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미래는 매우 어둡다. 시장경제를 하자고 하면서 시장경제의 기본 룰인 독점규제법을 제대로 갖추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대기업이 시장지배력을 이용해 중소기업의 기술 아이디어와 인력을 착취하고 경쟁에서 도태해버린다. 그러다 보니 대기업·전문직·공무원 외에는 품위 있고 안정적인 직장을 찾기 힘든 경제구조가 만들어졌다. 결국 수많은 사람이 자영업자가 되었다. 어차피 불안한 것은 마찬가지니 시작하기 쉽고 착취를 덜 받는다고 여긴다. 한국에서 자영업자 비율은 전체 취업자 대비 25.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16.9%)보다 훨씬 높다.

이런 상황에서는 최저임금을 올리기도, 복지를 위한 증세도 어렵다. 가난한 사람에게 떼어서 더 가난한 사람에게 주는 것이라 엄청난 마찰을 일으킨다. 한국의 어느 정치 세력도 진지하게 실현 가능성이 있는 증세운동을 벌여본 적이 없다. 한국의 조세율은 지난 수년 동안 GDP의 20~25%, 사회복지 지출 비율은 GDP의 5~10% 정도다. 두 지표 다 OECD 최악을 달린다. 몇 안 되는 이들의 부자 과세로 해결될 성질의 문제가 아니다. 일본은 조세율이 우리처럼 낮지만 사회복지 지출 비율은 한국의 2배가량 된다. 기업복지 면에서도 한국은 일본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자영업자가 많고 복지제도가 취약하면 기술발전 같은 외부 변화의 충격에 매우 취약해진다. 더 비싸고 비효율적인 교통비를 내고 있지만 택시 기사 집단행동의 절박함을 이기지 못한다. 문제는 이들의 집단행동이 노조의 그것과 달리 복지-혁신의 선순환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노동조건은 개선되지 않고 사양산업의 수명만 연장해준다.

 

ⓒ연합뉴스 11일 오전 서울 국회 헌정기념관 대강당 앞에서 열린 지자체 가맹·대리점 분쟁조정협의회 합동 출범식에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격려사를 하고 있다.

 

 

 

중소기업을 살리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일본이 한국과 결정적으로 다른 지점이 바로 이 부분이다. 대기업의 중소기업에 대한 예우와 협력 관계다. 중소기업에 생존 가능한 마진을 보장해주는 대기업의 행태는 건강한 중소기업에 살길을 열어주어, 더 많은 안정적인 직장이 생겼다. 전문직도 진정한 경쟁의 장으로 개방해야 한다.

한국의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은 문구의 순서에도 불구하고 독점규제법이 아니라 공정거래법이라고 불린다. 미국에서 처음 시작된 독점규제법은 시장독점력 또는 지배력을 이용해 이윤을 소비자로부터 착취하거나 경쟁자를 시장에서 배제하는 행위를 규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한국은 대기업이 다양한 업계에 침투해 시장지배력을 다른 업종의 시장으로 옮겼다. 경쟁자들을 도태시키는 수직계열화 행위를 제대로 막지 못했다. 영화시장에서는 CJ·롯데 같은 극장 체인이, 통신시장에서는 SKT·KT·LGU+ 같은 망사업자가 유통망을 먼저 장악해 콘텐츠 시장을 교란하거나 점령했다. 네이버나 다음 이후의 유니콘 기업(기업 가치 1조원 이상 벤처기업)을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 영화 제작은 대기업 투자 담당 서너 명의 손에서 놀아난다.

사법 사살된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법리’ 부활시켜야

정부가 잘못하면 진보나 보수 언론 모두 달려들어 비판하지만, 기업이 잘못하면 어느 언론도 비판하려 하지 않는다. 대기업이 집행하는 광고비 때문일까? 언론사 성향을 막론하고 망중립성에 대한, 스크린 독과점의 원인에 대한 정확한 기사를 찾기 어렵다.

이러한 현상은 고쳐질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입맛이 쓰다. 문재인 정부의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는 아직도 ‘독점규제법’을 집행하지 않고 ‘공정거래법’만 집행한다. 문재인 정부가 2007년 포스코 판결로 사법 사살된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법리’를 부활시킬 것이라고 기대했다(2007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포스코 독과점’에 대한 공정위의 시정명령과 과징금에 대해 취소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 이후 시장지배적 사업자에 대한 공정위 규제가 사실상 무력화됐다). 경쟁법 전문가가 아닌 기업 지배구조 전문가인 공정위원장에게 걸었던 이 같은 기대가 너무 과도한 것이었을까?

기자명 박경신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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