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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균의 죽음’ 언제까지 봐야 하나

2019년 03월 12일(화) 제599호
당진·김연희 기자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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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엔 현대제철 당진공장이다. ‘하청업체’ 직원이 ‘컨베이어벨트’를 수리하다 ‘협착 사고’로 사망했다. 김용균씨를 떠올리는 죽음이다. 위험의 외주화를 근절하려면 ‘김용균법 이상의 법’이 필요하다.

현대제철 당진공장의 총면적은 740만㎡로 서울 여의도의 2.5배 규모다. 공장은 A·B·C 세 지구로 나누어져 있다. 원료 투입부터 철강제품 생산까지 설비를 모두 갖춘 일관제철소는 포스코 포항제철소와 현대제철 당진공장 단 두 곳이다. 현대제철 당진공장 노동자들이 출퇴근 때 꼭 지나가게 돼 있는 출입구에는 회사명보다 더 크게 걸려 있는 문구가 있다. ‘안전제일.’

이 문구가 무색하게 노동자 한 명이 또 목숨을 잃었다. 2월20일 원료 이송용 컨베이어벨트에서 보수 공사를 하던 이 아무개씨(50)가 협착 사고를 당했다. 이씨는 외주업체 ‘광양’ 소속 직원이다. 현대제철 당진공장은 이 업체와 계약을 맺고 지난해 8월부터 컨베이어벨트의 풀리래깅(롤러의 고무판막이) 교체를 진행 중이었다. 이씨는 작업용 자재를 챙겨 돌아오는 도중에 사고를 당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청업체, 컨베이어벨트, 협착 사고. 지난해 12월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숨진 김용균씨를 떠올리게 하는 죽음이었다. 현대제철 당진공장 비정규직지회 노조 관계자가 전하는 사고 현장 상황도 김용균씨 때와 그리 다르지 않다. “현장은 분진과 소음이 무척 심하다. 일상적인 대화를 할 수 없고, 손을 뻗어도 내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위험한 순간에 줄을 당겨 기계를 멈출 수 있는 ‘풀코드 스위치’라는 설비가 있다. 그러나 스위치를 잡아도 소용이 없을 만큼 설비가 느슨했다.” 사고 당일 이씨는 광양 소속 직원 3명과 함께 작업 중이었다. 하지만 2인1조 규정도, 1.2m 높이 안전펜스도 사고를 막지 못했다.
ⓒ시사IN 신선영
2007년부터 현재까지 노동자 35명이 사망한 현대제철 당진공장. 출입구마다 걸려 있는 문구는 ‘안전제일’이다.

2007년 이후 이번 사고까지 현대제철 당진공장에서 작업 도중 사망한 노동자는 모두 35명이다(아래 표 참조). 이 가운데 29명이 사내하청 혹은 외주업체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이씨가 사고를 당한 곳은 C지구 원료공장의 트랜스퍼 타워(환승탑)이다. 배에서 하역한 철광석·석회 등 원료가 이곳을 통과하며 종류별로 분류돼 저장고로 이동한다. 동일한 타워는 아니지만 유사한 공정을 수행하는 C지구의 다른 트랜스퍼 타워에서 이미 사망 사고가 두 번 일어났다. 2010년에 트랜스퍼 타워에서 장비를 점검하던 노동자가 추락사했다. 2016년에 또 다른 트랜스퍼 타워에서 철광석 분배 설비인 트리퍼카와 노동자가 충돌했다. 모두 하청업체 소속 직원이었다. 2016년 사망 사고 직후 민주노총 금속노조와 현대제철 당진공장 비정규직지회(이하 비정규직지회)는 컨베이어 라인 사이 진입로와 통행로가 협소해 위험하다고 지적했지만 바뀐 것은 없었다.

