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생일을 한 번도 제 날짜에 챙기지 못했다. 18년차 베테랑 진화대원인 산림청 공중진화대 소속 홍성민 대원은 ‘산불 시즌’이 되면 좀체 집에 들어가지 못한다. 홍씨는 아내가 노란 프리지어 꽃을 좋아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프리지어가 만개하는 4월이면 겨울 동안 잠잠했던 산불 신고 횟수도 정점을 찍는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4월4일 오후 12시30분, 홍성민씨를 비롯한 산림청 강릉산림항공관리소 소속 공중진화대 대원 12명이 속속 사무실로 복귀했다. 이틀 전인 4월2일 오후 3시께 부산시 해운대구에서 난 산불을 진화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이들은 2박3일 밤낮 없이 산을 타며 불길을 잡았다. 바로 집으로 갈 수 없었다. 동해안에 부는 강풍이 심상치 않았다. 산불이 난다면 크게 번질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대원들은 사무실에서 대기하며 상황을 예의 주시했다.


ⓒ시사IN 이명익4월5일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에 있는 김윤숙씨의 자택에서 김씨 가족과 마을 주민들이 불탄 집을 바라보고 있다.


산불이 나면 산으로 들어가 직접 불길을 잡는 건 소방대원이 아니다. 산불 진화는 산림청에 소속된 공중진화대, 산불재난특수진화대(특수진화대), 산불전문예방진화대(예방진화대)의 몫이다. 이 가운데 공중진화대는 헬기에서 라펠(밧줄)을 타고 현장에 내려가 최전선에서 불길을 잡는 ‘산불 기동타격대’다. 기상 악화 등 이유로 헬기를 띄우지 못할 때면 직접 산에 올라가 펌프로 끌어 올린 물로 불을 끄거나, 낙엽 등 불에 탈 수 있는 연료(지표물)를 긁어내 더 이상 불이 번지지 않도록 방어선을 구축한다. 전국 각 지방 12개 산림항공관리소에 홍씨를 포함한 66명이 공중진화대로 근무하고 있다.

전국 66명의 공중진화대원들

홍씨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4월4일 오후 2시45분, 강원도 인제군 남면에서 산불 발생 신고가 들어왔다. 사무실에서 대기하고 있던 홍성민씨와 동료들이 출동했다. 인제로 가는 길에 또 다른 곳에서 산불이 났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이번에는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이었다. 전봇대의 전류 흐름을 여닫는 개폐기에서 튄 것으로 추정되는 불씨가 용접 불꽃처럼 바람에 날렸다. 당시 고성군에는 순간 최대 풍속 26m가 넘는 강풍이 불고 있었다. 인제로 향하던 강릉 공중진화대 대원들은 고성 산불 현장으로 차를 돌렸다.

소방 헬기가 뜨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현장에 도착한 대원들은 불길을 따라 산으로 올라갔다. 낙엽을 긁어모으는 ‘불갈퀴’와 물을 끌어올리는 동력 펌프인 ‘기계화 산불 진화장비’, 무전기 하나가 손에 든 전부였다.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 만큼 바람이 강했다. 불길이 20~30m, 크게는 100m 높이로 치솟았다. 등 뒤에도 불이 붙어 (안전하게 빠져나갈 수 있는) 퇴출로마저 확보가 안 됐다.” 대원들은 산에서 철수하고 등반하기를 반복하며 이튿날 아침 8시까지 산불을 진압했다.


ⓒ시사IN 이명익산림청 공중진화대 대원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4월5일 오전, 불길이 꺼진 원암리 마을회관 앞 버스 정류장에는 하룻밤 사이에 집을 잃어버린 주민 20여 명이 모여 있었다. 혹시라도 하는 마음에 폐허를 헤집다 온 사람들의 손은 새까맸다. 원암리 이장 송규화씨는 “해마다 불어오는 편서풍인데, 어제는 특히 강했다. 불씨가 바람을 타고 마치 화염병처럼 날아왔다”라고 말했다. 바짝 붙어 있는 옆집인데도 운 좋게 불씨가 비껴간 집은 멀쩡했고, 불씨가 앉은 집은 잿더미가 됐다.

마을회관에서 100m 떨어진 김윤숙씨의 이층집은 벽돌과 뼈대만 남았다. “2005년 양양 낙산사에서 불이 크게 났을 때, 친정집이 불탔다. 그날도 4월4일이었다.” 딸아이가 타는 냄새를 맡고 밖을 내다봤을 때는 이미 불씨가 마당으로 날아온 뒤였다. 식구들은 대피했지만 마당에서 키우던 강아지 두 마리는 불길을 피하지 못했다. 김씨가 목소리를 낮췄다. “아이들이 애지중지하던 강아지라 아직 말을 못했다. 어떻게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

돌풍이 불 때마다 하얀 재가 싸라기눈처럼 날렸다. 각각 초등학교 6학년과 3학년인 김윤숙씨의 아들과 딸은 두 손바닥으로 연방 코를 감쌌다. 딸은 “일기를 진짜 열심히 썼는데 다 타버렸어요. 선생님이 일기장에 적어주신 글도 타버렸어요”라며 울상을 지었다. 김씨는 장롱이 있던 위치를 어림짐작해 예물 시계와 금반지를 찾아냈다.

