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17일, 스텔라데이지호 심해 수색에 나선 시베드 컨스트럭터호가 블랙박스 수거에 성공했다. 2월21일, 선원 유해 일부와 방수복으로 보이는 오렌지색 물체를 찾았다. 수색업체인 오션인피니티는 총 4대의 자율주행 무인 잠수정(AUV)을 동시에 투입해 수색 사흘 만에 성과를 냈다.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당시 24명 선원 가운데 구출된 필리핀 선원 2명은 “사고 당시 선원들은 모두 방수복을 입고 있었다”라고 증언한 바 있다. 발견된 뼛조각은 스텔라데이지호 선원의 유해일 가능성이 높다. 실종자 가족 처지에서는 그야말로 기대조차 못한 일이었다.

2월21일,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가족대책위원회와 시민대책위원회는 광화문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했다. 유해를 수습해달라고 정부에 촉구했다. 블랙박스를 수거한 오션인피니티는 곧바로 우루과이 몬테비데오로 돌아올 예정이었다. 유해가 발견되자 48시간 동안 기다리겠다고 한국 정부에 통보했다. 추가 비용 부담을 한국 정부가 제시할지 업체가 48시간 동안 지켜본 것으로 보인다. 주무부처인 외교부는 실종자 가족들과 긴급회의를 열었다. 정부는 오션인피니티에 유해를 수습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업체는 “유해를 수습할 만한 장비와 인력을 갖추지 못했다”라고 답했다. 실종자 가족 대표로 시베드 컨스트럭터호에 승선해 있던 김재복씨(가명·2등 항해사 허재용씨의 가족)한테 연락이 왔다. 시베드 컨스트럭터호가 수색현장에서 철수해 우루과이로 출발했다는 것이다. 실종자 가족들은 망연자실했다. 자신의 피붙이일지도 모르는 유해를 깊은 바다에 두고 떠나는 업체에 섭섭하고, 유해 수습을 못하고 배가 떠나는 사실을 가족들에게 알려주지 않은 정부에 분개했다. 가족들은 서둘러 보도자료를 내고 유해 수습에 대한 대책을 세워달라고 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현재 오션인피니티가 가지고 있는 장비로는 유해 수습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장비를 가지고 가야 한다. 수색이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영미 제공3월1일 오후 한국 정부 담당자, 실종자 가족, 오션인피니티 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선상 협상이 시작되었다.
72조각으로 부서진 선체

시베드 컨스트럭터호가 향하는 곳은 우루과이 몬테비데오항이다. 2017년 내가 두 달간 머무르며 스텔라데이지호 취재를 했던 곳이다. 2월28일 나는 다시 취재를 위해 우루과이 몬테비데오항으로 갔다. 우루과이는 스텔라데이지호 취재로는 세 번째 방문이다. 이번에 주무부처인 외교부와 해양수산부, 해경, 중앙해양안전심판원, 해양학자 등 총 13명으로 꾸려진 정부 협상단이 오션인피니티와 유해 수습 등을 논의하기 위해 우루과이로 파견되었다.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가족대책위원회 허영주 공동대표도 정부 협상단과 동행했다. 나는 취재를 위해 그 현장에 가기로 한 것이다.

3월1일 아침 7시(현지 시각)에 시베드 컨스트럭터호가 몬테비데오항에 입항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 부둣가에서 헤어진 그 배가 너무나 반가웠다(〈시사IN〉 제597호 ‘심해 3000m 향해 마침내 닻을 올렸다’ 기사 참조). 배에는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사고 원인을 밝혀줄, 이른바 블랙박스인 VDR(Voyage Data Recorder·선박항해 기록장치)까지 실려 있었다. 입항하는 시베드 컨스트럭터호를 보고 있자니, 마치 진실이 다가오는 것처럼 보였다. 정부 협상단과 함께 시베드 컨스트럭터호에 오르니 김재복씨가 먼저 보였다. 그와 함께 승선했던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박요섭 박사와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 백혁 박사도 보였다. 이들의 얼굴에는 잠도 못 자고 작업을 참관해야 했던 고생이 역력히 드러났다. 이날 오후 2시 시베드 컨스트럭터호 안에서 정부 협상단과 오션인피니티 사이에 선상 협상이 시작되었다.

