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크림 판매량이 치솟더니 물놀이 사고가 폭증했다. ‘아이스크림’이라는 원인이 ‘물놀이’ 사고라는 결과로 이어진 것일까? 그렇지 않다. 물놀이 사고의 원인은 아이스크림이 아니라 여름이다. 엄청난 무더위로 아이스크림을 먹거나 물놀이를 즐기는 시민들이 각각 많아지면서 전자는 많이 팔리고 후자도 늘어났을 뿐이다. 만약 이 문제의 원인과 결과를 오판해서 아이스크림 판매를 금지한다면? 물놀이 사고는 줄지 않고 애먼 빙과업체만 도산하게 된다. 

단지 빙과업체(혹은 그 사장)가 밉다고 ‘사고의 원인은 아이스크림’이라고 주장해서는 안 된다. 세상의 각종 부조리를 개선하려면 원인과 결과(인과관계)부터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인과관계를 제대로 알아내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은? 오로지 현실에 기대야 한다.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수집해 데이터로 가공한 뒤 분석하는 길밖에 없다. 데이터는 풍부하면 풍부할수록 좋다. 그래야 현실을 좀 더 정확하게 분석해서 다양한 인과관계를 찾아낼 수 있을 터이다. 현재 한국 사회가 경제 영역에서 겪고 있는 양극화, 실업, 혁신 지체 등 각종 고통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서울 서초구에 있는 삼성타운 전경.ⓒ시사IN 이명익


〈시사IN〉이 부경대학교 ‘산업생태계 연구팀’의 최근 작업(‘기업 간 거래 네트워크 분석’)을 기사화한 이유다. 이 연구의 가장 큰 장점은 기업 관련 데이터를 다른 비슷한 연구들과 비교하기 힘들 만큼 풍부한 규모로 확보했다는 점이다. 한국 경제 전반에 유의한 영향을 끼치는 170만여 개 기업의 11년치 정보를 분석해서 그동안 산업생태계가 어떻게 변모해서 지금에 이르렀는지 상세하게 그려냈다. 그동안 관련 연구들이 기업 관련 데이터의 부족 때문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던 한계를 정면 돌파한 것이다.

남은 일은 최근 한국 경제가 겪고 있는 다양한 고통의 원인에 대한 규명이다. 진보 진영의 학자, 시민단체, 언론 등이 보기에 그 ‘원흉’(원인)은 굳이 힘들게 연구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너무나 자명하다. 바로 재벌 대기업이다. 그들에게 대기업은 정치적으로 ‘박정희 군부독재의 유산’이고 경제적으로 ‘독점자본’이다. 중간재 시장을 내부화(수직계열화)해서 중소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시장 파괴자’다. 심지어 중소기업 착취에 따른 단가 인하로만 국제 경쟁력을 겨우 유지하며 혁신을 포기한 ‘게으름뱅이’다. 혹은 이 모든 나쁜 속성을 종합한 ‘악의 축’이다. 

그 반대편에는 재벌 대기업이라면 무조건 옹호하는 세력이 있다. 이들 가운데 대다수는 시장주의자를 자처하지만, 실제로는 ‘강한 자의 이익을 보장하면 시장주의’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대기업의 영향력 아래 있는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결성 및 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조치가 그들에게는 ‘노동시장의 정상적 작동’을 가로막는 것으로 간주된다.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의 생존을 위해 해당 업종에 대한 대자본의 침투를 규제하면 ‘좌파의 시장 개입’이다. 이토록 시장을 사랑하는 그들이, 재벌 일가가 순환출자로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을 부풀리거나 경영권 상속을 위해 분식회계까지 저질러 자본시장의 질서를 해치는 경우에는 턱없이 너그럽다.

