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인 민주당과 진보 진영은 모든 정치적·법적 수단을 동원해 즉각 저지하겠다고 나섰다. 심지어 일부 공화당 의원들도 ‘장벽자금’ 확보를 위해 의회를 우회한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선포가 삼권분립을 훼손하는 초헌법적 발상이라며 반발했다. 이런 가운데 2월19일 현재 캘리포니아 주를 포함한 16개 주가 국가비상사태 선포에 대해 “위헌적이고 불법적”이라며 연방법원에 위헌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두고 “국경개방파 민주당원들과 급진 좌파의 짓거리”라고 비난하면서 선포를 철회할 뜻이 전혀 없음을 분명히 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기 며칠 전 멕시코와 인접한 국경도시 엘파소에서 우익 지지자들이 “장벽을 건설하라!”고 외치는 가운데 “이번엔 반드시 장벽 건설을 완수할 것”이라고 천명하기도 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장벽 건설을 이행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공언은, 미국이 범죄적 이민자들과 암흑 세력에 의해 포위당했다며 농촌 지역의 백인 유권자들에게 호소해 덕을 본 2016년 대선 당시의 전술을 2020년 대선에서도 되풀이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다”라고 풀이했다.
장벽 건설에 관한 미국 시민들의 여론은 어떨까?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가 지난 1월 중순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중 58%가 국경 장벽 건설에 반대했으며 찬성은 40%에 그쳤다. 조사 결과를 자세히 보면, 이런 여론이 선거에 미칠 영향은 단순히 찬반의 비중으로 따질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친공화당 유권자들은 무려 82%가 장벽 건설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반면 친민주당 진보적 유권자들은 93%가 반대했다. 장벽 건설 문제를 두고 친공화당, 친민주당 유권자 간에 얼마나 간극이 큰지 알 수 있다. 지지율이 37%로 최악임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비상사태를 선포할 수 있었던 데는 이런 보수 유권자들을 믿었기 때문이다.
국가비상사태 선포로 정국은 꽁꽁 얼어붙었다. 당장 민주당은 국가비상사태 선포의 종식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하원에서 통과시킬 태세다. 현재 하원은 민주당이 장악해 통과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일단 하원을 통과한 결의안은 상원으로 넘어가 표결한다. 현재 상원은 공화 53석, 민주 47석으로 공화당 우세다. 공화당 소속 상원의원 가운데 10여 명이 트럼프 대통령의 비상사태 선포에 부정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공화당 의원 중 4명만 이탈해도 상원 통과가 가능하다. 다만 의회를 통과한 ‘국가비상사태 종식 결의안’은 대통령의 서명을 받아야 발효된다. 국가비상사태 선포의 결정적 책사로 꼽히는 우익 참모 스티븐 밀러 백악관 선임보좌관은 CBS 방송에 나와 “(국가비상사태 종식 결의안이 대통령에게 오는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다”라고 시사했다. 대통령의 거부권을 다시 뒤집으려면 상·하원 의원 3분의 2가 지지해야 한다. 민주당이 상원에서만 최소한 19명의 공화당 의원을 설득해야 하는데, 사실상 불가능하다.
선거도 문제다. 내년 11월 대선과 함께 치러질 의회 중간선거엔 공화당 상원의원 22명이 민의의 심판대에 오른다. 이들은 결국 표를 의식해 국가비상사태 지지로 돌아설 가능성이 크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일찌감치 국가비상사태 선포의 위험성을 경고해오던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가 지지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힌 데 이어 톰 틸리스, 존 크로닌, 톰 코턴을 비롯해 내년 선거를 치러야 하는 공화당 상원의원들은 지역구민을 의식해 태도를 유보한 상태다.
이 같은 상황에서 결국 남은 수단은 법원의 판단을 구하는 것이다. 캘리포니아 주 등 16개 주가 위헌 소송을 제기한 것도 그래서다. 미국민권연맹(ACL)과 정부 감시 민간단체인 퍼블릭 시티즌(PC)도 소송 방침을 천명했다. 국경지대 주민들도 강제 토지수용이 자신들의 재산권을 침해한다며 소송을 제기하리라 보인다.
위헌 소송의 논리적 근거는 대충 두 가지다. 하나는, ‘국경지역에서 불법 이민자의 급증으로 국가 안보 위협이 커졌기 때문에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다’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는 논리다. 최근 통계 수치로 보면 불법 이민자가 급증하기는커녕 오히려 줄어든 것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 당국의 불법 이민자 체포 건수는 2017년 최근 40년을 통틀어 최저치로 떨어졌다.
다른 하나의 근거는, 트럼프 대통령이 특정 항목에 배정된 예산을 ‘국가 안보’라는 이름으로 전용하는 것은 위헌적 행위라는 주장이다. 16개 주가 제출한 소장들은 “대통령은 의회의 뜻에 반해 장벽 건설용으로 예산을 전용할 수 없다”는 논리를 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당초 장벽 건설 예산으로 의회에 요구한 금액은 57억 달러다. 그러나 국가비상사태 선포 이후에는, 의회의 승인으로 용도가 확정된 예산 항목에서 모두 67억 달러를 장벽 건설로 전용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 세목을 보면 국방부의 마약퇴치용 자금에서 25억 달러, 재무부의 국고환수액에서 6억 달러, 국방부의 군사시설 자금에서 36억 달러 등이다. 이 돈으로 남북 국경지대의 취약지구에 234마일(약 375㎞) 길이의 장벽을 구축한다는 것이다.
이번 사태를 지켜보는 대다수 법률 전문가들은 위헌 소송이 설령 하급심에서 승리해도 연방대법원에서 패소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오하이오 주립대학 법학과 피터 세인 교수는 “법원이 이민 및 국가 안보 문제에서는 대통령 결정을 존중하는 경향이 있다”라고 〈로이터 통신〉에서 말했다. 현재 연방 대법원은 보수 성향 대법관 5명 대 진보 성향 대법관 4명으로 보수 우위의 구도이다.
다만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장벽 예산을 집행할 수 없다. 소송이 지방법원을 거쳐 대법원까지 도달하려면 적어도 1년 이상 걸릴 것으로 보인다. 내년 대선 때까지도 장벽 건설이 본격화될 수 없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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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 텔레비전을 켜두고 마감을 했다. 결정적인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지난해 4·27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때부터 그랬다. 6·12 싱가포르 정상회담, 9월 평양 정상회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