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야말로 여행자들에게 황금시대였다. 어디든 갈 수 있던 그 시절에는 파키스탄의 북서부 퀘타라는 도시에서 북쪽을 바라보며 ‘왜 아프가니스탄은 마음대로 갈 수 없지?’라며 투덜거리는 것이 불만의 전부였다. 당시 아프가니스탄은 내전 중이었기 때문이다. 인천에서 배 타고 톈진을 거쳐, 티베트와 신장웨이우얼 자치구를 지나, 카라코람 하이웨이를 타고 파키스탄으로 넘어가던 시절이었다.
중국 신장웨이우얼 자치구 일대를 처음 여행한 것도 그즈음이다. 우루무치에서 서쪽 끝 카슈가르까지 기차가 뚫렸다는 게 당시에는 큰 뉴스였다. 중국인들에게도 서역의 오지 같았던 카슈가르는 순식간에 중국인 여행자들로 들끓기 시작했다.
동자승들이 ‘독초 공격’을 서슴지 않은 까닭
당시에 가장 유용했던 중국어는 ‘워 부스 중궈런 (我不是中國人, 저 중국 사람 아닙니다)’이라는 단 하나의 문장이었다. 헤이룽장(흑룡강)성에서 온 조선족 첸 씨라고 해도 믿을 만한 남루한 옷차림 탓에 입만 안 열면 내가 외국인이라는 사실이 발각되지 않았다. 반면 한족이 드문 지역, 그중에서도 중국의 지배에 반감이 강한 곳에서는 내가 중국인이 아님을 어필하는 게 정말 중요했다.
하루는 카슈가르 구시가 안에서 길을 잃었다. 마침 해질녘이라 위구르 여인들이 마당에 나와 이런저런 식자재를 다듬고 있어 동네 구경하기에도 꽤 좋은 시간대였다. 담이 높지 않으니 발돋움을 하고 슬쩍 고개를 들면 그 집 안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동네 10대들이 나를 에워쌌다. 당시는 디지털카메라가 귀하던 시절이라 여차하면 털릴 수 있었다. 그냥 습관대로 말했다. “워 부스 중궈런.”
무뚝뚝한 위구르 사내들에게 내가 중국인이 아님을 밝혔을 때 이내 표정이 변하는 경험을 몇 번 한 터라 일단 던져보자는 심사였다. 그런데 이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긴 수염의 한 노인이 아이들을 향해 뭐라고 하자 이내 포위가 풀리더니 나에게 악수를 청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때 그 아이들의 머쓱했던 웃음, 그리고 나보다 훨씬 거칠었던 그들의 손매가 기억난다.
이후 비슷한 일은 과거 티베트의 영역이던 간쑤성 샤허(夏河)에서도 벌어졌다. 그때는 동자승들이 피부 발진이 일어나는 일종의 독초를 나에게 던져댔다. 그때도 한 노스님이 말렸는데, 내가 중국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안 그 동자승들이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 하던 얼굴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나중에 중국인 친구에게 이 일을 이야기했을 때 그의 반응은 그렇게 포악한 사람들이 사는 곳에 외국인인 네가 어쩌자고 들어갔느냐는 훈계였다. 그러고는 중국이 티베트와 신장을 지배하면서 그들의 삶이 얼마나 개선되었는지 아느냐는, 극히 ‘중국인다운’ 이야기를 이어갔다. 특히 그는 곧 건설될 중국-티베트 간 기찻길이 티베트를 바꿀 거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이후 외국인의 티베트 여행은 아예 불가능에 가까워졌다. 철도 개통 이후 한족의 대량 이주, 중국 자본의 침투 등에 항거하는 티베트인의 분신이 잇따르자 중국 정부는 아예 외국인의 여행을 막아버렸다. 티베트로 가는 기찻길이 뚫리고 오히려 외국인 여행자의 티베트 자유여행이 불가능에 가까워졌다는 건 많은 것을 시사한다. 어디서든 길이 뚫릴 거라며 흥분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나는 좀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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