이처럼 ‘정치 담론’ 차원에서는 전체적으로 어느 정도의 균형이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정치적 균형이 반드시 정확한 현실 분석이나 개선 방안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예컨대, 과연 대기업의 경제력을 축소하면 중소기업이 성장하게 될까? 수직계열화를 해체하면 중간재 단가가 올라갈까? 재벌 대기업들은 정말 혁신으로부터 고개를 돌렸나? 대기업의 영향을 받지 않는 독립기업을 중심으로 새로운 산업생태계를 설계할 수는 없을까? 

한국 경제의 미래를 결정할 만한 이런 중대한 문제들에 대해 정의감이나 당위가 아니라 철저히 현실 데이터에 기반해서 분석하고 그 개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에는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을 듯하다. 산업생태계 연구팀의 분석을 지면에 담았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는 2000년대 중반 이후 한국 사회에서 가장 첨예한 이슈 가운데 하나다. 대다수가 재벌 계열사인 대기업은 중소기업을 어떻게 착취하고, 어떻게 협력하는가? 이런 착취·협력 관계는 한국 경제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 이런 측면에서 부경대 ‘산업생태계 연구팀’의 작업은 주목받을 가치가 있다. 그동안의 원·하청 관련 연구들은 일부 업종에 국한해서 200~300개 기업의 사례로 대·중소기업 관계를 분석하는 데 그쳤다. 이에 비해 산업생태계 연구팀은 모든 업종에 걸친 170만여 개(11년치) 기업 정보 중에서 주요 표본 5만4000여 개를 추출한 뒤 국내 대다수 주요 기업이 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파악하려 했다. 산업생태계 연구팀에서 활동해온 남종석·송영조 연구원과 함께 대·중소기업 관계, 한국 및 동남권 지역 경제, 재벌 개혁, 혁신 전략 등에 대해 쾌도난마 대담을 했다.

 

ⓒ시사IN 신선영부경대학교 경제사회연구소에서 3월1일 남종석(왼쪽) ·송영조(오른쪽) 연구원이 한국 사회 산업생태계와 관련해 좌담을 하고 있다. 뒷모습은 이종태 기자.

수만 개 규모의 기업 정보를 취득하는 것부터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 같다.

송영조:기존 연구는 현실에 존재하는 원·하청 정보를 풍부하게 담지 못했다. 기업들에게 원·하청 관계는 일종의 영업 기밀이다. 자동차와 전자 산업 협회의 자료에는 대기업의 1차 협력업체들이 나오지만 수백 개에 그친다. 더욱이 2, 3, 4차 협력업체는 아예 조사 대상에서 빠졌다.

남종석:그래서 우리는 신용평가업체인 한국기업데이터의 자료를 사용했다. 한국기업데이터는 기업으로부터 받은 170만여 개의 기업 정보(2006~2016)를 갖고 있다. 각 기업이 어떤 업체에 납품하는지, 해당 기업의 재무 상태(자산·매출·영업이익 등)는 어떤지 등을 담고 있다. 프로그래밍에 능한 교수들이 기업 간 거래를 추적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이 방대한 데이터에 적용했다. 결국 거래 네트워크 전반에 유의한 파급력을 가진 대기업, 협력기업(대기업에 중간재 공급), 독립기업(대기업에 중간재를 공급하지 않는) 등 5만4000여 업체로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었다. 2006년부터 2016년까지 국내 주요 기업들이 서로 어떻게 거래하고 재무 상태는 어떤지 거의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대기업 협력업체도 1차뿐 아니라 4~5차까지 추적했다. 어떤 대기업은 17차 협력업체까지 파악되더라. ‘1차 협력업체’의 경우 현대기아자동차는 700여 개, 현대중공업 1230여 개, 삼성전자 780여 개 등이다.

