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대선 당시 자신의 선거 캠프와 러시아 간 공모 의혹을 받던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사실상 ‘면죄부’를 받은 뒤 기세가 하늘을 찌른다. 지난 22개월 동안 관련 의혹을 수사한 로버트 뮬러 특검팀이 활동을 끝냈다. 특검 악몽에서 벗어난 트럼프 대통령은 내년 11월 대선을 염두에 두고 벌써 보수 지지층 결집에 나섰다. 그는 멕시코를 향해 ‘불법 이민자를 차단시키지 않으면 남부 국경을 폐쇄하겠다’고 위협하는 한편 미국 역사상 최초로 ‘전 국민의 건강보험 가입’ 시대를 열려고 한 ‘오바마케어’의 폐기를 다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뮬러 특검은 지난 3월24일 300쪽이 넘는 최종 수사 결과를 윌리엄 바 법무장관에게 보고했다. 바 장관은 이를 4쪽으로 요약해 의회에 전달했다. 바 장관은 트럼프 선거 캠프와 러시아 간 공모 의혹에 대해 “(특검이) 공모나 협력 혐의를 규명하지 못했다”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관련 수사의 초기 국면을 주도하던 제임스 코미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을 전격 해임한 이후 ‘사법 방해’ 의혹도 받아왔다. 이 또한 뮬러 특검의 수사 대상이었다. 이에 대해 바 장관은 “특검이 대통령의 무죄를 단정하지 않았지만, 범죄를 저질렀다고 결론 내리지도 않았다”라고 판단했다. 대통령에 대한 기소권이 있는 주무 부서인 법무부 수장이 뮬러 특검 보고서를 토대로 트럼프 대통령의 두 가지 혐의(러시아와의 공모와 사법 방해 의혹)에 사실상 면죄부를 준 셈이다. CNN은 “트럼프 대통령이 내년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 정적들과 언론을 향해 포격을 날릴 수 있는 강력한 정치적 무기를 갖게 됐다”라고 평가했다.

ⓒAFP PHOTO로버트 뮬러 특검(앞)은 3월24일 최종 수사 결과를 윌리엄 바 법무장관에게 보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검 결과가 나오자 “완전한 무죄 입증을 받았다”라면서 대대적인 반격 모드에 들어갔다. 특검 수사에 밀려 움츠러든 모습에서 벗어나 불법 이민과 건강보험 문제 등을 최우선 국정 과제로 밀어붙이면서 민주당과의 정면충돌을 감수하고 있다. 나아가 민주당 정적들과 비판적 언론, 심지어 초기 수사를 담당한 FBI 고위 관리들에 대한 반격을 통해 내년 11월 대선 재선의 ‘걸림돌’을 제거하겠다는 뜻을 보인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특검 결과가 나온 지 나흘 만인 3월28일 미시간 주에서 “나를 둘러싼 러시아 공모 망상은 끝났다. 민주당은 계속 엉뚱한 짓거리로 국민들에게 사기를 칠 것인지 숙고하라”고 경고했다. 특히 특검 수사 내내 자신을 음해했다고 생각하는 민주당 애덤 시프 하원 정보위원장에 대해서는 의원직 사퇴까지 촉구했다. 이뿐 아니다. 특검 수사 때 진보적 주류 언론의 보도를 ‘가짜 뉴스’라 몰아붙이던 트럼프 대통령은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를 콕 집어 “러시아 공모에 관한 100% 부정적이고 가짜 보도로 퓰리처상을 받았다는 건 너무 웃기는 일이다. 퓰리처상을 취소하라”고 주장했다. 두 언론사가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 관련 보도로 지난해 4월 수상한 것을 두고 한 말이다.

