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을 위한 민주주의 여행
유영근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아직도 부숴야 할 장벽은 많다.”

네루가 딸에게 쓴 옥중 편지 형식의 〈세계사 편력〉을 읽은 청소년이 자라 판사 아빠가 되었다. 두 딸과 함께 프랑스·영국·독일로 여행을 떠났다. 화려한 베르사유 궁전 외관에 가려진 권력투쟁과 혁명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에서 전쟁범죄를 설명했다. 민주주의를 발전시켜온 유럽의 역사를 부녀간의 대화로 풀어냈다. 특히 단두대나 뉘른베르크 재판(제2차 세계대전 후 전범 재판)을 설명할 때 판사인 저자의 해설이 빛을 발한다. 실제 사형을 선고했던 때의 고민과 이를 둘러싼 쟁점을 생생하게 풀어낸다. 그런 의미에서 비단 청소년 교양서라고만 한정하기에는 아쉬운 책이다. 참고 서적만 40권에 달할 정도로 많은 내용을 담았지만 쉽게 풀어써서 술술 읽힌다.



뉴욕 영화 가이드북
박용민 지음, 헤이북스 펴냄

“영화들이 뉴욕을 배경으로 삼는 이유는 분명하다. 뉴욕 시가 중요한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캡틴아메리카:시빌워〉에서 캡틴아메리카가 묻는다. “어디 출신이냐?” 스파이더맨이 답한다. “퀸즈”. 씩 웃으며 캡틴아메리카가 한마디 툭 남긴다. “(난) 브루클린”. 할리우드 영화에서 ‘뉴욕’은 헬스키친, 첼시, 어퍼 이스트사이드, 브롱크스 따위를 ‘고향’으로 얘기해도 되는 일종의 ‘특별시’다. 이 도시는 너무 크고 넓어서 그 자체로 특별 취급을 받는다. 뉴욕을 배경으로 영화를 찍는다는 건 조연으로 뉴욕을 등장시킨다는 뜻과 같다. 이 도시는 그 자체로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가이드북을 표방하는 이 책은 ‘시네필’을 위한 여행 안내서다. 영화의 배경이 된 각종 관광명소부터 식당과 상점을 두루 훑다 보면 저자의 ‘덕력’에 감탄하게 된다. 덕심을 여행으로 이어가고 싶은 분들의 필독서.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
양승훈 지음, 오월의봄 펴냄

“산업도시 거제의 사람들은 익숙했던 모든 것을 다시 질문해야 하는 시기에 직면했다.”


한국의 여론은 서울에서 형성된다. 서울의 눈에 중공업 도시는 잘 보이지 않는다. 멀리 있고, 낯설고, 귀에 거슬리는 쇳소리가 난다. 경남 중공업 벨트 사람들은 한국 경제의 중추를 떠받치고 있지만 공론에서는 철저히 고립된다.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인 저자는 그 무지와 무관심에 균열을 낸다. 그는 조선소에서 실제로 근무하며 현장 연구를 했다. 조선업의 거시적 궤적과 ‘중공업 가족’의 미시적 삶이 절묘하게 교차한다. 이른바 ‘귀족 노조’ 정규직 노동자 외에도 하청업체 노동자, 사무보조직 여성, 조선소 취업을 앞둔 여고생, 젊은 엔지니어, 여성 엔지니어 등 전형적이지 않은 산업도시 사람들의 삶을 씨줄 날줄로 엮어낸다. 연구자의 넓은 시야와 현장의 디테일이 결합하면 이런 물건이 나온다.



보통 사람들의 전쟁
앤드루 양 지음, 장용원 옮김, 흐름출판 펴냄

“능력 위주의 사회라는 논리는 우리를 파멸로 이끈다. 늦기 전에 이 시장논리를 깨뜨려야 한다.”


컬럼비아 대학 병원 방사선 전문의가 GE의 초청을 받아 인간과 컴퓨터 간의 시범 대결에 참여했다. 환자의 방사선 촬영 필름을 보고 누가 종양을 더 정확하게 진단하는지 경쟁을 벌였다. 결과는? 컴퓨터의 압승이었다. 디스토피아다.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은 우리를 ‘대량실업 시대’로 이끌 것이다. 화이트칼라 전문 직종은 괜찮지 않을까 생각하면 오산이다. 저자에 따르면 모든 종류의 ‘틀에 박힌 일’은 언젠가 컴퓨터로부터 공격당한다. 의사, 변호사, 일부 예술가도 예외가 아니다. 파국이다. 해법은? 파격적이다. 정부가 모든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대량실업 시대를 맞아 ‘인간적 자본주의’로 살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통찰이다.



거리의 현대사상
우치다 다쓰루 지음, 이지수 옮김, 서커스 펴냄

“‘변하는 것’은 왜 우리를 매혹하는가?”

‘결혼은 이득인가?’란 질문에, 저자는 단호하게 이득이라고 답한다. 다만 그 이유가 우리의 짐작(‘결혼하면 행복해질 수 있다’)과 너무 다르다. 결혼은 ‘끝없는 불쾌함’을 양산할 뿐이지만,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뭔가 인간다움을 성취하게 된다는 것. 본인의 능력보다 보수가 적다고 불평하는 직장인에겐, 그를 포함한 누구도 ‘완전한 능력주의 사회의 도래’를 바라지 않는다며 그 이유를 설명해준다. 일본 철학자 우치다 다쓰루가 월급·이직·결혼·학력 등 일상적 주제를 재기 발랄하고 유머러스하게 헤집고 전복하며 의외의 결론들을 이끌어내 준다. 저자에게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일상적으로 접해온 일상 속에 숨겨진 많은 맥락들을 감지하며 머리를 주억거리게 된다.

처음 가는 마을
이바라기 노리코 지음, 정수윤 옮김, 봄날의책 펴냄

“저는 집에 있어도/ 종종 행방불명이 됩니다”

‘말인 척하는 말이 너무 많아서, 말이라 할 만한 것이 없어서(〈떠들썩함 가운데〉)’ 시인은 종종 사라지고 싶은 걸까. 일본에는 행방불명됐던 소녀가 어느 날 갑자기 할머니가 되어 나타났다는 전설이 있다. 그 전설 속 사무토 할머니처럼은 아니지만, 시인은 인간에게 ‘문득 자기 존재를 감쪽같이 지우는 시간(〈행방불명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단언한다.
2006년 80세의 나이로 작고한 시인은 전후 일본을 대표하는 여성 시인으로 한국어를 공부해 일본에 한국 현대시를 번역하기도 했다. 그 흔적들 역시 시집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번 시집을 묶기 위해 번역가 정수윤씨는 시인의 모든 시를 빠짐없이 반복해 읽으며 시를 선택하고 배열했다. 안희연 시인이 교정을 도왔다.

기자명 시사IN 편집국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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