송영조:거래 네트워크 구축은 한마디로 어떤 기업이 어떤 업체에 어떤 물건을 얼마나 파는지 추적하는 작업이다. 예컨대 ㅂ사가 ㅁ사에, ㅁ사가 ㄹ사에, ㄹ사는 ㄷ사에, ㄷ사는 ㄴ사에, ㄴ사는 ㄱ사에 물품을 판다. 추적하다 보면 ㄱ사처럼 다른 업체로부터 매입만 하고 판매는 하지 않는 기업이 존재한다. 현대차 같은 대기업인데, 일단 선도기업이라고 부르자. 이런 선도기업 중심의 거래 네트워크에 포함되는 기업이 바로 협력업체다. 독립기업은 선도기업에 중간재를 팔지 않는 업체다. 우리나라의 산업생태계는 ‘대기업과 협력기업으로 이뤄지는 거래 네트워크’와 독립기업으로 구성된다고 할 수 있다.

 

ⓒ시사IN 이명익현대기아차는 6200여 개의 협력업체와 관계를 맺고 있다.


선도기업인 대기업은 관행적인 ‘납품단가 후려치기’ 등을 통해 협력업체를 착취한다는 비난을 들어왔다. 독립기업은 선도기업과 거래하지 않으므로 착취도 당하지 않으리라 짐작된다. 협력업체와 비교할 때 실적이 어떤가?

남종석:전체 기업 가운데 46% 정도가 선도기업 중심의 거래 네트워크에 편입되어 있다. 즉 협력업체다. 2011년 현재 현대기아차의 거래 네트워크에 포함된 협력업체(1차 이하를 통틀어서)는 모두 6200개, 삼성·LG 등 전자 부문 협력업체는 1만1400여 개에 달한다. 그 나머지(54%)가 독립기업이다. 불행히도 (착취당하지 않는) 독립기업이 협력업체에 비해 규모·기술력·임금 등에서 훨씬 열악하다. 더욱이 독립기업 가운데 27.5%는 정부 발주 사업에 참여한다. 이 기업들의 매출 가운데 정부로부터 나오는 수입의 비중은 평균 32.9%다. 정부 조달 비중이 이렇게 높다는 것은, 상당수 독립기업의 독자적 생존력을 의심할 수 있는 근거 중 하나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좋든 싫든 한국 중소기업의 주력은 대기업에 납품하는 협력업체로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송영조:업체 수로만 보면 독립기업이 협력업체보다 많다. 그러나 매출 기준으로 보면 대기업 중심의 거래 네트워크에 속한 업체가 80% 정도를 점유한다. 독립기업의 대다수는 중소기업이며 중견기업이라고 부를 만한 업체는 얼마 되지 않는다.

요즘 한국 기업에 대한 우려가 크다. 재무 상태의 추이는 어떤가?

남종석:2000년대 들어 한국 제조업의 성과는 눈부셨다. 매출액·생산성·임금 등의 증가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국가군에 속했다. 당시 활발하게 제기된 ‘제조업 위기론’ ‘재벌 원흉론’ 등이 이해되지 않을 정도다. 그러나 2010년대 들어 기업 부문의 매출액 성장률(매년 매출액이 늘어나는 정도)이 계속 떨어지고 있다. 2014년에는 매출액 성장률이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매출액이 전년도보다 줄었다). 영업이익률도 비슷한 추세다. 수출증가율도 전자 업종을 빼면 2012년 이후 정체된 상태다.

송영조:그 결과, 통계청 기업활동 조사자료에 따르면 제조업의 경우 적자기업(영업이익 기준)이 전체의 약 17%에 이르게 되었다. 적자까지는 아니지만 순수익이 적어서 이자도 제대로 못 갚는 기업이 25%에 달한다. 한국은행의 2018년 12월 〈금융안정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상반기 현재, 이자를 감당하지 못하는 중소기업은 50% 정도이고, 대기업은 26.9%다. 이런 추세가 심화되고 있다.

 


그 원인은? 혹시 재벌 때문인가?

