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28일 미국 법무부는 중국의 글로벌 통신장비 업체인 화웨이 및 이 회사 최고재무책임자(CFO) 멍완저우 부회장을 23가지 혐의로 기소했다. 혐의는 크게 둘로 나뉜다. 하나는, 미국 테크 기업의 기술을 훔쳤다는 것. 수년 전, 화웨이 직원이 미국 모바일 통신회사 T-모바일의 스마트폰 내구성 테스트 로봇인 태피(Tappy)의 팔 하나를 빼돌렸다가 적발된 바 있다. 화웨이는 2017년 T-모바일에게 480만 달러 규모의 손해배상을 하라고 선고받았다. 미국 법무부 발표에 따르면, 화웨이는 다른 회사의 지적재산을 절취한 직원들에게 그 가치에 따라 보너스까지 주었다.

또 하나의 주요 혐의는, 국제 경제제재를 받고 있는 이란에 화웨이 통신장비를 수출했는데, 그 대금 결제 사실을 감추기 위해 대형 은행을 속였다는 것이다. 사실은 화웨이 자회사인데 이를 감추기 위해  위장 법인으로 은행에 계정을 만든 뒤 자금을 돌리는 방법이다. 런정페이 화웨이 회장의 딸인 멍완저우 부회장은 지난해 12월1일 이 같은 혐의로 캐나다에서 체포되어 사실상 가택 연금되어 있다. 미국 법무부는 캐나다에 멍 부회장에 대한 ‘범죄인 인도’를 요청한 상태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런정페이 회장까지 비밀리에 기소되었다는 설이 떠돈다. 미국 법무부는 ‘기소 이유’에서, 화웨이의 범죄행위들이 개별 직원의 일탈이 아니라 “기업의 최상부까지 연관되어 있다”라고 주장했다.

ⓒAFP PHOTO미국은 2012년부터 통신장비 및 통신망 시장에서 화웨이를 사실상 퇴출했다. 위는 베이징의 화웨이 매장.

화웨이 기소에 관한 미국 법무부의 공식 의견은 ‘탈법 행위에 대한 처벌’일 뿐이다. 어떤 정치적 의도도 없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그 누구도 미국 정부 측이 그렇게 순수하다고 믿지 않는다. 심지어 트럼프 대통령 자신도 멍 부회장 체포 직후 로이터 통신과 인터뷰하면서 “(멍완저우가 대중국) 협상의 일환이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미·중 간 대결이라는 글로벌 차원의 싸움에 일개 민간기업인 화웨이가 얽히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화웨이가 글로벌 차원에서 승승장구 중인 ‘테크’ 기업이기 때문이다. 이 회사 영문 홈페이지의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화웨이는 2017년 한 해 매출이 925억4900만 달러로 중국 내외에서 18만여 명을 고용하고 있다. 170여 개국에서 영업하며 다수의 나라에 1500개에 달하는 통신망을 깔았다. 지구 인구의 3분의 1을 커버하는 범위다. 지난해 매출은 1100억 달러에 가까운 것으로 추산되며, 스마트폰 판매 대수에서도 애플을 따돌리고 글로벌 2위로 자리 잡았다(1위는 삼성전자)

화웨이는 5G(5세대 이동통신) 기술 및 시장의 선두 주자다. 5G는 LTE 등 4G보다 수십 배 빠른 전송·응답 속도를 가진,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인프라. 자율주행 자동차, 사물인터넷(자동차·산업로봇·가전제품 등 모든 ‘사물’을 인터넷으로 연결해서 인간의 일상생활을 편리하게 하는 기술) 등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대표 기술들은 5G로 엄청난 규모의 데이터를 빠르고 자유롭게 전송해야 실현 가능하다. 이런 능력으로 화웨이는, 미국이 견제해온 ‘중국 제조 2025(Made in China 2025:중국을 글로벌 첨단 제조업 부문에서 지배적 국가로 만들기 위한 국가 주도 산업정책)’에서 핵심적 구실을 할 것으로 기대되어온 업체이기도 하다.

ⓒEPA화웨이 기소와 관련한 기자회견장의 매슈 휘터커 미국 법무장관 대행(왼쪽)과 크리스토퍼 레이 FBI 국장.

