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클베리핀 이기용이 만난 뮤지션 ㉗ 남상아

 

얼마 전 나는 밴드 ‘3호선 버터플라이’의 보컬 남상아를 만나 술잔을 기울이며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었다. 2017년 여름 내가 속한 밴드 ‘허클베리핀’과 ‘3호선 버터플라이’의 협연 이후 약 1년 반 만이었다. 우리는 함께 만든 ‘허클베리핀’의 첫 번째 앨범 〈18일의 수요일〉에 대해, 그리고 신림역에서 처음 만났던 오래전 그날에 대해 이야기하며 웃었다. 그보다 더 오랜 시간 나는 안타까움과 이해와 슬픔이 뒤섞인 복잡한 마음으로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남상아는 1990년대 중·후반 시작된 한국 인디 신의 대표적인 뮤지션이자 보컬리스트이다. 그가 속한 ‘3호선 버터플라이’의 음악은 현재 시점에서 한국 대중음악, 특히 밴드 음악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앞선 사운드를 내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오름 엔터 제공남상아씨(사진)는 ‘로커’라는 반항적 이미지에 갇히지 않는 뮤지션이 되기를 원한다.

2012년에 ‘3호선 버터플라이’가 발표한 네 번째 앨범 〈드림토크(Dreamtalk)〉의 음악은 아찔했으며, 그들은 이 앨범으로 제10회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음반상’을 비롯해 3개 부문을 수상했다. 리더이자 송라이터였던 성기완의 탈퇴 후 밴드의 위기가 있었지만, 그들은 새 앨범의 수록곡 ‘나를 깨우네’에서 보여주었듯 여전히 당대 최고의 사운드를 용감하게 들려준다. 그러나 이제 밴드의 프런트우먼 남상아는 한국을 떠나 프랑스로 가려고 한다. 여행이 아니라 이주(移住)이다.

이기용:한국을 떠나 곧 프랑스로 간다.

남상아:맞다. 한국 생활을 정리하고 2월20일에 남편의 연고지인 프랑스로 완전히 간다.

이기용:갑작스레 한국을 떠나는 이유는?

남상아:경제적인 문제가 가장 크다. 20년 넘게 음악하면서 많이 버티고 참아왔지만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하는 한 한국에서 생활에 필요한 돈을 벌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완전히 받아들이게 됐다. 내 취향이 대중과 맞지 않는다는 것, 그 점이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물론 내가 가장 잘 알고 지금까지 20년 넘게 해온 이곳을 떠난다는 것이 무척 어렵다. 내가 음악으로 버는 수입으로는 도저히 생활이 안 되고 미래가 안 보였다. 더 이상 버티기 힘들었다.

이기용:프랑스에서는 어떻게 지낼 계획인가?

남상아:내가 살 ‘니스’라는 곳은 물가가 한국보다 훨씬 싸다. 프랑스는 최저임금이 여기보다 높고 법정 근무시간이 주 30시간이라서 일하며 음악을 할 환경이 될 것 같다. 아마 당분간 프랑스어를 배우면서 일자리를 알아볼 것이다. 물론 음악을 할 것이다. 처음 시작하는 마음으로 어떤 형태로든 음악을 하려고 애쓸 것 같다.

이기용:밴드 ‘3호선 버터플라이’는 어떻게 되나?

남상아:해체는 아니고 한동안 쉬자고 멤버들과 얘기했다. 최소 1년에 한 번은 가족을 보러 한국에 올 계획이기 때문에, 그 시기에 맞춰 공연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기용:밴드 멤버들의 반응은 어떤가?

남상아:국적은 한국을 유지하지만 사실상 이민을 가는 것이라 오랫동안 고민이 많았다. 다행히 멤버들 모두가 상황을 이해해주었다. 내가 프랑스에 가도 온라인상으로는 함께 음악 작업을 할 수 있으니 어떻게 될지 앞으로 지켜봐야겠다.