남종석:딱 잘라서 말하자면, 세계적 추세다. 글로벌 차원에서 무역 수요가 크게 떨어졌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매출액 실적을 그래프로 그려보면 세계무역의 등락과 함께 움직인다. 국내 대기업의 수출 실적이 악화되니까 협력업체도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물론 ‘독일은 수출 잘하고 있는데 한국만 떨어졌다’라고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두 나라를 동일한 수준에서 비교할 수는 없다. 한국은 국내시장이 좁지만, 독일은 유럽연합(EU) 전체가 자국 시장이었다. 독일은 제조업의 기초인 기계 산업에서 세계 최강의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2000년대 들어 임금상승률을 크게 낮췄다. 유로화를 사용하면서 EU 다른 국가에 대한 독일의 수출품 가격이 이전의 마르크화 시절보다 사실상 낮게 책정되는 효과까지 얻었다. 세계적 차원에서 보면 한국은 임금 수준을 높이면서도 독일 다음으로 선전했다.

송영조:흔히 “재벌 체제 때문에 한국 경제를 망쳤다”라고 말하지만 실제 데이터로 냉정하게 살펴보면, 한국 기업 가운데 세계적으로 성장한 업체는 재벌 대기업밖에 없다.

대기업이 단가 후려치기 등으로 중소 협력업체의 성장을 억제해온 것은 사실이다. 대기업 중심의 수직계열화 때문에 중소기업에서 혁신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온다(대기업은 협력업체로부터 매입한 중간재들로 최종재를 조립해서 국내외에 판다. 대기업이 중간재를 매입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그때그때 가장 우수한 중간재를 가장 싼 가격으로 공급할 수 있는 외부 업체를 찾아내 계약하는 것이다(아웃소싱). 원칙적으로 1회성 단기 계약이다. 다른 하나는 아예 해당 중간재 생산에 특화된 계열사를 만들거나(수직계열화) 혹은 외부 협력업체와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장기적으로 중간재를 공급받는 방법이다(준수직계열화). 수직계열화가 직접 계열사를 두는 방법인 반면, 준수직계열화에서는 계열사에 준하는 장기적 관계를 협력기업과 맺는다. 준수직계열화의 경우, 대기업은 엄연히 다른 기업인 협력업체의 중간재 가격을 후려치거나 심지어 노무에 개입하기까지 한다. 협력업체의 인건비가 오르면서 중간재 가격까지 인상되는 경우를 차단하기 위해서다).

송영조:선도기업, 예컨대 현대차는 특정 중간재를 생산하는 계열사를 갖고 있다. 그런데 같은 제품에 대해 외부 기업인 협력업체로부터도 납품받는다. 계열사와 협력업체를 경쟁시키는 거다. 이런 경쟁을 통해 선택된 협력업체는 선도기업과 긴밀한 관계(일종의 전속 계약)를 맺게 된다. 최종재(완성차)의 가격을 떨어뜨리기 위해 양측이 함께 부품 생산 공정을 개선하거나, 필요한 제품을 공동 개발하기도 한다. 아웃소싱 방식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런 준수직계열화가 외부 협력업체에 미치는 영향에는 장단점이 모두 있다. 협력업체는 일정 기간 안정적으로 대기업에 물건을 납품할 수 있다. 매출을 보장받는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마땅히 누려야 할 수익을 단가 인하 등으로 대기업에 빼앗긴다. 독자적으로 부품을 설계할 수 있는 연구개발 능력을 키우기도 힘들다. 이로 인해 기술력이 떨어지면 대기업과의 가격 결정에서 협상력을 발휘하기가 점점 더 힘들어진다.

 

ⓒ현대자동차 제공2016년 3월 현대차그룹이 협력업체들과 상생하겠다는 협약을 맺었다.


협력과 착취가 병존하는 관계인가?

