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 깜!” 공항 라운지 여기저기를 휘젓고 다니는 아이들을 말리느라 엄마의 언성은 자주 높아졌다. ‘깜’은 프랑스어로 조용히 하라는 의미다. 아이들이 먹다 흘린 과자 부스러기를 보고 공항터미널 환경미화원이 잔뜩 인상을 찡그리며 다가왔다. 한국어를 알지 못하는 보베트 씨(38)가 급히 일어나 연방 “쏘리, 쏘리”라고 대답했다. 보베트 씨는 땅에 떨어진 과자 부스러기를 맨손으로 훑어 모았다. 환경미화원은 깊은 한숨을 내쉬고 떠났다. 천진난만한 네 아이도 금세 얼어붙었다. 기약 없는 체류가 길어지면서 눈치 볼 일이 많아졌다.

면세점과 고급 라운지가 즐비한 인천공항 제1터미널 탑승동을 지나면 46번 게이트가 나온다. 앙골라에서 온 루렌도 씨(46)와 보베트 씨 가족이 짐을 푼 곳이기도 하다. 이들이 천 소파 여섯 개를 붙여 급한 대로 간이침대를 만들어 ‘집’ 삼아 지낸 지도 어느덧 70여 일. 공항터미널의 불빛과 소음은 선잠마저 깨우곤 했다. 다행히 부부의 아이들 레마(9)·로드(7)·실로(7)·그라스(5)는 잠투정이 없었다.

ⓒ시사IN 신선영루렌도 씨 가족은 송환될 것을 우려해 얼굴을 가렸으나 한 장난꾸러기만 얼굴을 드러냈다. 이 사진은 루렌도 씨 가족의 허락을 받아 게재한다.
문제는 음식이었다. 공항은 비쌌다. 수중의 돈이 금방 사라졌다. 이제 남은 돈으로 살 수 있는 ‘아침식사’는 200㎖ 우유 4개 정도다. 시민단체가 주고 간 시리얼에 우유를 부어 네 아이 아침 식사를 만들었다. 부부는 따로 아침을 먹지 않았다. 보베트 씨는 몸마저 성치 않다. 복통과 혈뇨 증상이 심해졌다. 지난 2월 변호사의 도움으로 긴급 상륙허가를 통해 병원 진료를 받았다. 루렌도 씨가 말했다. “모든 것이 제한돼 있어요. 먹는 것, 자는 것, 씻는 것 어느 것 하나 자유롭지 못해요.”
ⓒ시사IN 신선영루렌도 씨 가족이 기거하는 곳 바로 밖은 면세점이다. 첫째 아들 레마가 면세점 쪽 문가에서 놀고 있다.
앙골라에서 에티오피아를 거쳐 한국에 오기까지 26시간이 걸렸다. 인천에 도착한 지난해 12월28일, 입국은 불허됐고 여권은 압수당했다. 인천공항 출입국관리소에 따르면 “관광비자를 소지했지만 관광 목적이 아니었다”라는 이유였다. 실제로 그랬다. 루렌도 씨 가족은 본국에서의 박해를 피해 망명해 온 사람들이다. 콩고 출신인 루렌도 씨와 보베트 씨는 앙골라에서 갖은 차별을 받았다. 앙골라에서 내전이 발발했을 당시 콩고 정권이 반군을 지원했던 탓에 전쟁이 끝나고도 콩고인들에 대한 반감과 증오심이 계속됐다. 콩고인만이 가진 프랑스어 억양과 왼쪽 팔 백신 자국이 하나의 낙인이 되었다.
ⓒ시사IN 신선영보베트 씨가 아이들이 아침 식사로 먹을 우유를 사고 있다.
루렌도 씨는 앙골라에서 택시 운전사를 했다. 실수로 경찰 지프차와 부딪치는 사고를 낸 게 문제가 됐다. 루렌도 씨는 경찰에게 폭행당하고 10일간 구금됐다. 보베트 씨 또한 집에 들이닥친 경찰에 의해 폭행을 경험했다. 폭행 당시 흔적은 여전히 보베트 씨의 몸에 남아 있다. 보베트 씨의 안경은 한쪽 다리가 부러진 채 간신히 코에 걸려 있었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콩고인이 앙골라 경찰에게 잡힌다면 언제든 죽음으로 몰고 갈 수도 있는 상황이에요. 기본적인 인권마저도 기대할 수 없어요.” 관광비자는 한국에 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한국이 난민에게 피난처를 제공하는 나라라고 들었어요. 우리 가족은 안전과 보호가 필요했습니다.”

