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이탄희 판사가 사직서를 제출했다. 대법원 법원행정처(기획조정실 기획 제2심의관) 발령 인사명령이 나오고 7일 만이었다. 나중에 알려졌듯 이 사직은 법원행정처의 부당한 지시를 거부하는 결단이었다. 파장을 염려한 대법원은 그의 사직서를 반려했고, 대신 그는 원래 소속되어 있던 법원으로 복귀하라는 새로운 인사명령을 받았다. 이 모든 절차는 비공개로 이루어졌고, 그렇게 묻힐 예정이었다. 이 이례적인 인사가 70년 사법사상 전무후무한 사법농단 의혹으로 이어지리라고, 당시에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이탄희 판사가 사직서를 내던 그 시기, 법원 내에서 여러 움직임이 있었다. 대법원 산하 전문분야 연구회 중 하나인 국제인권법연구회는 3월에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과 공동으로 학술대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제목은 ‘법관인사제도의 모색-법관독립 강화의 관점에서’. 법관인사제도는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대법원이 민감하게 반응한 주제였다. 같은 시기 법원행정처는 법원 내부 통신망인 코트넷에 ‘전문분야 연구회 중복가입 강제탈퇴 조치’ 공지를 올렸다. 10년간 사문화되었던 연구회 중복가입 금지 규정을 내세우며, 판사들이 중복가입을 해소하지 않으면 나중에 가입한 연구회를 강제 탈퇴시킨다는 공지였다. 가장 나중에 설립된 국제인권법연구회에 제일 불리한 조치였다.


ⓒ시사IN 조남진2018년 10월15일 사법행정권을 남용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가운데)이 검찰에 출석했다.


2017년 2월16일 나는 이탄희 판사의 전화를 받았다. 그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 말해주지는 않았지만, 연구회 중복가입 강제탈퇴 조치의 배경에 “류 판사가 알면 불같이 화낼” 사정이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 후배 판사들이 재판에 전념할 수 있도록 선배 판사들이 희생하고 있다는 말도 했다. 후배 판사로서 보호받기보다 한 명의 판사로서 함께 희생하고 싶었던 나는, 그날 이 판사와 대판 다퉜다. 나중에 헤아려보니 그날이 바로 그가 사직서를 제출한 날이었다.

이탄희 판사에 대한 원(源) 법원 복귀 인사명령을 알게 된 것은 일주일이 지난 뒤였다. 6년간 판사로 재직하면서 한 번도 못 보았던 인사였다. ‘뭔가 심각한 일이 일어났구나’ 짐작했다. 며칠 뒤인 3월6일 〈경향신문〉이 관련 뉴스를 보도했다. “법원행정처가 법관인사제도에 관한 판사들의 설문조사 결과가 발표될 국제인권법연구회 공동학술대회를 축소하기 위하여 이탄희 판사에게 연구회 관련 부당한 지시를 하였다. 이에 반발한 이탄희 판사가 항의하자 이탄희 판사를 원 법원에 복귀시켰다.”

보도는 충격적이었고, 법원 내 영향력도 매우 컸다. 이례적인 판사 인사와 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이 하나로 맞물렸다. 3월7일 고영한 당시 법원행정처 처장은 ‘이탄희 판사가 개인 사유로 법원행정처 근무를 불희망하여 원 법원에 복귀시켰다’는 취지로 해명했다. 의문은 가라앉지 않았다. 지금껏 판사 인사를 그 판사의 희망에 따라 변경한 전례가 없었다. 원 법원 근무는 할 수 있으면서 유독 법원행정처 근무만을 수행하지 못할 ‘개인적인 사유’를 짐작할 수도 없었다.


ⓒ연합뉴스2017년 6월19일 경기도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열린 제1회 전국법관대표회의 모습.


2017년 3월8일 A 판사가 대법원장에게 조사기구 구성과 진상규명을 청하는 글을 코트넷에 올린다. 그 글에 200명이 넘는 판사들이 동의 취지로 댓글을 달았다. 양승태 대법원장 재직 기간 코트넷 게시글에 대한 통제와 감시가 심화되었고, 코트넷 게시글에 대한 징계까지 실시된 사례가 있다. 이후 판사들은 코트넷 게시판에서 민감한 사안에 대한 의견 내기를 매우 저어했다. 그러니 댓글이 200개나 달린 것은 무척 이례적인 상황이었다.