화웨이는 중국공산당의 일원인가

화웨이는 같은 이유로 미국 등 서방국가 처지에서는 견제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인터넷으로 모든 인간과 사물이 연결되리라 예상되는 가까운 미래에, 그 인프라(5G)의 생산자가 하필 ‘중국 국적’의 기업이라는 점이 못마땅한 것이다. 만약 화웨이가 유럽연합(EU) 회원국이나 영국 같은 서방국가 기업이라면 지금과 같은 상황은 없었을 것이다. 서방국가의 경우, ‘민간 영역’과 ‘국가 영역’이 법률이나 사회규범 차원에서 어느 정도 분리되어 있다고 믿어진다. 예컨대 민간 영역의 기업은 순수하게 ‘상업적 목적’ 아래 움직이는 것으로 간주된다. 기업 활동에 대한 국가의 개입은 공식적 차원에서는 금지되거나 엄격히 제한된다.

그러나 중국에서 기업과 국가의 관계는 매우 모호하다. 명목상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는 민간 영역과 국가 영역의 분리가 서방만큼 뚜렷하지 않다. 국가의 구성 원리로 공산당이 사회·경제·정치를 전면 지배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그렇다면 중국 정부가 국제정치적 목적에 따라 자국 기업인 화웨이를 움직일 수도 있지 않을까? 예컨대 화웨이가 다른 나라에 깔아놓은 통신망에 백도어(back door:정상적인 인증 절차를 거치지 않고, 컴퓨터와 암호 시스템 등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를 심어 기밀 정보를 빼돌리거나 유사시엔 상대국의 통신체계를 망가뜨리게 명령할 수 있다고 의심받는다. 물론 ‘추상적 의혹’에 불과하다. 미국 등 서방국가 처지에서 볼 때, ‘국가 안보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할 소지가 전혀 없다고 하기는 어렵다. 시진핑 주석의 집권 이후 권위주의가 강화되면서 서방국가의 이런 의혹은 더욱 짙어졌다. 한마디로 서방국가, 특히 미국은 화웨이를 기업이라기보다 중국 정부 내지 공산당의 일원으로 본다. 

ⓒAP Photo캐나다에서 체포된 뒤 보석으로 풀려난 멍완저우 화웨이 최고재무책임자(오른쪽).

더욱이 화웨이의 기업지배구조는 이런 의혹을 더욱 부추긴다. 화웨이는 공식적으로 국유기업이 아니라 ‘상장되지 않은 100% 민간기업’이다. 중국 정부나 공산당은 화웨이의 지분을 0.1%도 가지고 있지 않다. 화웨이는 비상장 기업이기 때문에 그 주식을 시장에서 사고팔 수 없다. 그렇다면 화웨이의 소유자는 누구인가? 2017년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이 회사의 피고용인 8만818명(2017년 12월31일 현재)이 98.6%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노동자 소유 기업’이다. 피고용인들이 해당 주식을 매입한 것이 아니다. 회사 측에서 실적에 따라 매년 주식을 나눠준다. 당연히 팔 수도 없다. 퇴사할 때는 (자신의 소유라고 주장되는) 주식을 반납한다. 주주로서 받는 배당금은 성과급 형식으로 지급된다. 화웨이 주식 중 나머지 1.4%는 런정페이 회장의 소유다.

화웨이에서도 주주총회는 매년 열린다. 주주는 두 종류밖에 없다. 피고용인 주주 8만818명을 대표한다는 ‘화웨이 조합’과 런정페이 회장이다. 어느 나라에서나 주총 결의 사항의 핵심은 이사 선출인데, 화웨이 주총에서는 이를 둘러싼 싸움이 발생할 일이 없다. ‘화웨이 조합’이 이사들(2017년 12월31일 당시 17명)을 추천하는데, 그들의 공식 임명 여부를 가리는 주총 참석자는 추천인인 화웨이 조합과 런정페이 회장밖에 없기 때문이다.

화웨이의 외부인은 이사로 들어갈 수 없도록 원천 봉쇄된 구조다. 이런 절차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공개되지 않는다. 모두가 주인이면 아무도 주인이 아니다. 중국공산당이 이사들을 뽑아놓고 조합과 런정페이 회장에게 ‘연기’를 시킬 수도 있다. 런정페이 회장은 인민해방군 정보기술학교 출신으로 공산당과 인연이 깊다. 그래서 서구 언론에서는 ‘화웨이의 진정한 주인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제기한다. 중국 정부가 명령하면 화웨이가 기꺼이 자사 구축 통신망을 통해 다른 나라 기밀을 도청할 것으로 의심하는 이유다.