인천공항 출입국관리사무소는 단호했다. 루렌도 가족의 여권을 압수한 후 이들이 타고 온 에티오피아 항공에 송환 지시를 내렸다. 루렌도 씨에게 앙골라로 돌아가는 일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다. 송환되는 즉시 체포당해 죽을 수도 있다. 되돌아갈 수도, 밖으로 나갈 수도 없는 상황이다. 닷새 뒤인 지난 1월2일, 루렌도 씨는 난민 신청을 했다. 공항에서 난민 신청을 하는 경우 회부 심사라는 한층 더 엄격한 절차를 거치게 된다. 심사를 통해 난민심사를 받을 자격이 있는 신청자인지 아닌지를 판단해 회부되면 입국을 허가하고, 불회부 결정이 나면 본국으로 송환된다.

일주일 만에 출입국관리사무소로부터 답이 왔다. 불회부 결정이었다. 정확한 사유를 들을 수는 없었다. 법무부는 사회질서를 해칠 우려가 있다고 판단되거나 난민 신청을 할 명백한 이유가 없는 경우 불회부 결정을 내린다. 정작 루렌도 씨는 2시간 남짓 인터뷰하는 동안 통역이 지원되지 않아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제대로 설명하는 게 어려웠다고 말했다. 출입국관리사무소는 다시 한번 루렌도 가족이 타고 온 항공사에 송환 지시를 내렸다. “We abandon you.” 46번 게이트 앞에서 공항 직원으로부터 루렌도 가족이 들은 말이다.

ⓒ시사IN 신선영엄마가 낸 수학 문제를 푸는 로드.
현재 루렌도 가족의 불회부 결정에 대한 행정소송을 지원하고 있는 이상현 변호사는 “불회부 처분으로 아이 넷을 포함한 루렌도 가족이 처하게 될 상황에 대한 고려가 부족했던 심사였다. 행정당국이 사유를 정확하게 밝히지 않고 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출입국항의 난민 신청은 사전 심사의 성격을 가졌음에도 회부율은 2016년에는 35%(67명), 2017년에는 10%(22명)로 낮은 편이다. 대부분 불회부 처분에 대한 사유를 출입국사무소로부터 제대로 듣지 못하고, 이를 다툴 법적 방법이 있는지 고지받지 못한다. 행정소송 등으로 처분을 취소하지 않는 이상 사실상 송환을 면할 방법이 없다. 제1터미널에서 지내는 송환 대기자 74명

그런 까닭에 공항에 사는 것이 루렌도 가족만의 특별한 상황도 아니다. 대한변호사협회의 ‘외국인보호시설 실태조사’에 따르면 1월18일 기준 인천공항 제1터미널 송환 대기자는 루렌도 씨 가족을 포함해 모두 74명이다. 송환 대기실에 31명, 탑승동에 37명, 여객동에 6명이 머무르고 있다. 이들은 곧 본국으로 송환되거나 불회부 결정에 대한 행정소송의 결과를 기다리며 공항에 체류하고 있다.

법무부 난민과 관계자는 “아동을 동반한 점을 고려하고 본인 의사를 존중하여 출국 대기실 대신 이동이 자유로운 환승 구역에 머물도록 한 것이다. 난민인정심사 불회부 결정에 대한 취소소송이 진행 중이므로 소송 결과에 따라 조치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소송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빠르면 3개월 길면 반년까지 소요된다. 3월7일 루렌도 가족의 난민인정심사 불회부 결정 취소소송이 시작됐다.

ⓒ시사IN 신선영여섯 식구는 천 소파 여섯 개를 붙인 간이침대에서 잠을 잔다.
아이들은 공항터미널의 유리 창문을 통해 한국의 하늘을 본다. 잿빛 하늘로 비행기 수백 대가 사라진다. “밖에 나가면 무엇을 가장 하고 싶으냐”고 묻자 일곱 살 로드는 한참 뜸들이더니 “공부”라고 말했다. 대화를 듣던 보베트 씨가 “로드는 의사가 되고 싶어 한다”라고 말했다. 레마는 고고학자, 실로는 경찰관, 그라스는 소방관이 되고 싶다고 너나할 것 없이 떠들어댔다. 소파 위에서 보베트 씨가 로드에게 간단한 산수를 가르친 흔적이 보였다. 조용했던 소파 위가 금세 왁자지껄해지자 보베트 씨가 “깜” 하며 아이들을 자제시켰다.
기자명 인천/글 김영화 기자·사진 신선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you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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