3월13일 인천지방법원 단독판사회의를 시작으로 3월29일까지 전국 9개 법원 14개 판사회의에서 민주적 정당성과 공정성을 갖춘 진상조사 기구 발족과 진상규명 요구가 의결되었다. 심각하게 형해화되어 사법행정권자의 의사결정에 대한 거수기 구실만 하던 각급 법원 판사회의가 부활한 순간이었다. 연이은 판사회의 의결은 당시 판사들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얼마나 심각하게 생각했는지를 보여준다.

판사 사찰 진상조사위 보고서 ‘부실’

당시 제기된 의혹에는 이른바 ‘법관 블랙리스트’ 의혹이 포함되어 있지도 않았다. 2019년 현재 밝혀진 각종 사법농단 의혹에 비하면 이 시점에서 제기된 의혹은 조족지혈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수많은 판사들은 그것만으로 진상규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 당시의 법원과, 사법농단을 합리화하거나 검찰 수사를 비난하는 여론이 상당히 퍼진 현재의 법원을 비교하면, 잇따른 충격적인 보도에 판사들의 양심이 무뎌진 것 같아 슬프다.


ⓒ사진공동취재단지난 1월23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왼쪽).


2017년 3월께 의혹의 핵심 인물로 지목되었던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보도 내용은 거짓이고 자신은 결백하다고 주장하며 퇴임했다. 3월22일에는 이인복 전 대법관(당시 사법연수원 석좌교수)을 위원장으로 한 진상조사위원회(이하 제1차 조사위)가 구성되었다. 각급 법원 판사회의가 진상조사위원회 위원 후보를 추천했지만 이들 상당수는 진상조사위원회 위원이 되지 못했다. 이 후보들은 진상조사위원회 조사 활동에 대한 견제 역할을 했고, 후에 전국법관대표회의를 발족시키는 데 큰 기여를 하게 된다.

2017년 4월7일. 언론은 법원행정처가 판사 뒷조사 파일을 작성해 관리하고 있다는 이른바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을 제기했다. 이탄희 판사가 법원행정처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으로 근무하던 이규진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로부터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 컴퓨터에 판사 뒷조사 파일이 비밀번호가 걸린 채로 관리되고 있다”라는 취지의 말을 들었다는 내용이다. 이것은 기존 의혹보다 한층 더 심각했다. 헌법에 규정된 법관 독립을 법원행정처가 침해하여 판사들을 사찰했다는 의미였다. 판사 사회가 심하게 술렁였다. 4월18일 1차 조사위 결과가 나왔다. 요약하자면, 법원행정처가 국제인권법연구회 학술대회에 부당한 방식으로 대응한 것은 사실이나, 법원행정처에 소위 판사 블랙리스트, 즉 ‘판사 뒷조사 파일’이 존재하지는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1차 진상조사 보고서를 검토했던 그 순간이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성실히 조사했다는 노력의 흔적은 보이나, 한계가 명백하고 부실했으며 ‘관여자들을 다치지 않게 하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드러난 보고서였다. 사법행정권 남용이 사실임을 인정하면서도 그를 주도한 사람을 특정하지 않았다. 특히 판사 뒷조사 파일, 즉 법관 블랙리스트 의혹에 관하여는 컴퓨터 조사 한번 하지 않고 결론을 내렸다. 한 명의 판사로서 조사 결과를 객관적으로 납득할 수 없었다. 조사 결과의 미흡함과 한계를 정리하여 코트넷에 글을 올렸다. 이러한 생각은 나만 한 것이 아니었다. 비슷한 의견이 연달아 코트넷에 올라왔다.


ⓒ참여연대사법농단 의혹을 처음으로 제기한 이탄희 판사(오른쪽)는 ‘2018 참여연대 의인상’을 수상했다.

결정적으로 3월 각급 판사회의에서 진상조사위원회 후보자로 선출된 판사들이 의견을 모아 글을 게시했다. 컴퓨터 조사를 하여 판사 뒷조사 파일의 존부를 명확히 밝히고, 사법행정권 남용 책임자들을 특정하여 책임을 지우며, 재발 방지 대책으로 민주적이고 투명한 사법행정을 위한 전국법관대표회의를 설립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동의하는 판사 160여 명이 댓글로 지지 의사를 밝혔다. 2017년 4월26일 서울동부지방법원 판사회의를 시작으로 24개 법원의 각급 판사회의에서 물적 조사를 포함한 추가 조사의 필요성과, 전국법관대표회의 개최를 지지하는 의결을 하고 대표자를 선출했다.