남종석:중간재 시장에서는 협력기업이 공급자이고 대기업은 수요자다. 협력기업의 수는 엄청나게 많은 반면 선도기업은 현대차, 삼성전자 등 손으로 꼽을 정도다. 결국 선도기업들이 ‘수요 독점자’라는 우월적 지위로 중간재의 가격 결정에 절대적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 그렇다면 준수직계열화를 해체하고 아웃소싱으로 가는 것이 대안일까? 그렇지 않다. 만약 협력기업이 독점적 기술력을 가졌다면, 중간재 단가 결정에서 선도기업보다 오히려 우월한 협상력을 발휘한다. 그 회사에서만 살 수 있는 제품이 있기 때문이다. 지멘스, 덴소, 보쉬 같은 해외 거대 부품업체들이 그렇다. 한국 중소기업은 규모가 작고 연구개발 여건도 척박하다. 기술력이 낮으면 준수직계열화에서든 아웃소싱에서든 단가 후려치기를 당할 수밖에 없다. 근본적 문제는 ‘아웃소싱이냐, 준수직계열화냐’가 아니라 중소업체의 기술력인 것이다. 아웃소싱 체제로 가면 현대차 같은 선도기업들이 국내 중소기업에서 중간재를 매입할 이유가 없어지게 된다. 지멘스 같은 업체에서 사면 된다. 중소기업 역시 아웃소싱 체제로 매출이 보장되지 않게 되면, 혁신은커녕 지금 수준의 연구개발 투자도 포기할 것이다.

‘재벌 해체가 중소기업 발전의 방안이 될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는 건가?

남종석:재벌 체제로 인해 중소기업이 지금 정도로나마 발전할 수 있었다는 주장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1980년대 이후 삼성이나 현대차 등이 사실상 협력업체들의 발전을 견인해온 측면도 봐야 한다. 중소기업에 설계도 제공하고, 엔지니어도 파견하고 심지어 생산 라인까지 깔아줬다. 선도기업이 특정 제품을 개발하면, 중소기업은 그 제품에 필요한 부품 생산 공정을 혁신해 완제품 단가를 낮추는 역할을 맡았다. 이런 과정에서 1차 협력업체의 규모가 커지면서 핵심 중견기업으로 발전해온 것이다. 연구팀 데이터베이스에 나오는 협력업체와 독립기업의 영업이익률 추세를 살펴보면, 대기업들이 협력업체의 생존에는 나름 신경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독립기업은 호경기에는 수익률이 높고 불경기에는 매우 낮다. 그러나 협력업체는 어려울 때는 영업이익률이 4%대 초반이고 잘나갈 때도 5%를 크게 웃돌지 않는다. 선도기업이 호경기에 협력업체의 수익을 착취하는 대신 불경기에는 매출액을 일정하게 보장해준 것으로 보인다. 착취와 협력이 미묘하게 섞였다.

 


송영조:준수직계열화를 일부러 해체할 필요도 없다. 이미 해체되고 있으니까. 그 원인은 여러 가지다. 일단 선도기업의 매출 성장률이 떨어지면서 협력기업의 매출을 이전 수준으로 보장하지 못한다. 기술 측면에서도 내연기관 자동차에서 전기차로 패러다임이 변화하면서, 현대차로서는 내연기관 관련 부품업체들을 더 이상 끌고 나갈 필요가 사라지고 있다. 상당수 협력업체가 주요 납품처를 잃으면서 자연스럽게 독립기업으로 탈바꿈할지도 모른다.

남종석:선도기업들이 협력업체들에게 사실상 ‘이제, 너희들은 알아서 해라. 우리에게만 납품할 필요도 없다. 다만 우리도 너희들의 매출액을 보장할 수 없다’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는 거다. 최근 5년 동안 중소기업 부문의 투자액 통계수치가 크게 줄어든 것은 이런 움직임과 무관하지 않을 터이다. 단가 후려치기 등 협력업체 착취가 문재인 정부 이후 상당히 개선되고 있음에도 명암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7년 산업연구원 설문조사에서는 전속 협력업체(200개) 중 37%가 단가 후려치기를 큰 문제로 꼽았다. 그러나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 조사(2만3297개)에서는, 단가 인하에 불만을 제기한 하도급업체가 8.7%에 그쳤다. 김상조 공정위의 캠페인과 단속이 긍정적 효과를 보았다고 보이지만 준수직계열화의 점진적 해체도 그 원인 중 하나일 수 있다.