2013년에는 전로제강공장 3전로 내부에서 보수공사를 하던 작업자 5명이 질식해 목숨을 잃었다. 전로 내부에 작업자가 남아 있는데도 아르곤 가스가 유입되는 바람에 발생한 참사였다. 숨진 작업자 5명은 하청업체인 한국내화 소속이었다. 사고 직후 고용노동부는 현대제철 당진공장과 협력업체, 관련 건설업체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항 1123건을 적발하고 과태료 6억7025만원을 부과했다. 그러나 그 뒤에도 사고는 반복됐다. 2013년 한 해만 해도 현대제철 당진공장에서 사망한 노동자는 모두 10명이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제공
현대제철 당진공장 환승탑 내부에는 컨베이어벨트 등에서 발생한 분진이 쌓여 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제공
현대제철 당진공장 환승탑 내부의 컨베이어벨트.

안전보다 기계의 속도를 우선하는 작업


당진공장에서 사망 사고가 되풀이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안상혁 비정규직지회 수석부지회장은 제철공장이 내포한 위험성에 대해 말했다. “기본적으로 중량물 작업이다. 제품 하나가 100t씩 한다. 살짝만 부딪혀도 중대 재해사고가 될 수 있다.” 게다가 제철소의 모든 작업은 연속 공정이다. 일관제철소인 당진공장은 부두에 들어온 배에서 퍼낸 원료를 컨베이어벨트로 옮긴 뒤 원료공장-고로(용광로)-제강-연속 주조를 거쳐 완제품 생산까지 공정이 물 흐르듯 이어진다. 한번 지어놓은 고로는 설비수명이 다할 때까지 절대 꺼져서는 안 된다. 배에 실린 원료를 정해진 기간 안에 다 하역하지 못하면 하루 수천만원에 달하는 체선료도 발생한다. 작업자들은 안전보다 기계의 속도를 우선시하게 된다.

이런 작업 특성을 고려하면, 제철소 환경은 안전에 각별히 유의해 설계돼야 한다. 현실은 정반대다. 홍승완 비정규직지회 지회장은 “나도 운이 좋아서 살았다”라고 말했다. 홍 지회장은 2009년 사내 하청업체 입사 이후 열연공장에서 일했다. “100t이 넘는 철강 제품들이 크레인에 달려 머리 위로 왔다 갔다 한다. 와이어가 끊어져서 작업자들 옆에 떨어졌는데 내가 목격한 것만 해도 두 번이다. 와이어가 늘어져서 안에 심이 다 보이는데도 계속 썼다. 두 번 사고 나니까 그제야 와이어 교체 주기를 단축했다.”

제철소의 다단계 하도급 구조 역시 위험을 심화시킨다. 고용노동부 집계에 따르면 현대제철 당진공장에 근무하는 노동자 2만4315명 중 사내하청 등에 소속된 비정규직 노동자는 1만2849명으로 52.8%를 차지한다. 도급계약을 맺은 협력업체는 53개이다. 비정규직지회는 사내 하청 이외에 단기간 계약을 맺는 외주업체 노동자까지 포함하면 당진공장에서 일하는 3명 가운데 2명이 비정규직 노동자일 것이라 본다.

당진공장의 하청은 상당히 세분화돼 있다. 예를 들어 컨베이어벨트는 원청 소유지만 컨베이어벨트마다 정비를 담당하는 사내 하청업체가 다르다. 하나의 컨베이어벨트에서도 부품마다 고무벨트를 정비하는 업체와 롤러를 교체하는 업체가 따로 있다. 여기에 이번에 사고를 당한 이씨가 소속된 광양처럼 수리·보수를 위해 단기간 들어오는 외주업체들이 또 추가된다. 현대제철 당진공장 비정규직 해고자 최병률씨는 “대보수 기간에는 외주업체 직원 수백명이 들어온다. 작업 환경이 낯서니까 손발도 잘 맞지 않고 위험에도 취약하다”라고 말했다. 노동의 분절은 소통과 소속감의 부재로 이어진다. 바로 옆에서 사고가 나도 무관심하게 된다.