선출된 대표자들은 전국법관대표회의 준비단을 발족했다. 나도 선출된 대표자 중 한 명으로 준비단에 합류했다. 준비 과정은 험난했다. 전국법관대표회의 출범 요청을 양승태 대법원장이 수락할지부터 불투명했다. 당시 준비단은 법원행정처가 출범을 승낙할 경우와 거부할 경우를 모두 생각해 준비했는데, 만일 법원행정처가 거부할 경우 전국 판사들로부터 펀딩을 받아 별도의 회의를 열자는 의견까지 나왔다.

준비단은 준비 과정을 판사들에게 알리고 의견을 수렴·반영하기 위하여 법원행정처에 전국법관대표회의 게시판을 코트넷에 개설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법원행정처는 준비단과 한마디 상의도 없이 게시판을 익명 게시판으로 만들었다. 이 익명 게시판은 그 후 전국법관대표회의의 정당성을 흔들고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특히 법관 블랙리스트 의혹의 의미를 ‘판사 뒷조사 파일 의혹’에서 ‘판사 인사상 불이익 의혹’으로 바꾸는 데 큰 작용을 하게 된다.

2017년 5월17일 양승태 대법원장은 코트넷에, 진상조사 결과를 법관 공직자윤리위원회에 회부하고, 전국법관대표회의 개최를 지원하겠다는 글을 올렸다. 6월19일 제1회 전국법관대표회의가 개최되었다.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약 10시간에 걸친 논의 끝에, 컴퓨터 조사를 포함한 추가 조사 실시와 밝혀진 사법행정권 남용 관여자에 대한 책임 조치를 촉구하고 추가 조사 실시를 위한 현안조사소위원회 등을 구성하는 데 결의했다. 나는 5인의 현안조사소위원회의 위원 중 한 명으로 선정되었는데, 당시에는 추가 조사를 위해 얼마나 길고 힘겨운 싸움을 해야 할지 짐작도 못한 채 마냥 해맑았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현안조사소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는 것은 작대기 하나 들고 전쟁터에 나가 끝없이 참고 무력감을 느끼며 후퇴하고 버텨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땐 몰랐다.

현안조사소위원회 활동을 개시했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한동안 추가 조사에 대한 어떠한 의사도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현안조사소위원회는 추가 조사 권한이 없었다. 그래도 할 수 있는 준비를 시작했다. 1차 조사 결과 보고서를 분석하여 추가 조사 사항을 정리하고, 추가 조사가 이루어질 경우 컴퓨터 조사는 어떠한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할지 자세히 검토했다. 그와 별개로 추가 조사를 실시할 수 있도록 양승태 대법원장을 설득할 방안도 모색했는데, 특별히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인내가 필요했고 시름은 깊어졌다.

양승태, 현안조사위 추가 조사 제안 거부

2017년 6월28일 양승태 대법원장은 컴퓨터 조사를 포함한 추가 조사 제안을 거부했다. 판사들은 반발했다.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는 글들이 코트넷에 올라왔다. B 판사는 국정조사를 주장했으며, C 판사는 국민께 추가 조사 필요성을 호소하기 위하여 다음 아고라에 청원 글을 게시했다. 현안조사소위원회는 그간 정리한 추가 조사 사안과 추가 조사 계획을 코트넷에 올렸다. 인천지방법원 단독판사회의에서는 추가 조사를 촉구하는 의결을 했다.

그러나 양승태 대법원장은 일절 답하지 않았다. 지리한 시간이 흘렀다. 판사들은 상황을 변화시킬 방도를 찾지 못했다. 익명 게시판에서 판사들은 험하게 싸웠다. 코트넷 익명 게시판에서는 1차 조사 결과 드러난 사법행정권 남용에 대한 정당화 시도가 이루어지거나, 과거에 대한 단죄가 아닌 제도 개선에 힘써야 한다거나, 판사에 대한 인사상 불이익이 있어야 법관 블랙리스트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러한 인사상 불이익은 없다는 글들이 올라왔고, 그 반박 글도 올라왔다.

일부 언론은 전국법관대표회의를 ‘판사 노조’라 비하하고,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를 국제인권법연구회와 법원행정처 사이의 권력투쟁으로 폄훼했다. 나를 비롯한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 판사들을 ‘정치 판사’로 낙인찍고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 판사들이 전국법관대표회의를 장악했다는 오보도 계속 냈다. 추가 조사를 촉구하는 익명 게시판의 의견 중 험한 의견만을 발췌해 추가 조사를 촉구하는 판사들을 무뢰배로 몰아가기도 했다.