현대차 같은 선도기업이 기술력은 없으면서 협력업체 착취로 가격 경쟁력만 유지하다 보니 혁신을 소홀히 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 결과, 세계적 대세인 전기차가 아니라 수소차에 쓸데없는 투자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송영조:이상한 소리다. 협력업체들이 선도기업에 순응하다 보니 정작 자사의 제품 혁신 능력을 키우지 못했다는 비판은 말이 된다. 그러나 선도기업마저 연구개발 투자를 방기하고 혁신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다. 현대차 같은 선도기업은 세계시장에서 자사보다 뛰어나거나 대등한 업체들과 경쟁하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혁신을 강제당하는 처지다. 현대차는 수소자동차와 전기자동차를 모두 준비해왔다.

 

ⓒ연합뉴스문재인 대통령이 1월17일 울산시청에 마련된 수소 활용 전시장을 둘러보고 있다.


유명 경제 평론가들은, 현대차가 전기자동차 개발에는 손을 놓아버렸다고 하던데.

송영조:전기자동차는 동력원을 기준으로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배터리 기반 전기자동차, 다른 하나는 수소연료전지 기반 전기자동차다. 편의상 ‘전기차(배터리)’ ‘수소차(수소연료전지)’라고 부르지만 사실은 둘 다 전기자동차다. 현대차는 이미 2010년대 들어 LG화학 측 기술자들과 함께 운행 가능 거리, 충돌 시 위험성, 무게를 지탱하는 정도 등 여러 경우의 수를 두고 전기자동차 시험을 해왔다. 그쪽 전문가들에 따르면, 현대차는 배터리 전기자동차의 동력원인 리튬이온전지에 대해 문제의식이 많았다고 한다. 한 번 충전으로 600㎞ 이상 운행하기 어렵고, 무게를 잘 견디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남종석:무거운 대형 자동차나 트럭, 나아가 선박의 경우 전기 배터리로는 장거리 운행이 어렵다.

송영조:더욱이 리튬이온전지는 충돌할 경우 화재 위험이 크다. 그래서 현대차가 수소차에 무게를 실은 것으로 보인다. 덕분에 수소차 기술 부문에서 현대차는 세계 1위다. 현대차만 수소차를 개발하는 것도 아니다. 현재 수소차를 상용화한 나라는 한국과 일본밖에 없지만, 유럽과 중국도 한창 개발하고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인데, 배터리 전기자동차 부문에서도 현대차는 세계적 수준이다. 지난해 말 미국의 자동차 전문 매체인 〈워즈오토(WardsAuto)〉 선정 ‘2019 세계 10대 엔진’에 현대차의 배터리 전기자동차인 ‘코나 일렉트릭’의 파워트레인이 선정되었다. 심지어 수소차인 넥쏘의 파워트레인도 10대 엔진에 포함되었다. 미래에 어느 쪽이 지배적 자동차 모델이 될지 불확실하기 때문에 현대차는 둘 다 추진할 수밖에 없었다.

문재인 정부는 수소경제 육성에 거액의 예산을 편성했는데, 재벌에 대한 특혜라는 비판이 있다.

남종석:수소 충전소 설치나 수소차 구입 보조금 등에 들어가는 예산이다. 정부가 교통 시스템의 변화에 대비해서 미래차 소비를 유도하거나 인프라를 까는 것은 어떻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미국도 그렇게 했다.

송영조:배터리 전기자동차가 대세로 떠오르는 경우, 전기 수요가 엄청나게 늘어나기 때문에 국내 전기 송배선을 통째로 새로 깔아야 한다. 최근 미국 업체인 테슬라가 항속거리 800㎞인 35t 트럭 세미를 개발하고 있다. 30분 충전으로 644㎞를 주행할 수 있다. 문제는 30분 내로 충전하려면 4000가구가 사용하는 전기가 필요한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전기차와 수소차를 비교했을 때, 후자에 드는 사회적 비용이 훨씬 저렴할 수 있다. 지금의 대세는 배터리 전기자동차가 맞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자동차 대수가 1000만 대 이상으로 늘어난 경우까지 상정해서 장단점을 봐야 한다.

