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 명창 안숙선 선생의 무대 인생 62주년을 기념하는 창극 〈두 사랑〉은 만정(晩汀) 김소희와 향사(香史) 박귀희에 대한 이야기다. 안 명창의 두 스승이다. 자신의 예술에 누구보다도 깊은 영향을 끼친 두 스승에 대한 이야기를 창극으로 풀어냈는데, 김문성 국악 평론가가 두 스승의 가상 대담 형식으로 안숙선 명창의 소리 세계를 풀어보았다.

김문성:안숙선 명창이 두 스승에 대한 감사와 존경을 주제로 공연을 엽니다. 이에 안숙선 명창의 두 스승인 만정 김소희(1917~1995) 선생과 향사 박귀희(1921~1993) 선생을 모시고 가상 대담을 하게 되었습니다. 평생을 친구처럼, 자매처럼 지내며 우리 국악 발전에 기여하신 두 분입니다. 먼저 독자를 위해 서로를 소개해주시면 어떨까요?

만정:제가 향사를 소개하면 되는 거죠? 경북 칠곡이 고향인 향사는 저보다 네 살 어려요. 향사는 가야금병창 (국가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산조 및 병창) 인간문화재였죠. 원래 판소리를 했는데 강태홍·오태석 어른에게 가야금병창을 배웠어요. 상경한 뒤로는 창극을 하면서 널리 알려졌어요. 향사는 주로 남자 역을 맡았는데, 인물이 좋아 인기가 많았죠. 전 재산을 쏟아부어 국악예술학교(국악예고)를 설립할 정도로 국악 교육에도 힘쓴, 그야말로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연합뉴스
향사:형님은 전북 고창에서 한겨울에 나셨어요. 못 배워서 안 배운 게 아니라 없어서 못 배웠다고 할 정도로 판소리·가곡·시조·거문고며, 살풀이·덧뵈기춤에 가야금산조까지 두루 섭렵한 유일무이한 인간 종합문화재예요. 형님은 송만갑·정정열 같은 큰 어른을 사사했고, 일찌감치 상경해 판소리로 이름을 날리셨어요. 그리고 1964년에 판소리로 박녹주·박초월 같은 분들과 함께 인간문화재가 되셨어요. 1972년 미국 카네기홀 공연 때는 미국 언론이 난리였죠. 1988년 서울올림픽 폐막식 때는 전 세계에 형님의 소리가 생중계되는데, 눈물이 다 나데. 전설이고 국창(國唱)이죠.

김문성:두 분 모두 이화중선 명창(1899~1943)과 인연이 좀 남다르죠?

만정:우리 나이대에 소리를 시작한 사람치고 이화중선 어른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이 없어요. 참 대단한 분이죠. 향사가 열네 살 때 이화중선 어른의 단체가 대구극장에 공연을 간 적이 있어요. 그때 손광재라는 분이 향사를 이화중선 어른께 소개했고, 그 무대에 오른 게 인연이 되어 이화중선 단체 단원으로 전국 공연을 다니면서 유명해졌어요. 

향사:형님이야 춘향가가 멋이지만 심청가 중 ‘추월만정(秋月滿庭)’ 대목은 최고예요. 심청이가 황후가 되어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부르는 대목인데 이게 원래 이화중선 어른 특장이에요. 형님도 그 소리에 반해 열세 살에 판소리를 시작했고요. 그런데 그 추월만정은 이젠 형님의 전매특허예요. 아주 기품 있는 슬픈 소리죠.


김문성:두 분에게 안숙선은 어떤 제자인가요?

ⓒ판소리 박물관/div〉만정 김소희 명창은 판소리부터 가야금산조까지 두루 섭렵한 인간 종합문화재로 불린다.
만정:거참 예민한 질문이네. 향사와는 제자 이야기를 잘 안 해요. 자칫하면 의가 상할 수 있어서. 숙선이는 정말 좋은 제자예요. 어떤 이들은 (안)향련이와 (김)동애가 없었다면 내가 숙선이를 절대 향사에게 안 보냈을 것이라는 요상한 얘기들도 합니다만, 숙선이는 향련이나 동애와는 다른 색깔을 가진 아주 멋진 제자예요. 나는 숙선이가 판소리로 문화재가 되기를 기대했던 사람인지라 그 이상의 얘기는 향사가 해줘야 할 것 같네요.

