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한눈파는 사이, 아이 혼자 해변을 걷는다. 모래사장 끝, ‘귀신의 집’ 같은 공간에 들어선다. 거울로 둘러싸인 방. 그래서 사방에 자신과 똑같은 아이가 서 있는 것처럼 보이는 방. 어떤 거울 앞에 멈춘다. 그 안에도 서 있다. 나랑 똑같은 아이가. 나와 다른 표정을 짓고서.

그날 이후 말을 잃어버린 아이. 영문을 알지 못하는 부모는 답답할 따름이다. 별로 특별할 게 없던 1986년의 어느 날 밤, 미국 산타크루즈 해변 놀이공원에서 일어난 아주 특별한 사건은 그렇게, 아이와 관객만 아는 비밀로 남았다.

수십 년이 흘러 아이는 어른이 되어 있다. 다행히 말도 되찾았다. 그러나 기억에서 지워낸 게 아니라 단지 기억 속에 ‘묻어둔’ 비밀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건 시간문제. 게다가 남편도 문제. 같이 가자고 조르는 것이다. 아이들이 좋아할 산타크루즈 해변 놀이공원. 애들레이드(루피타 뇽)의 어두운 비밀이 묻혀 있는 그곳.



마지못해 다녀온 뒤, 그들 집에 쳐들어온 의문의 가족과 함께 영화 〈어스〉의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아빠처럼 생긴 아빠, 엄마를 닮은 엄마, 아이들과 생김새가 똑같은 아이들이, 애들레이드 일가족의 맞은편에 데칼코마니처럼 앉아 있는 것이다. 크고 날카로운 가위를 꽉 움켜쥔 채로. 이들은 대체 누구인가? 어디서, 왜 왔는가? 관객이 한꺼번에 품는 질문에 차례차례 답을 내놓는 이 영화는, 제법 무섭고 몹시 섬뜩하지만 가끔 웃겨주기도 한다.

미국 인종 이슈를 ‘기똥찬’ 장르 영화로 담아낸 영화 〈겟 아웃〉(2017)의 조던 필 감독은 이렇게 말한다. “〈어스〉의 아이디어는 도플갱어에 대한 깊은 공포심에서 비롯되었다. 우리의 가장 큰 적은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개념이 나를 매료시켰다. 누구나 그 사실을 알면서도 진실을 숨긴 채 타인을 원망한다. 이 영화에서 괴물이 우리 자신의 얼굴을 하고 있는 이유다.”

솜씨 좋게 드러낸 ‘존재의 양면성’

감독은 도플갱어의 공포를 다양한 좌우대칭의 장면과 소품으로 표현하는 데 공을 들인다. ‘똑같이 생긴 두 금속이 완벽하게 짝을 이뤄 작동하는’ 가위가, 일상의 소중한 도구에서 언제든 살벌한 흉기로 돌변할 수 있는 것처럼. ‘의지’와  ‘처지’에 따라 다르게 드러나는 세상 모든 존재의 ‘양면성’을, 팽팽한 현처럼 당겨놓고 116분간의 긴장감을 솜씨 좋게 연주한다.  

특히 자꾸 신경 쓰이던 장면. 빈곤 퇴치를 염원하는 수백만명이 손에 손을 잡고 미국 땅을 가로질러 인간 띠를 만든 1986년의 실제 이벤트. 영화 시작부터 언급되고 마지막까지 재현되는, 같지만 다른 그 퍼포먼스를 보면서 생각했다. 이것은 ‘띠’일까, ‘벽’일까? 손에 손 잡은 ‘우리’는 ‘누구’를 막아서게 되는 걸까? 우리에 갇힌 토끼에서 ‘우리’가 가둔 사람들까지. ‘예레미야 11장 11절’에서 마이클 잭슨의 명곡 ‘스릴러’까지. 더 파고들고 곱씹어볼 장면이 많아서 다시 볼 생각이다. 〈어스〉는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는 영화다.

기자명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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