 


조선·기계·자동차 산업의 불황으로 부산·경남의 지역경제가 몸살을 앓고 있다.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 인수 등 산업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기도 하다.

남종석:어쩔 수 없는 상황이란 생각이 든다. 그동안 산업은행이 대우조선을 관리해왔지만 제대로 경영하지는 못했다. 대규모 조선사가 국내에 3개(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나 병립하면서 선박 가격을 떨어뜨리는 측면도 있었다. 민주노총은 대우조선을 같은 업종인 현대중공업이 인수하면 중복 업무 인력에 대한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며 반대하고 있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조선업체가 아닌 기업이 대우조선 같은 거대 업체를 인수해 운영할 수 있을까? 인원 감축을 최소화할 방법을 찾으려 노력하는 것이 낫다. 예컨대 현대중공업은 선박 엔진을 계열사에서 납품받는 반면 대우조선은 외부 협력업체로부터 공급받아왔다.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을 인수하면, 대우조선 협력업체들은 납품처를 잃을 수 있다. 산업은행의 역할이 필요하다. 산업은행이 무려 2조5000억원을 투자하면서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을 인수하게 해주는 것이니, 일종의 특혜다. 산업은행은 대주주로서, ‘합병 조선사’가 현대중공업 계열사뿐 아니라 대우조선 협력업체들로부터도 납품받도록 조치할 필요가 있다. 현대중공업 또한 엄청난 특혜를 받은 만큼 지역경제를 배려해야 한다.

자동차 산업은 어떻게 전망하나?

남종석:역시 구조조정이 불가피할 듯하다. 현대자동차 매출이 중국에서 타격을 받으면서 협력업체들도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전기자동차 전환이 생각보다 빨라지면서 내연기관 관련 부품을 납품하던 업체들도 상당한 타격을 받으리라 보인다. 중소 규모 부품업체들의 합병이 필요하다. 어느 정도 규모가 되어야 연구개발을 통해 기술력을 키우고 협상력도 강화할 수 있다. 지금 동남권 3대 산업인 조선·기계·자동차가 모두 위기를 맞고 있는데, 이를 극복할 산업정책이 필요하다.

송영조:지금 같은 산업 구조조정 시기에 정부가 혼신의 힘을 기울여야 하는 산업정책이 있다. 어떤 산업(기업)을 육성하고 어떤 산업(기업)을 정리해야 하는지 선별하는 작업이다. 이전 정부들이 구조조정 시기의 산업정책에 무관심했던 반면 문재인 정부는 일정한 입장을 갖고 있는 것 같아서 그나마 다행이다.

남종석:수소차 사례가 그렇다. 한때는 관련 정책 수장들이 ‘지원했다가 잘못되면 누가 책임질 거냐’라며 결정을 피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측면에서 최근 정부의 수소경제 육성 전략은 긍정적인 조치다.

그러나 실패할 수 있는 산업에 공공자금을 지원한다는 것은 문제 아닌가?

송영조:일각에서는 자동차와 전자 부문의 대기업들에게 ‘시장을 선도하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시장 선도’가 뭔가? 시장에 없는 기술과 제품을 새로 개발하는 거다. 또한 새로운 것을 개발하는 경우에는 실패 가능성을 당연히 염두에 둬야 한다. ‘시장을 선도하지 못한다’고 비판하다가 실제로 그 길을 간다고 하면 ‘왜 실패할 위험성이 높은 것을 하느냐’라고 하니, 어느 장단에 춤을 추라는 것인가.

남종석:문재인 정부가 수소차에 지원하는 금액은 4년 동안 1조4000억원이다. 연간 3500억원 정도다. 사회간접자본 건설에 수십조원씩 지원하는 나라에서 미래기술에 연간 3500억원을 지원한다고 나라 망할 것처럼 떠드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

수소차뿐 아니라 다양한 미래산업이 있다. 한국이 이런 분야의 혁신을 더욱 가속화하려면?