보통 생산·설비·운전은 정규직 운영팀이 맡는다. 정규직에도 정비팀이 있다. 정규직 운영팀과 정규직 정비팀 사이에는 무전기로 연락이 가능하다. 그런데 정규직 운영팀과 비정규직 정비팀 간에는 직접 소통할 수 없다. 불법파견의 증거로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열연공장에서 생산 설비를 정비했던 최병률씨는 이렇게 말했다. “하청업체에서 정비를 하면 정규직 운전실에서 테스트를 한다. 그때 정규직 운전실과 바로 연락을 주고받을 수 없다. 정규직 정비팀이 하청업체 직원 옆에 있다가 정규직 운전실에서 온 무전을 전달해준다. 그러다가 서로 ‘사인’이 맞지 않으면 협착 사고가 발생하는 것이다.”

안전 설비 개선을 요청할 때도 마찬가지다. 현대제철은 산재를 방지하기 위해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운영한다. 노동조합과 사업자가 마주 앉아 개선 사항을 논의하고 현장을 같이 돌아보기도 한다. 그런데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들은 이 테이블에 참여하지 못한다. 안상혁 수석부지회장은 “현장 작업은 대부분 하청업체 직원들이 하는데 현장의 문제점을 지적하지 못한다. 협력사 대표한테 건의해봤자 실행할 권한이 없다”라고 말했다. 결국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주로 투입되는 작업장의 개선은 더디고, 위험한 상태로 남아 있게 된다.

ⓒ연합뉴스
2월20일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맨 오른쪽) 등 유가족은 ‘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했다.
김용균법에 따른 원청의 처벌은 벌금형?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 격차는 현대제철 당진공장 곳곳에 포진해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는 지난해 11월 현대제철 당진공장에 차별 시정 권고를 내렸다. 인권위가 사내 하청업체 직원들에 대해 차별 시정을 권고하는 건 처음이었다. 진정을 낸 현대제철 당진공장 비정규직지회에 따르면 비정규직들은 공장 내부 주차장을 사용할 수 없다. 목욕탕 탈의실도 정규직은 전자 보안장치가 달려 있는 반면, 비정규직은 열쇠가 없거나 문짝이 파손돼 있었다. 명절 귀향비, 자녀 교육비, 의료비도 현저히 낮은 대우를 받았다. 인권위는 진정인의 주장을 차별로 인정하고 적정 도급비를 보장하고 복리후생 차별을 시정하라고 권고했다.

홍승완 비정규직지회 지회장은 “산업안전보건위원회에 원·하청이 함께 참여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위험의 외주화’를 방지하기 위한 근본 해결책은 정규직화와 입법이겠지만 말처럼 쉽지는 않은 일이다. 그렇다면 먼저 안전을 위해 원청과 하청이 소통할 수 있는 창구를 만드는 일부터 해야 한다. 시급하다. 매년 사람이 죽어나가지 않나.”

고용노동부는 최근 3년간 산재 발생 정도를 고려해 보험료율을 정하는데,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는 원청의 산재보험료율 산정에 반영되지 않는다. 그 결과 현대제철 당진공장은 지난 5년간 산재보험료 105억원을 감면받았다. 김용균씨 사고를 계기로 28년 만에 개정돼 일명 ‘김용균법’으로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은 하청업체 노동자의 산재 사고에 대해 그 책임을 원청에 물을 수 있도록 한다. 다만 시행까지 유예기간 1년을 두어 이번 사고는 김용균법에 적용되지 않는다.

2월20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유가족과 함께하는 기업처벌법 이야기 마당’에 참석한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 등 산재 사망자 유가족들은 ‘김용균법’을 넘어 기업처벌법 제정의 필요성을 논의했다. 이들은 김용균법에 따라 원청이 처벌을 받게 된다고 해도 가벼운 벌금형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 산업재해 방지에 미흡하다고 주장했다. 정치권에서도 관련 논의가 없지 않았다.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2017년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발의했고, 정동영 민주평화당 의원도 2018년 유사한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두 법안 모두 산안법 개정안이 아닌 특별법 제정 형태로 현재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기업처벌법은 ‘사업주 및 경영책임자’ 등을 명시해 책임 범위를 안건보건 담당자 이상으로 넓히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법인을 처벌한다는 개념이 생소해 입법이 어렵다는 의견도 있지만 이미 캐나다와 영국 등에서는 시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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