향사:형님과 사이가 틀어질 뻔한 고빗사위가 두어 차례 있었는데, 모두 제자 때문이었어요. 형님은 안향련·김동애·김소연·신영희 같은 좋은 제자가 많았어요. 병창은 소리뿐 아니라 가야금도 잘해야 하다 보니 좋은 제자 얻기가 어렵죠. 후계자를 삼을 만한 인재를 찾고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죄다 형님이 품고 있더라고. 특히 안숙선과 강정숙은 너무나 탐났죠. 마침 형님이 숙선이에게 병창 좀 가르치라고 보냈기에, 형님이야 제자도 많은데 얘를 내 후계자 삼는다고 뭐라 하겠나 쉽게 생각하고, 형님하고 의논 없이 전수생 삼았어요. 정숙이도 그랬고요. 그러니 형님이 한동안 왕래를 끊데. 숙선이는 만정과 향사를 의 상하게 할 정도로 대단한 제자였다는 것만 기억하시면 됩니다.

만정:숙선이고 정숙이고 어릴 적부터 여간내기가 아니었어요. 남원에서 소리 내력 좋은 일가(一家)에서 자랐고, 판소리와 가야금도 잘해요. 그래 야들을 서울로 불러올려 금이야 옥이야 공들여 키워놨는데, 나랑 상의 없이 병창 전수자에 이름을 떡하니 올려놓으니 부아가 안 치밀어요? 근데 이렇게 세월을 보내놓고 보니, 그때 향사에게 보내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들 나이에 우리 같은 귀신이나 챙기고 있으니 말야.

김문성:판소리로 이름을 알리던 분들인데, 병창 전수자 삼을 때 주저하지 않았나요?

향사:사람들이 오해를 많이 해요. 가야금병창을 하면 판소리랑 소리길이 완전히 달라지는 줄 알죠. 하지만 숙선이고 정숙이고 보세요. 오히려 판소리도 잘하고, 가야금산조도 더 잘하죠. 형님도 숙선이가 판소리 다섯 바탕을 완창한 뒤로는 걱정을 놓았어요.

만정:걱정을 놓기는. 저 쬐그만 체구로 병창하랴, 판소리하랴, 산조하랴 걱정이 산이지. 솔직히 자네가 전수생 삼은 뒤로 판소리를 등한시할까 봐 걱정했던 건 사실이지. 그런데 그런 오해를 받을까 봐 숙선이고 정숙이고 판소리를 더 열심히 한 건 맞아요. 숙선이가 가야금병창 인간문화재(보유자)라고 하면 사람들이 혼란스러워할 정도죠.

김문성:마지막으로 칠순을 맞은 제자 숙선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향사기념사업회향사 박귀희 명창은 국악예술학교를 설립하는 등 국악 교육에 힘썼다.
향사:가야금병창을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줘서 고맙고, 마지막 바람이라면 일흔이라는 나이를 의식하지 말고 이제부터 새 길을 간다는 생각으로 인생을 즐겼으면 합니다.


만정:숙선이는 여러모로 나랑 닮은 게 많은데, 심지어 공연 직전 대기실에서 늘 가사를 주문 외듯 외우고 또 외우는 버릇까지 닮았어요. 숙선이는 그런 제자예요. 숙선! 자네 덕에 이렇게 향사도 만나고, 두 스승을 품어준 그 마음이 참으로 고마우이. 우리는 온갖 시름이며 걱정 근심 다 내려놓고 세월이나 희롱할 것이니 우리 걱정은 마시게(※창극 〈두 사랑〉은 4월5~7일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열린다).

기자명 김문성 (국악 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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