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이 너무 가팔라 펜스를 잡고 걸었다. 회사 안을 보여주겠다는 지회장을 따라나선 길이었다. 구미공단 언덕 위에 위치한 공장은 누런 겨울 잔디만큼이나 삭막했고 오가는 이들도 드물었다. 제품 작업 과정에 대해 설명을 들으면서도 발이 자꾸 미끄러졌다. 오솔길조차 제대로 나 있지 않은, 길 아닌 길을 걷고 있었다.

경북 구미에 있는 아사히글라스는 LCD용 글라스를 생산하는 일본계 기업이다. 2005년 설립 당시 정규직 800명, 비정규직 300명이 근무했으며 매출 규모 1조원을 넘길 만큼 내실 있는 기업이었다. 외국계 투자 기업에게 한국은 한없이 자애롭다. 공장 부지 12만 평을 50년 동안 무상으로 제공했다. 국세는 5년, 지방세는 15년 동안 감면해줬다. 현재까지 지방세를 한 푼도 내지 않고 있다. 특혜받은 회사는 노조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노동자를 5년째 부당해고로 박해했다.

검찰의 이해할 수 없는 행보

ⓒ윤현지

아사히글라스는 미쓰비시의 주요 계열사이면서 중국·타이완·러시아·한국 등에도 제조 공장이 있는 글로벌 기업이다. 그러나 노동환경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열악하고 임금 또한 형편없었다. 식사 시간이 거의 없다고 할 만큼 짧고, 그 흔한 동아리 활동 또한 전면 금지됐다. 자연스럽게 노동조합이 결성될 수밖에 없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자 회사는 하루 만에 노조원 178명 전원을 문자메시지로 해고했다. 부당해고에 맞선 투쟁이 벌써 5년째다.

고용노동부는 2017년 9월 부당해고 조사를 통해 불법파견을 확인하고 ‘178명 직접고용’ 시정명령을 내렸다. 당시 고용노동부가 취합한 자료의 양만 5000쪽이 넘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는 줄 알았다. 당시 아사히글라스, 파리바게뜨, 만도헬라에 불법파견 시정명령이 떨어졌는데 아사히글라스만 지금껏 해결되지 못했다. 게다가 회사 측은 시정명령 불이행 시 납부해야 하는 과태료 17억8000만원을 내지 않고 행정소송까지 벌이고 있다.

문제를 더 꼬이게 만든 것은 검찰이었다. 고용노동부가 직접고용을 명령한 석 달 뒤인 2017년 12월, 무슨 이유인지 검찰은 불법파견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다시 대구고검에 항고하고 항의 방문을 하는 등 강력 반발한 결과 지난해 5월 대구고검의 재수사 명령이 나왔다. 검찰이 봐도 문제가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수사가 종결됐음에도 기소를 하지 않고 시간만 끌고 있다. 그사이 검찰 수사 자료만 7000쪽으로 늘었다.

검찰의 이해할 수 없는 행보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낼 수밖에 없다. 유독 아사히글라스 불법파견 문제만 이렇게 차일피일 미루는 까닭은 무엇일까. 회사 측 변론을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이 맡고 있기 때문일까. 2008년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공장을 방문한 것과 박근혜 정권 당시 사장이 청와대를 드나든 것과 관련이 있는가? 이처럼 확인할 수 없는 의혹만 커질 뿐이다.

검찰은 2010년 현대차 불법파견 기소 이후 불법파견에 대한 의견을 갖고 있지 않다. 민사소송 결과로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화 길이 열렸을 뿐이다. 자칭 정의를 부르짖는 검찰이 불법파견 문제만은 전적으로 법원 판결에 내맡기는 셈이다.

그사이 아사히글라스 부당해고 노동자 178명은 뿔뿔이 흩어지고 23명만이 찬 겨울 공장 앞 천막에서 아침을 맞고 있다. 명절이면 김을 팔고 가끔 주점을 열어 생계를 이어간다. 노동 존중을 표방하는 이 정권 아래에서도 여전히 노동이 짓밟히고 파괴되는 것을 검찰이 수수방관한다면, 노동자들이 호소할 곳은 어디인가. 이들의 요구는 단순하다 못해 소박할 지경이다. 검찰이 움켜쥐고 있는 7000쪽이 넘는 자료를 바탕으로 하루속히 기소해달라는 것이다. 대구고검 김천지청의 빠른 처리를 촉구한다.

기자명 이창근(쌍용자동차 노동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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