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도 사람처럼 선 채로 살아간다
채광석 지음, 문학의숲 펴냄

“서울 변방 불암산 밑에 내 서른의 임시정부를 세웠다.”

두 명의 채광석 시인이 있다. 채광석(1948~1987). 시인이자 문학평론가. 민중적 민족문학론을 내세웠던 그는 군부독재와 맞선 대표적 문화활동가였다. 1987년 교통사고로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떴다. 또 다른 채광석 시인. 앞의 채광석이 숨진 1987년, 대학에 입학했다. 1990년 등단한 ‘청년 채광석’은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선배 문인들은 이름을 되묻곤 했다. 시집 〈꽃도 사람처럼 선 채로 살아간다〉는 청년 채광석의 복귀작이다. 첫 시집 이후 27년 만이다. 이 시집은 ‘시로 쓴 자화상’이다. 시의 세계에서 멀어져 있던, 20대 후반부터 50대 초반까지의 삶이 담겼다. 시편은 때로 쓸쓸하고 물기에 젖어 있다. 지난 시절과 회한을 담은 시 몇 편을 읽고 나면, 문득 한 시대를 공유했던 지인들에게 안부 문자를 넣고 싶어진다.

고독 깊은 곳
하오징팡 지음, 강초아 옮김, 글항아리 펴냄

“거기 안 가도 내 삶이 얼마나 끔찍한지 잘 알거든요.”

도시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인구가 늘어난다면? SF 작가인 저자는 말 그대로 도시를 ‘접어’버린다. 소설 속에서 베이징은 네모반듯한 큐브 형태다. 지반을 뒤집으면 다른 도시가 나타나는 식이다. 한쪽 면이 지상에 나와 있는 동안 반대쪽 면의 도시는 지하에서 잠든다. 1공간이 24시간을 하나의 주기로 온전히 쓸 수 있다면, 2공간과 3공간이 함께 쓰는 반대 면은 각각 16시간과 8시간씩밖에 쓸 수 없다. 3공간 주민인 라오다오는 딸의 유아원 등록비를 벌기 위해 1공간으로 숨어들 수밖에 없다. 소설 속에서 시간은 차별과 불평등에 대한 은유로 기능한다. 현재 중국에서 가장 주목되는 젊은 SF 작가인 저자는 〈접는 도시〉로 2016년 제74회 휴고상을 받았다. 책은 그 외 중단편 9편을 묶었다.

마오쩌둥 1, 2
필립 쇼트 지음, 양현수 옮김, 교양인 펴냄

“혁명가 마오는… 스스로 모순이 되었다.”

지난 몇 년 동안 연이어 출간된 장룽, 프랑크 디쾨터 등의 마오쩌둥 관련 저서들은 서구 사회에서 마오의 이미지를 ‘사실상의 악마’로 만들었다. 이에 영국 저널리스트인 필립 쇼트가 1999년에 펴내 크게 호평받았던 마오쩌둥 전기를 대대적으로 수정·보완한 전면 개정판이 이 책이다. 그렇다고 해서 저자가 마오를 변호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대약진운동과 문화혁명 관련 장에서는 마오쩌둥과 그 동지들의 독단과 잔인성, 어리석음을 강도 높게 비판한다. 계급 없는 유토피아를 꿈꿨지만 스스로는 황제가 되었고, 현실주의로 정치적 승리를 이뤘지만 코미디 같은 기상천외한 사회개혁안으로 수억 인민을 기근으로 내몰았던 ‘문제적 인간’ 마오쩌둥을 공정하고 총체적으로 관찰해볼 수 있는 자료다.

그들은 왜 극단적일까
김태형 지음, 을유문화사 펴냄

“극단주의의 핵심 특징인 배타성과 혐오는 외부 세계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된다.”

“박근혜는 연산군… 대통령 하기 싫은 대통령.”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당하기 1년 전 이런 분석을 내놓아 화제가 됐던 저자가 2019년 주목한 것은 극단주의다. 소수자나 약자에 대한 혐오와 공격, 반사회적인 끔찍한 범죄가 증가하는 배경에 극단주의가 작용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서가 아니다. 그가 보기에 극단주의는 ‘양끝’이 아닌 ‘과잉’의 문제다. 자기가 믿고 싶은 것(배타성)만을 ‘미친 듯이’ 그냥 믿을 때(광신), 그리고 그것을 남에게 들이밀 때(강요) 극단주의가 싹튼다. 그렇다면 왜? 극단주의는 손상된 자존감을 병적인 방식으로 회복하려는 시도와 관련돼 있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맘충’, 예멘 난민 혐오 따위에 깔린 사회심리적 맥락을 읽어낼 실마리를 제시하는 책이다.

나의 아름다운 이웃
박완서 지음, 작가정신 펴냄

“내가 결혼해서 들어간 시댁은 스물다섯 평짜리 한옥이었다.”

박완서 소설가는 사보에 콩트를 연재한 적이 있었다. 높은 원고료에 매료되었으나 바로 그 때문에 회의를 갖게 되었다. 작가로서 세계를 확립하기 전에 ‘돈맛’부터 알게 된 본인에게 싫증이 나면서 안 쓰기로 작정했다. ‘콩트 쓰는 맛’까지 잊은 건 아니었다. ‘방 안에 들어앉아 창호지에 바늘구멍을 내고 바깥세상을 엿보는 재미’에 비유할 정도다. 박완서 소설가의 8주기를 맞아 작가 최초의 짧은 소설집이 개정판으로 나왔다. 소설이 쓰인 1970년대의 사회상을 엿볼 수 있다. 오정희 소설가의 표현대로 ‘삶의 리얼리티에 가장 근접해 있는 글’이다. 그의 작품에 영향을 받은 소설가 29명의 짧은 소설을 묶은 〈멜랑콜리 해피엔딩〉도 함께 출간되었다. 오마주 곳곳에 박완서 작가의 흔적이 고여 있다.




노회찬, 함께 꾸는 꿈
노회찬 지음, 노회찬재단 기획, 후마니타스 펴냄

“우리는 행복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고 노회찬 의원이 만들고 싶었던 나라가 있다. “대학 서열과 학력 차별이 없고 누구나 원하는 만큼 교육받을 수 있는 나라, 지방에서 태어나도 그곳에서 교육받고 취직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데 아무 불편함이 없는 나라,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는 나라. …모든 시민이 악기 하나쯤은 연주할 수 있는 나라.” 노회찬재단 창립에 맞춰 그의 말과 글이 사진과 함께 묶였다. 진보 정치인 노회찬의 삶을 되돌아볼 수 있다. ‘삼성 엑스파일 사건’은 그의 정치 인생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의정 활동 7년 동안 127건의 법안 및 결의안을 대표 발의했다. 그의 정치적 삶은 연대로 요약된다. 조선소 하청 노동자,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곁에 노 전 의원이 있었다. 그의 글과 말이 남겨진 우리의 꿈에 대해 묻고 있다.

기자명 시사IN 편집국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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