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는 지금 병원에 있습니다. 내가 병원에 놀러 가면 할아버지는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얘야,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못했단다….”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난 아침마다 큰
광장을 가로질러 학교에 갔지. 광장 한가운데에는 커다란 천사 동상이 있었단다. 난 그 동상을 한 번도 쳐다보지 않았어. 학교 가느라 너무 바빴고 가방이 무거웠거든. 어떤 날에는 하마터면 버스에 치일 뻔했단다. 그때만 해도 차가 별로 없었는데도. 학교까지 가는 길은 꽤 멀었고 길에는 움푹 파인 구덩이도 있었어. 으슥한 곳도 있었지(〈할아버지의 천사〉 중에서).”

〈할아버지의 천사〉는 ‘그림책’입니다. 왜 아무도 할아버지를 건드리지 못했다는 건지, 도대체 할아버지의 옛날이야기가 어떤 재미가 있는지, 그림을 보지 않으면 알 수가 없습니다. 글과 그림을 함께 보는 순간 독자의 입에서는 ‘아!’ 하는 감탄이 튀어나옵니다. 때로는 ‘세상에!’ 하며 놀라기도 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아…’ 하는 탄식과 함께 눈물이 흐릅니다. 〈할아버지의 천사〉의 그림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요?

그림책 〈할아버지의 천사〉에는 주인공 두 명이 나옵니다. 바로 할아버지와 천사입니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에는 천사가 나오지 않습니다. 대신 할아버지가 학교 가는 길에 무심코 지나친 천사 동상이 있었다는 이야기만 잠깐 나옵니다. 참 신기한 일 아닌가요? 어째서 또 한 명의 주인공인 천사가 할아버지의 이야기 속에는 등장하지 않는 걸까요?

천사 믿지 않는 할아버지의 천사 이야기

〈할아버지의 천사〉 유타 바우어 지음, 유혜자 옮김, 비룡소 펴냄

사실 〈할아버지의 천사〉에 나오는 할아버지는 천사의 존재를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릴 적 버스에 치일 뻔했을 때 천사가 자신을 구해준 것을 알지 못합니다. 웅덩이에 빠질 뻔했을 때도 천사가 구해줬다는 것을 할아버지는 모릅니다. 으슥한 곳에서 불량배의 눈을 가려준 이도 천사였다는 것을 할아버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림책 〈할아버지의 천사〉는 천사를 믿지 않는 할아버지의 천사 이야기입니다.

독일의 할아버지와 한국의 할아버지 모두 참 비슷한 삶을 살았습니다. 무자비한 전란을 겪었고 가난과 굶주림 속에서 살아남았습니다. 전쟁 후에는 가족을 꾸리고 평생을 일했습니다. 이제 늙고 병든 몸을 병상에 누이고 이 세상을 떠날 준비를 합니다.

누군가는 독일은 가해국이고 한국은 피해국이라고, 서로 다르다고 할지 모릅니다. 독일이든 한국이든, 일본이든 미국이든, 이 세상 어느 나라에서도 평범한 국민은 전쟁의 피해자입니다. 가해자는 전쟁으로 이득을 얻은 전범들뿐입니다.

저자 유타 바우어는 할아버지 곁에 언제나 천사가 있었다는 사실을 그림으로 보여줍니다. 작가는 만약 우리 곁에 천사가 없다면 무수한 위험과 극악무도한 전범들이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어떻게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겠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저는 천사를 믿습니다. 사람들이 마음속에 품은 천사를 믿습니다. 부와 권력과 명예를 평등하고 정의롭게 나누려는 사람들을 믿습니다. 평화를 정착시키려고 노력하는 이들을
믿습니다. 고단한 사람들의 영혼에 위로와 행복을 전하는, 선한 예술가들을 믿습니다.

기자명 이루리 (작가∙북극곰 편집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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