용론으로 점철된 일각의 신년사 평가를 납득하기 어려운 결정적인 이유다.

기자명 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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