물론 화웨이 측은 이런 의혹을 전면 부인해왔다. 런정페이 회장은 지난달 중순 언론 인터뷰를 통해 “내가 인민해방군 및 공산당 경력을 가진 것은 사실이지만, 중국 정부가 데이터를 내놓으라고 하면 단호히 거절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은 설사 화웨이 경영진이 선의를 갖고 있다 해도 믿을 수 없다고 본다. 중국의 국내 법률 때문이다.

미국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2월7일자)는, 미국 정보 부문 관료들이 2015년 이후 중국에서 잇따라 제정된 각종 법률 조항을 분석하면서 “화웨이를 포함한 모든 중국 기업은 자국 정부의 직접적 명령에 종속된다”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주장한다. 2015년의 중국 국가안보법에 따르면, 개인·국가기관·공공조직·사회조직·기업 등은 “국가안보를 유지할” 의무를 진다. 이 의무를 수행하지 않으면 처벌된다는 의미다. 2016년에 제정된 사이버안보법 제28조에 따르면, 화웨이 같은 통신망 사업자들은 정보 부문 관료들에게 ‘기술적 지원과 협력’을 제공해야 한다. 2017년의 국가정보법은 모든 조직과 시민들이 국가 정보 업무에 협력하도록 규정했다.

“모든 중국 기업은 정부의 직접 명령에 종속”

〈포린폴리시〉의 이 같은 해석은 화웨이에 외통수다. 경영진이 중국 정부의 부당한 압박을 거부하는 경우 국내법을 어긴 범법자로 전락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런정페이가 중국의 가혹한 심문을 받고 반국가 사범으로 몰릴 위험까지 감수하면서 ‘기업인으로서의 의무’를 지킬까? 서방국가의 다음 요구는 화웨이 같은 개별 기업 경영진의 선의나 맹세가 아니라 중국 국내 법률을 개정하라는 쪽으로 갈 것이다.

서방국가들은 화웨이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는 추세다. 미국은 이미 2012년부터 통신장비 및 통신망 시장에서 화웨이(와 중국의 또 다른 거대 통신장비 업체인 ZTE)를 사실상 퇴출시킨 상태다. 최근에는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 정부가 국내 IT 기업의 화웨이 5G 장비 매입을 불허했다. 일본 역시 관련 법안을 준비 중이라고 알려졌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은 IT 기술 개발을 위한 연구자금을 화웨이로부터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화웨이 처지에서 단지 서방국가 판로가 막히는 것이라면 어느 정도 견딜 수 있다. 중국 내부와 아시아·인도 시장으로 진출하면 된다. 유럽 일부 국가도 공략할 소지가 있다. 화웨이는 최근 네덜란드 정보통신 회사인 알티스(Altice)와 5G 협상을 마쳤다. 영국의 거대 통신업체인 보다폰(Vodafone) 등도 화웨이의 5G 장비를 시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미국은 화웨이를 단번에 주저앉힐 만한 무기를 갖고 있다. 퀄컴·인텔 등 미국 기업이 통신장비의 핵심 부품을 화웨이에 팔지 못하도록 막는 방법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미 지난해 4월, ZTE에 대한 미국 기업들의 부품 수출을 금지한 바 있다. 이 조치는 ZTE 측이 벌금 14억 달러를 내고 경영진을 바꾸기로 약속하면서 일단 해제되었다. 지난해 10월 말에는 중국 정부가 ‘중국 제조 2025’ 프로젝트의 핵심 사업으로 육성해온 반도체 제조업체 ‘푸젠진화’에 대한 미국 기업의 부품 수출을 차단했다. 다음 차례가 화웨이일 수 있다. 미국 의회는 경제제재 및 무역 관련 법규를 위반한 중국 기업에 미국 기술의 판매를 체계적으로 차단하는 법안을 준비 중이다. 1월28일 화웨이 기소에 따른 법률적 절차가 ‘유죄’ 쪽으로 마무리되면, 미국 정부는 화웨이를 단번에 몰락시킬 수 있는 대량살상용 무기를 손에 쥐는 셈이다.

물론 화웨이는 ZTE처럼 거액의 벌금을 물고 기업지배구조를 일부 바꾸는 것으로 위기를 봉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중 무역협상이 진행되는 지금 상황에서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당분간 압박 수단을 계속 가동하기로 결심한 듯하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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