ⓒ김영미 제공3월1일 아침 우루과이 몬테비데오항에 입항하는 시베드 컨스트럭터호.

정부 측에서는 외교부·해수부 담당자 등이 참석했다. 오션인피니티에서는 올리버 플렁킷 대표와 수색 총괄책임자 패트릭 벨 등 3명이 참석했다. 여기에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가족대책위원회 허영주 공동대표와 김재복씨가 동석했다. 오션인피니티의 작업 결과 보고가 있었다. 선체를 발견한 순간부터 VDR을 회수하는 과정이 생생하게 담긴 영상을 보여주었다. 심해 3400m에서 진행되는 작업은 놀라웠다. 영상에 나타난 스텔라데이지호의 모습은 처참했다. 플렁킷 대표는 선체가 침몰하며 72조각이 났다고 설명했다. 선교는 따로 떨어져나와 있었고 여기저기 찌그러진 철판이 보였다. 그중에 사다리가 보였고 그 사다리 밑에서 VDR을 수거했다. VDR은 원래 있었던 컴퍼스 데크에서 침몰 때 충격으로 나가떨어져 있었다. 그 처참한 장면을 보고 있던 정부 협상단과 실종자 가족들은 숨을 죽였다.

정부와 오션인피니티가 체결한 계약에 따르면 스텔라데이지호 선체 확인, 선원들 탈출 여부를 알 수 있는 구명벌 2척 확인, VDR 회수가 주요 과제였다. 또한 사고 원인을 규명할 수 있는 3D 모자이크 기법을 활용한 영상 구현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번 수색 기간에 오션인피니티는 선체 확인과 VDR 회수를 완료했다. 계약상 구명벌 확인과 3D 모자이크 영상 구현 등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우루과이 몬테비데오항으로 돌아온 뒤 다시 2차 수색에 나설 예정이었다. 2차 수색을 15일간 한 뒤 아르헨티나 남단 포클랜드로 최종 귀항하고 수색작업을 마칠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오션인피니티는 “선체 확인을 하는 과정에서 구명벌을 확인하려 했고 배가 72조각이 나서 구명벌 확인은 불가능하다. 또한 3D 영상은 이미 촬영된 영상으로 제작할 수 있다. 2차 수색을 하지 않겠다”라고 통보했다. 허영주 공동대표는 “업체의 주장이 맞지 않다. 2차 수색을 통해 남은 작업을 해야 한다. 가족 처지에서는 유해를 충분히 수습할 수 있었음에도 빈손으로 돌아온 업체 사람들이 옆에 앉아 있는 것조차 속상하다”고 말했다.

ⓒ김영미 제공스텔라데이지호 블랙박스(VDR)가 스페인 마드리드 공항을 통해 이송되고 있다.

일단 시베드 컨스트럭터호에 보관된 VDR을 확보하는 게 먼저였다. 수색 총괄책임자인 패트릭 벨이 VDR이 담긴 박스를 들고 왔다. 박스 뚜껑을 열자 특수용액에 잠겨 있는 VDR이 보였다. 공기와 접촉되면 손상될 수 있어 다시 뚜껑을 닫고 실리콘으로 봉합했다. 심해에서 건져올린 진실이 드디어 우리 손안에 들어온 것이다. 패트릭 벨 씨는 박스 한 개를 더 들고 왔다. 박스 안에는 부서진 스텔라데이지호 선체 조각 일부가 담겨 있었다. 박스를 열어보니 침몰 당시 충격 때문에 두 겹으로 납작하게 찌그러진 철 조각이 보였다. 스텔라데이지호의 어느 부분이었을지 모르는 파편 조각이었다. 이후 사고 원인 규명에 증거자료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선체 조각도 VDR과 함께 인수했다.