그의 기고만장함은 불법 이민에 관한 초강경 태도에서 잘 드러난다. 중남미 불법 이민 유입의 진원지로 꼽히는 멕시코 국경에 장벽 건설이 아닌 폐쇄 방침까지 밝혔다. 그는 3월28일 기자들에게 “멕시코 정부가 국경을 폐쇄하지 않겠다면 우리가 할 것이다. 장난으로 하는 말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측근 캘리앤 콘웨이 선임고문은 〈폭스뉴스〉에 나와 “대통령의 발언은 단순한 엄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EPA특검 종료 이후 첫 대중 유세에 나선 트럼프 대통령이 3월28일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오바마케어 폐지안에 불안한 공화당

미국 상무부 통계에 따르면, 미국과 멕시코 국경을 통해 매일 1000대 이상의 화물 트럭이 오간다. 지난해 교역 규모가 6110억 달러(약 693조원)에 달한다. 또 3145㎞에 이르는 미국-멕시코 국경을 통해 불법 이민자가 계속 미국으로 유입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국경에 장벽을 세우겠다고 하다가 급기야 ‘국경 폐쇄’로 위협한 것이다. 미국 전체 유권자 가운데 11%(약 2730만명)를 차지하는 히스패닉계는 전통적으로 민주당 핵심 지지층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대선에서 멕시코 불법 이민 문제를 핵심 이슈로 내세워 약 31%의 보수 유권자들로부터 지지를 얻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이 문제를 최대한 부각할 방침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인들의 전 국민 건강보험 시대를 연 오바마케어 폐지를 특검 종료 뒤 또다시 꺼내들었다. 이 문제는 사실 공화당도 상당히 부담스러워하는 의제다. 전임인 민주당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시인 2010년 발효된 오바마케어는 약 2000만명에 달하는 취약 계층이 주된 대상이다. 지난해 10월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 국민 10명 중 6명이 찬성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대선 유세 때는 “모든 미국인이 의료보험의 혜택을 받게 하겠다”라고 주장했다가 취임 후 오바마케어 대신 대체 법안을 내놓겠다며 의회 표결을 시도했다가 패배한 바 있다. 지난해 11월 의회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하원을 장악한 만큼 의회를 통한 오바마케어 폐기는 불가능해졌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의회가 아닌 법원에 최종 심판을 구하겠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법무부는 3월25일 “이 제도가 위헌적 요소를 담고 있다”라며 연방 고등법원에 오바마케어의 폐기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현재 연방 대법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임명한 2명의 보수 성향 판사 덕에 보수 5, 진보 4로 보수 우위다.

공화당 처지에서는 지난해 11월 의회 중간선거 당시 오바마케어 폐지 이슈로 민주당에 대패해 하원의 다수 자리를 내준 아픈 경험이 있다. 공화당도 트럼프 대통령의 오바마케어 폐지안에 불안감을 느끼는 것이다. 더욱이 내년 11월에는 대선과 함께 하원의원 전원(435명) 및 상원의원 3분의 1을 새로 뽑는 총선이 예정되어 있다. 민주당 후보와 치열한 경합이 예상되는 텍사스 주의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을 포함해 이미 여러 명의 공화당 상원의원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오바마케어 폐기 방침에 부정적이다. 현재 상원 판세는 공화 53석, 민주 47석으로 공화당 우세이지만 내년 선거에서 민주당이 4석만 더 차지해도 다수당이 된다. 미국 언론이 트럼프 대통령의 오바마케어 폐지 방침을 두고 2020년 백악관과 상원 탈환을 노리는 민주당에 ‘더없는 정치적 선물’이라고 평가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중간선거 때 유권자 10명 중 8명이 최대 관심사로 오바마케어를 꼽았다.

민주당은 현재 극히 일부만 공개된 특검 보고서 전체를 입수해 트럼프 대통령을 더욱 압박할 방침이다. 민주당이 장악한 하원 법사위는 4월3일 특검 보고서 전체를 의회에 제출하라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민주당은 바 법무장관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준 ‘면죄부’의 진실을 가리려 한다. 특히 러시아와의 공모 부분에 특검이 확실히 선을 그은 것과 달리 코미 전 FBI 국장 해임과 관련한 사법방해의 유무죄 판단을 유보한 만큼 이 부분을 철저히 검증하겠다는 것이다. 대선을 앞둔 민주당과 트럼프 대통령의 정면대결이 시작되었다.

기자명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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