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동’이라는 지명을 들으면 어떤 게 떠오르는가? 꽤 많은 이들은 조선족 혹은 중국 사람이 생각날 것 같다. 또 누군가는 지하철 7호선에서 2호선으로 갈아타는 긴 에스컬레이터를, 그 길을 올라갈 때 바깥으로 얼핏 보이는 원색의 직업소개소 간판을 떠올리지 않을까. 그런데 대림동을 음식으로 기억하는 이들도 많다. 양꼬치와 칭다오(맥주)에서 마라탕이나 훠궈까지. 그래서 음식점 관련 데이터로 대림동을 들여다보았다.
서울에서 운영 중인 음식점은 15만 개를 약간 넘는다(2019년 1월 기준). 이 중 프랜차이즈가 차지하는 비율은 얼마나 될까? ‘공정거래위원회 가맹사업시스템에 등록된 영업표지(브랜드)가 상호에 포함된 음식점’ 개수는 1만 개 정도로, 전체의 6%를 약간 넘는 수준이다. 음식점 15개 중 1개가 프랜차이즈 음식점인 셈이다.
프랜차이즈는 브랜드 규모나 정체성에 따라 나름의 출점 전략을 가지고 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프랜차이즈는 일반적으로 유동인구와 주변 사업체, 거주 인구 규모를 따진다. 대림역 주변 사업체 분포와 스타벅스 입지를 한번 살펴보자(아래 〈그림 1〉 참조). 대개 진한 색으로 표시된 사업체 밀집지역에는 스타벅스가 촘촘히 들어서 있고, 거주지 인근에도 드물지 않게 들어가 있다. 대림역 주변의 다른 지하철역 주위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대림역 주변에는? 없다.
서울에 존재하는 프랜차이즈 음식점 지도를 그려보면, 자연스럽게 유동인구가 집중된 주요 지하철역 주변에 프랜차이즈 밀집지가 나타난다(아래 〈그림 2〉 참조). 대림역 주변에는 밀집지가 보이지 않는다. 서울 서남부를 거점으로 출퇴근하는 사람에게 “대림역에 사람이 없느냐”라고 묻는다면 코웃음을 칠 게 뻔할 정도로 꽤 많은 사람이 드나드는 지역이다. 그런데도 프랜차이즈 밀집지가 형성되지 않았다. 기존 음식점 밀도지도와 비교하면 그 차이가 더 뚜렷하다. 음식점 밀집지는 존재한다. 상권의 크기만으로 따지면 홍대 앞이나 종로, 강남까지는 아니지만 분명 사당이나 수유, 불광 정도는 된다. 음식점은 있는데 프랜차이즈가 보이질 않는다.
신규로 프랜차이즈를 내려는 사람들은 자기가 잘 모르는 동네에 가게를 내려고 하지 않는다. 음식점의 경우 더 그렇다. 대림동을 이미 일반적이지 않은 곳, 낯선 곳으로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결과적으로 대림동은 프랜차이즈가 쉽게 들어오지 않는, 혹은 들어오지 못하는 동네가 되었다.
대림동은 서울의 다양성에 기여
서울시 열린데이터광장에 공개된 음식점 데이터에는 업장 대표의 내·외국인 여부와 국적이 등록되어 있다. 15만 개에 이르는 음식점 중 외국 국적 거주민이 대표로 등록된 업체 수는 약 1800개로 전체의 1%를 조금 넘는다. 이를 국적별로 다시 나눠보면 중국이 68%로 가장 높고, 미국·캐나다가 13%, 타이완·일본이 각 4% 정도를 차지한다. 그 1%의 음식점들은 어디에 몰려 있을까? 지도를 통해 밀집도를 살펴보면, 한눈에 그 결과를 알 수 있다.
아래 〈그림 3〉에서 왼쪽은 서울 전체 음식점 밀집지역이다. 진하게 표시된 밀집지역은 종로-명동, 합정-홍대-신촌, 강남대로-테헤란로 등 대표적인 번화가(〈그림 1〉 왼쪽과는 또 다르다)와 각 지역의 중심지를 포괄한다. 〈그림 3〉에서 오른쪽 지도는, 그중 외국인이 대표자인 음식점들만을 골라 밀집한 지역을 표시했다. 건대입구역 부근에 약간의 밀집지역이 보이지만, 압도적으로 밀집을 보이는 지역은 대림역 일대, 딱 한 곳이다.
도시정책에서 ‘다양성’ 이라는 가치가 등장한 지 꽤 오래되었지만, 그 다양성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드러나는지, 또 그것을 어떻게 확보하고 이용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아직 충분하지 않다. 도시 전체의 스케일로 보면 대림동은 이미 서울의 다양성에 기여하는 공간이다. 외국인(중국인)이 운영하는 유일한 클러스터가 서울의 반경 안에, 그것도 수도권 전철역 중 상위 10% 수준의 승하차 인구를 가진 지역에 존재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공간은 충분히 잠재성이 있다.
※ 더 많은 사진과 영상은 ‘대림동 한 달 살기’ 웹페이지(daerim.sisain.co.kr)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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