이기용:밴드 창립 멤버인 성기완이 나가고 ‘3호선 버터플라이’는 새로운 환경에 5집 앨범 ‘디바이디드 바이 제로(Divided By Zero)’도 냈다.

남상아:밴드를 하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오래 함께해온 멤버의 빈자리를 채우는 것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은 멤버들끼리 잘 해내는 것도 쉽지 않았다. 사실 프랑스로 가고 싶었던 것은 훨씬 전의 일이었는데 ‘3호선 버터플라이’가 계속 마음에 걸려 못 떠난 부분이 있었다. 이제는 이런 변화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하려 한다.

이기용:‘허클베리핀’ 1집부터 ‘3호선 버터플라이’ 5집까지, 록부터 일렉트로닉 음악까지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스스로 어떤 뮤지션이라고 생각하는가?

남상아:데뷔 이래 꾸준히 록 음악을 해왔지만 나는 ‘로커’라고 불리는 것을 좋아해본 적이 없다. ‘록’이라고 하면 뭔가 반항적이고 젊은 이미지가 연상되는데 나는 그것에 갇히고 싶진 않다. 그저 ‘뮤지션’이라는 단어가 좋다. 사실 나를 뮤지션이라고 부르기엔 스스로 좀 부끄러운 기분이 든다. 내가 생각하는 뮤지션은 하루에 상당한 시간을 음악만 생각하고 음악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있는 사람이다. 나도 20대 중·후반, 아마도 ‘허클베리핀’을 할 때까지만 해도 ‘음악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쪽이었다(웃음). 지금의 나는 그렇지 않다. 음악에 나의 모든 시간과 인생을 바쳐 멋진 작품을 만드는 것보다 한 인간으로서의 삶과 행복이 더 중요해졌다.

이기용:내성적인 성격에도 오랜 시간 무대의 맨 앞에서 노래해왔다. 관객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노래한다는 것은?

남상아:무대 위에 처음 섰을 때만 해도 노래 도중에 입술이 덜덜 떨리는 게 느껴질 정도로 긴장했다. 분명히 많은 액션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공연 후에 녹화된 비디오를 보면 아무 움직임도 없이 서 있었다(웃음). 그러나 노래할 때만은 항상 자신감이 있었다. 무대 위에서 눈감고 노래하고 있으면 기분이 좋았고, 내가 원하는 대로 노래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창 연습할 때는 ‘프링글스(긴 원통형 케이스에 담긴 과자)’ 빈 통에 솜을 넣고 거기에 대고 노래를 불렀다. 그러면 완벽한 방음이 되었다. 그렇게 연습과 경험이 쌓이면서 자연스레 무대 위에서의 어색함을 극복할 수 있었고, 어느 순간 드럼과 베이스 소리만 들려도 자연스럽게 리듬을 타는 상태가 되었다.

이기용:앞으로 남상아가 하고자 하는 음악은 무엇인가?

남상아:나는 기본적으로 평범하지 않은 것, 흔히 접하지 못하는 것들에 더 끌린다. 예를 들어 트랜스 음악(반복되는 비트 위에 주로 전자음악 사운드가 입혀져서 몽롱하거나 환상적인 상태를 느끼게 해주는 음악) 같은 것들이다. 물론 ‘3호선 버터플라이’의 ‘헤어지는 날 바로 오늘’같이 보컬 멜로디가 아름다운 곡은 언제나 좋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나는 그의 집 거실 소파 위에 걸려 있던 파울 클레의 그림이 계속 눈에 들어왔다. 그림은 내게 어떤 생각 하나를 떠올리게 했다. ‘남상아를 남상아로 만드는 것’은 근원을 알 수 없는 상실감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다. 마치 내재되어 있는 것 같은 그 상실감이 그로 하여금 끝없이 노래하게 한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가 떠날 새로운 세계에 따뜻한 햇살이 가득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3호선 버터플라이’는 2월26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한 컨벤트 펍에서 〈잠시만, 안녕〉이라는 공연을 하고 휴식에 돌입한다.

 

기자명 이기용 (밴드 허클베리핀 리더)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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