고성군 산불을 잡은 홍성민씨와 동료들은 쉴 틈 없이 강릉시 옥계면으로 넘어갔다. 옥계면은 4월4일 밤 11시45분에 새롭게 신고된 산불 현장이었다. “관할구역 안에서 2곳이 동시에 불나는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이번처럼 인제·고성·옥계 등 3곳이 동시에 불난 경우는 처음이었다.” 유례없는 산불 규모에 전국의 공중진화대 대원이 다시 옥계로 투입됐다. 이틀 전 해운대 산불 현장에서 함께 작업했던 양산, 울진, 안동 등 다른 지역 관리소 대원들을 다시 만났다. 심지어 석 달 전 위암 수술을 받아 쉬고 있던 김세동 대원까지 자원해 산에 올랐다.

22년 동안 결혼기념일 한 번도 못 챙겨

ⓒ시사IN 이명익4월6일 강릉시 옥계면 천남리 마을 주변 야산이 검게 탔다.


공중진화대뿐 아니라 예방진화대와 특수진화대도 최대 인력이 투입됐다. 산림청 소속 공무원인 공중진화대는 산불 진화와 인명 구조, 해충 방제 등 다양한 업무를 맡는다. 예방진화대와 특수진화대는 산불 예방과 진화를 중심으로 한다. 전국에 약 9000명이 있는 예방진화대는 소속된 관할구역에서 산불 작업을 하는데, 1년에 5개월 동안 근무하는 계약직이다. 약 330명의 특수진화대는 지역에 상관없이 출동하며 10개월 기간의 계약직이다. 명분은 특정 시기에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산불의 특성상 탄력적으로 인력을 운용하기 위해서다. 그 덕분에 옥계 산불은 하루 만에 잡혔다.

마지막까지 진화에 애를 먹은 곳은 인제군이었다. 산불이 난 세 지역 중 가장 먼저 신고가 들어왔지만, 다른 곳과 달리 주로 암석으로 이루어진 산이라 돌 사이에 낀 낙엽 등을 연료로 삼은 불씨가 자꾸 되살아났다. 돌산인 만큼 진화대원의 접근도 쉽지 않았다.

4월6일 오전 마지막 진화지인 인제군 남면에서 만난 산림청 산림항공본부 소속 김용호 대원 역시 해운대 산불 때부터 계속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화재 3건이 동시에 발생한 4월4일은 공교롭게도 결혼기념일이었다. 김용호씨는 공중진화대에 들어오고 나서 지금까지 22년 동안 한 번도 결혼기념일을 제대로 챙겨본 적이 없다. 산불이 가장 많이 발생할 때라 늘 현장에 나가 있어서다.


ⓒ시사IN 이명익4월5일 산림청 헬기가 고성군 토성면 봉포리의 공장 불을 끄는 모습.
ⓒ시사IN 이명익고성군 토성면 한 집에서 기르는 개가 콧잔등에 화상을 입은 채 담 틈 사이로 밖을 쳐다보고 있다.
ⓒ시사IN 이명익4월5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조사관들이 발화 지점으로 알려진 토성면 원암리의 전봇대를 감식 중이다.

4월6일 오후 7시, 인제군을 포함한 강원도 일대에 비가 내렸다. 잔불을 제거하고 있던 공중진화대 대원들에게 마침내 사무실 복귀 명령이 내려졌다. 경북 울진관리소 소속의 김인환 대원은 그제야 얼굴에 입은 화상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에 입원했다. 해운대 산불 진화 당시 입은 화상을 제때 치료하지 못해 세균에 감염된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서였다.

4월4일부터 4월6일까지 사흘 동안 여의도 면적의 6배가 넘는 숲 1757㏊가 사라지고, 주택 500여 채가 불에 타 1200여 명이 집을 잃었다. 지금까지 발생한 산불 중 네 번째로 큰 피해 규모다. 진화하는 데 걸린 시간이나 인명 피해(사망 1명)는 이전에 비해 획기적으로 줄었다. 대형 재난이 발생하면 관할지역 구분 없이 자원을 총동원할 수 있도록 2017년 7월 개정된 소방청 지침 덕분에, 전국 각지에서 모인 소방차 872대와 소방대원 3251명이 큰 기여를 했다. 4월5일 ‘소방공무원을 국가직으로 전환해달라’는 제목으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글은 사흘 만에 20만명의 동의를 받아 답변 기준을 넘어섰다. 산림청 소속 진화대원들 역시 국민의 관심을 받을 수 있을까.

기자명 고성·옥계·인제/글 나경희 기자·사진 이명익 기자 다른기사 보기 did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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