이날 오후 정부와 오션인피니티 사이 협상이 재개되었다. 협의 결과에 따라 유해 수습 가부가 결정 난다. 허영주 공동대표는 “우리보다 한국에 있는 어머니·아버지들의 마음이 더욱 애탈 것이다”라고 말했다. 협상 결과를 기다리는 사이 우루과이 언론이 취재를 왔다. 2017년 9월 내가 우루과이 기자협회를 찾아 취재할 때, 기자들은 “스텔라데이지호 사건은 안타까운데 망망대해 남대서양에서 어떻게 선원들을 찾겠느냐”라고 말했다. 2018년 4월 허영주 공동대표와 우루과이를 다시 찾았을 때, ‘에스펙타도르(Espectador)’ 라디오 방송사가 스텔라데이지호 사건을 소개해주었다. 이 방송 이후 허 공동대표는 우루과이 신문 등 10여 곳과 인터뷰를 했다(〈시사IN〉 제554호 ‘다시 스텔라데이지호를 찾아서’ 기사 참조). 우루과이 기자들에게 스텔라데이지호 VDR 회수는 무척 놀라운 소식이었다. 〈채널 4〉와 최대 일간지 〈엘파이스〉의 기자들이 이번에 취재에 나섰다. 〈채널 4〉 소속 취재기자 안토니오 씨는 “불가능한 일을 해낸 한국 정부와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 가족들이 놀랍다”라고 말했다. 허영주 공동대표는 우루과이 언론과 인터뷰하며 “지금 정부와 업체 간의 협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으며 VDR 회수로 가족들이 안도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허 공동대표의 바람과 달리 협상 결과는 좋지 않았다. 오후 6시30분쯤 갑자기 오션인피니티 대표가 협상장을 떠났다. 정부 측 한 관계자는 “2차 수색은 협의에 이르지 못했고 유해 수습도 결정하지 못했다. 이후에 서면을 통해 업체와 협의를 이어가겠다”라고 말했다. 허영주 공동대표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까요? 이렇게 협상이 결렬되면 유해 수습을 못 하는 건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발견된 유해 사라질까 잠 못 이뤄”

유해 수습과 사고 원인을 명확히 해줄 3D 모자이크 영상 구현 등을 두고 정부와 오션인피니티가 서면 협의를 이어가겠지만 실종자 가족들 처지에서는 애가 타는 상황이다. 허영주 공동대표는 “정부와 업체는 빨리 합의해 실종자들의 생사 확인과 사고 원인을 규명할 증거자료를 확보해달라. 우리는 발견된 유해가 깊은 바다에서 유실될까 봐 잠을 이루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3월4일, 정부 협상단은 한국으로 떠났다. 그리고 VDR 이송팀과 허영주 공동대표는 VDR 분석업체가 있는 영국 런던으로 향했다. VDR이 액체 안에 담겨 있어 공항 통과가 쉽지 않았다. 또 세관 검사 때 엑스레이를 투시하면 VDR 본체가 훼손될 수도 있다. 그래서 우루과이 몬테비데오 공항에서는 대사관 직원들이 나와서 공항에 협조 요청을 했다. 우루과이에서 마드리드를 거쳐 영국으로 가는 과정에서도 에어유로파와 영국항공의 협조를 얻었다. 에어유로파 항공사 직원은 “스텔라데이지호의 비극적인 사건을 애석하게 생각해 우리 항공사에서 최대한 협조하기로 했다”라고 밝혔다. 총 15시간 비행을 마친 VDR은 런던에 있는 한국 대사관으로 최종 이송되었다. 이곳에서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가 인수해 분석 업체로 향한다. VDR에는 선원들의 마지막 12시간 육성과 항해 기록이 저장되어 있다. 스텔라데이지호 사고 원인 규명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것이다. 총 8박9일에 이르는 이번 취재 동안 나는 스텔라데이지호 사건의 진실이 밝혀질 날이 멀지 않았음을 느꼈다.

기자명 우루과이·김영미 국제문제 전문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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