한 언론은 법관 블랙리스트의 개념을 ‘판사 뒷조사 파일’에서 ‘판사 인사상 불이익’으로 바꾼 후, 법관 블랙리스트가 존재하지 않는데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 판사들이 무리한 정치투쟁을 한다는 식으로 기사를 이어갔다. 판사들은 지치기 시작했다. 추가 조사를 촉구하는 동력은 눈에 띄게 약해졌다. 그렇게 상황은 정리되어가는 듯했다.

2017년 7월20일. 현안조사소위원회 위원장이었던 D 판사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해소를 위한 추가 조사를 촉구하는 의미로 사직서를 제출했다. 충격이었다. 나를 비롯한 현안조사소위원회 위원들도 미리 알지 못했다. 도대체 무엇이 두려워 추가 조사를 거부하는가, 무엇을 숨겨야 하기에 컴퓨터 조사를 하지 못하게 하는가, 판사들과 국민 앞에 숨겨야 할 사법행정이란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무엇 때문에 판사들의 자정 의지와 노력이 무시되는가.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앞에 할 수 있는 일은 목 놓아 우는 것뿐이었다. 그날은 그런 하루였다. D 판사의 사직을 막기 위해 전국법관대표회의 운영위원회와 현안조사소위원회는 대법원장 면담을 요청하거나 컴퓨터 자료의 보존을 요청하는 등 할 수 있는 노력을 했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여전히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사법부의 ‘자정 무산’ 반성하며 금식

현안조사소위원회 위원들은 참 많이 만났다. 춘천에서 근무하던 나는 업무가 끝나고 서울에 가서 모임을 하고 새벽에 다시 춘천에 돌아와 사무실에서 야근을 하는 생활을 이어갔다. 할 수 있는 것은 없고, 동력은 사라지고, 이렇게 판사들의 자정 의지가 꺾이게 되는가 싶어 하루하루가 참을 수 없이 무참했다. 판사들의 자정 의지를 위임받았다는 책임감 아래 몇 번이나 추가 조사 시뮬레이션을 하고 발견되는 문제점을 검토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 검토 과정은 나중에 실시된 2차 추가 조사 과정에서 노력과 시간을 줄이는 데 도움을 주었다고 들었다.

판사들의 추가 조사 촉구와 양승태 대법원장의 거부 사이에 무더운 여름이 놓여 있었다. 여름의 끝자락에 현안조사소위원회 위원이었던 E 판사가 사법부의 자정 무산을 반성하며 10일간 금식을 했다. 이규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은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어 감봉 4개월 징계를 받았다. 2017년 9월22일 양승태 대법원장은 퇴임했다.

그 이후 과정은 비교적 소상히 알려져 있다. 신임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에서 2차, 3차 조사위가 발족했다. 2·3차 조사 결과 사법행정권 남용과 재판거래 의혹이 담긴 양승태 대법원 시절 문건들이 일부 발견되었다. 판사들의 요청으로 위 문건들은 국민 앞에 날것으로 공개됐다. 강제징용 판결 등 재판거래 의혹이 걷잡을 수 없이 불거졌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장고 끝에 검찰 수사에 협조하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검찰 수사가 진행되었고, 청와대와 사법부 간 강제징용 재판 협의 등 각종 위헌적인 행각이 발견되었다. 헌정사상 최초로 사법부 수장이었던 자가 구속되었다. 올해 1월 법원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그리고 다시, 이탄희 판사가 사직서를 제출했다. 2019년 1월이었다. 2017년의 그 사직서로부터 2년 만이다. 그가 코트넷에 올린 사직의 변은 “2년간 유예되었던 사직서라 생각하겠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미련도 두려움도 줄어서 좋습니다”라고 시작한다.

“지난 시절 행정처를 중심으로 벌어진 헌법에 반하는 행위들은 건전한 법관 사회의 가치와 양식에 대한 배신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법관이 추종해야 할 것은 사적인 관계나 조직의 이익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공적인 가치입니다. (중략) 시작만 혼자였을 뿐 많은 판사님들 덕분에, 그리고 나중에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은 분들 덕분에 외롭지 않았습니다. (중략) 판사가 누리는 권위는 독립기관으로서의 권위라고 생각합니다. 조직원으로 전락한 판사를 세상은 존경해주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말대로, 성운처럼 흩어진 채로 모여 있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숙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같이 생각하는 판사들이 법원 곳곳에 많았다. 이 지난한 과정을 버텨내며 사법농단 의혹을 드러낸 진정한 힘은 그들에게서 나왔다.

기자명 류영재 (판사·춘천지방법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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