남종석:미래산업이라면 항공산업, 바이오테크놀로지, 자율주행차, 정보통신기술(ICT), 신재생에너지 등이다. 대규모 자본이 들고 개발에 긴 시간이 필요하며 언제 수익을 낳게 될지에 대해서도 불확실성이 큰 산업들이다. 예컨대 생명공학 산업은 투자하자마자 상용화해서 큰돈을 벌 수 있는 산업이 아니다. 신약을 개발하려면 수년에 걸친 동물 실험과 인체 실험을 거쳐 안정성을 검증해야 한다. 이런 부문에 투자할 돈을 어떻게 조달할까? 중소기업은 어렵다. 결국 대자본만이 국가의 지원을 받아 뛰어들 수 있다. 냉정하게 말하면 그렇다. 차라리 대기업이 첨단 산업에 투자할 길을 적극적으로 열어주고 대신 중소기업 주력 업종에 기웃거리는 것은 차단하는 편이 낫다.

송영조:위험을 감수하면서 대규모 자금을 투자할 수 있는 집단이 현실적으로 재벌 대기업 외에는 없는 상황이다. 재벌을 억제하기보다는 나머지 중견기업들에서 혁신을 어떻게 만들어낼지를 모색해야 한다. 지난해 말, 문재인 정부가 중소·중견 기업의 전기자동차 개발을 지원하기 위해 국책기관이 만든 플랫폼을 제공하는 사업을 공고한 바 있는데, 괜찮은 발상이다. 개발 비용을 줄여 중소·중견기업의 전기자동차 산업 투자를 유도하는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중소·중견기업이 첨단 산업에 진출할 수 있게 하는 정책을 활발히 모색해야 한다.

남종석:지금 잘나가는 기업들은 계속 잘나가도록 놔두면 좋겠다. 이와 별도로 ‘선도기업 중심 네트워크’ 밖에서 독립적이고 창조적인 기업을 육성하는 방안을 연구해야 한다.

전통적 민주화 세력이나 진보 세력에게는 두 연구원이 ‘노동’이 아니라 ‘산업’과 ‘대기업’을 옹호한다고 할 수도 있겠다.

송영조:노동운동 측은 기업과 산업, 국가경제에 더 큰 관심을 가져야 한다. 작은 기업이 망해서 노동자들이 실직하면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이미 그런 실직자들이 너무 많다. 큰 기업이 무너지면 난리가 나고, 공적자금이 투입된다. 해당 기업이 망하는 경우의 사회적 파괴력(비용)이, 어떻게든 살려놓는 데 필요한 비용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지원할 수밖에 없다. 이른바 대마불사다. 그러나 연구팀의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앞으로는 대마불사가 어렵게 될 터이다. 상당수 기업이 준적자 상태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무너지는 기업이 많으면 일일이 공적자금을 투입할 수 없다. 이제 노동운동이 고민해야 한다. 지금까지 대기업 노동조합은 임금인상만 생각했다. 현실에서 기업이 계속 성장했으니 가능했다. 기업 측은 언제나 ‘어렵다’고 하지만, 싸우면 임금을 올려주었다. 결국 노조는 기업 측이 어렵다고 하면 엄살이거나 거짓말로 치부하게 되었다. 실제로 문제가 발생하면 ‘재벌 오너의 방만한 경영 때문’이라며 책임을 넘겨버린다. 그 ‘방만한 경영’의 한 형태가 그동안의 고임금이었는데도 말이다. 이제 노동자들도 생존하려면 자기 기업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상황이다. 지금까지 해온 방식으로는 노동자의 일자리를 지킬 수 없다. 노총이 개별 기업과 산업, 국가경제에 대해 숙고하고 연구하며 대책을 세워야 한다.

기자명 부산·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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