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80일간의 세계일주〉에서 주인공 필리어스 포그는 1872년 10월2일 저녁 8시45분 영국 런던을 출발해 인도-일본-미국을 거쳐 천신만고 끝에 80일이 되는 12월21일 출발 지점으로 돌아오는 데 성공한다. 포그를 은행 강도로 오인한 형사의 방해 때문에 약속시간을 넘기고 만다. 그런데 이들이 감안하지 못한 게 있었다. 지구를 서에서 동으로 일주하게 되면, 출발 지점으로 돌아왔을 때 날짜가 하루 줄어든다는 점이다.

지구를 위에서 내려다보자. 하나의 원으로 보일 것이다. 이 원을 피자를 자르듯 24조각으로 나눠보자. 이 피자 한 조각 한 조각은 시간대에 해당한다. 주인공 일행이 동쪽으로 이 피자 한 조각에 해당하는 거리를 움직일 때마다 시간대는 한 시간씩 빨라진다. 영국에서 맞춘 시계의 시각은 인도에 도착하면 현지 시각에 비해 다섯 시간이 늦을 것이고, 한국에 도착하면 아홉 시간이 늦을 것이다. 한 바퀴를 다 돌았을 때, 결국 그 시계는 24시간이 늦다. 주인공 일행이 영국에 도착했던 날짜는 12월20일로 밝혀졌고, 다음 날 이를 뒤늦게 안 포그가, 약속한 시간을 몇 초 남기지 않고 극적으로 친구들 앞에 나타나며 소설은 끝난다.


1884년, 미국 워싱턴에 모인 천문학자들은 현재까지도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결정을 내렸다. 영국의 그리니치 천문대를 지나는 자오선을 ‘본초자오선’으로 삼아, 이를 기준으로 지구의 시간대를 나누기로 합의한 것이다. 〈80일간의 세계일주〉에 등장하는 필리어스 포그와 같은 개별 여행자들이 알아서 해야 했던 문제를, 전 지구적 시스템을 도입해 해결하려는 시도였다. 여행 방향에 따라 출발 지점으로 돌아왔을 때 날짜가 하루 빨라지는(혹은 늦어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리니치 천문대에서 출발한 자오선이 지나가는 지구 반대편의 태평양 위에 가상의 선을 하나 그었다. 이것이 바로, 국제 날짜변경선 (IDL:International Date Line)이다.

날짜변경선이 망치 모양이 된 까닭

지도에서 날짜변경선을 찾아보면, 앞뒤로 들쭉날쭉한 톱니 모양이다. 날짜변경선 인근에 위치한 나라들(대부분 태평양의 조그마한 섬나라)이 경제활동의 편의에 맞도록 자신이 속한 시간대를 인위적으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길버트 군도, 피닉스 군도, 라인 군도로 이루어진 섬나라 키리바시의 달력에는 1994년 12월31일이 없다. 그전까지는 나라의 절반이 날짜변경선 동쪽에, 나머지 절반은 서쪽에 위치한 터라 같은 나라 안에서도 섬을 오고 감에 따라 날짜가 바뀌는 등 혼란이 극심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1995년 1월1일을 기해 국토의 중앙을 지나던 날짜변경선을 동쪽으로 옮겨버렸다. 이에 따라, 동쪽 절반에 해당하는 섬들에서는 12월30일 다음 날, 12월31일을 건너뛰고 1월1일을 맞았다. 지금도 이 지역 날짜변경선의 모양을 보면, 세로로 달리던 선이 동쪽으로 툭 튀어나가 망치 모양이다. 지구에서 태양이 가장 먼저 뜨는 곳이라는 타이틀을 이곳이 차지했음은 물론이다.

날짜변경선으로 인한 문제를 오히려 관광자원으로 적극 활용하는 곳도 있다. 사모아는 동쪽으로 125㎞ 떨어진 미국령 사모아와 날짜변경선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다(사모아 제도는 1962년 독립한 사모아와 동부의 미국령 사모아로 나뉜다). 새해를, 또는 생일을, 아니면 크리스마스를 두 번 맞이하고 싶으면 이곳으로 가면 된다. 사모아에서 파티를 벌인 뒤, 미국령 사모아로 건너가면 어제와 똑같은 날짜의 오늘이 반복된다.

기자명 탁재형 (팟캐스트 〈탁PD의 여행수다〉 진행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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