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으로, 영화 〈친구〉가 나오기 전까지 폭력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조폭은 전라도 사투리를 썼다. 영화 속 언어는 대중에게 전라도 지역에 대한 편견을 줄 수 있는 요소다. 미국 영화나 미디어 사진에서도 범죄자는 흑인으로, 경찰은 백인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미디어 학자인 P. M. 레스터는 매스미디어에서 쓰이는 이미지의 가장 큰 문제로 스테레오타입, 즉 정형화(定型化)를 꼽는다. 스테레오타입 이미지는 사회의 독(毒)이다. 정형화라는 말 그대로 사회집단을 특정하게 규정하기 때문이다. 스테레오타입 이미지가 담고 있는 메시지는 매우 효과적으로 수용자에게 전달된다. 수용자가 단어나 문장보다 시각적 이미지를 훨씬 더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특히 사진은 찍는 사람과 찍히는 사람으로 나와 타자를 구분한다. 이게 사진에서는 당연하다. 어떤 장면이든 사진에 담긴 모습은 빼도 박도 못하는, 더 이상 논쟁할 수 없는 진실처럼 보이기 마련이다.

 

일제가 자신의 우월성을 강조하기 위해 만든 식민지 조선의 풍속 사진엽서.


범죄를 놀이로 여기는 ‘위험한 심리’

여성·어린이·이민자·유색인종 등 몇몇 집단에 가해지는 스테레오타입 이미지와 그에 따른 타자화 역시 고정된 인상을 대중에게 심어준다. 집단에 속한 사람을 특정한 사회 유형으로 규정짓고, 개별성을 무력화한다. 결과적으로 ‘만들어진’ 스테레오타입이 일반화하고, 그 안에 그려진 특정 집단은 우리와 분류된 타자로 인식된다. “그 남자(여자)는 이러이러해”라는 게 어느새 “남자(여자)는 다 그래”로 치부되는 식이다.

최근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섹스링(sexring)’이라는 다소 낯선 용어를 발견했다. 섹스링은 집단 성희롱이나 이와 관련된 촬영물을 공유하며 노는 ‘범죄놀이’이다. 가수 정준영 사건을 계기로 몰카 유통과 관련해 주목받은 용어다. 만취 상태로 잠자는 여성을 몰래 촬영해서 SNS에 공유하고, 사진 속 인물에 대한 음담패설을 늘어놓는다.

이미지, 특히 사진에는 현실을 규정하는 힘이 있다. 인터넷에 공유하는 몰카 속 여성 이미지는 여성을 대상으로 만들어버린다. 여기에 가담한 시선은 제3 세계와 식민지 조선을 타자로 바라보던, 서구 열강 및 일본 제국주의 시선과 결코 다르지 않다. 아래 사진은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풍속 사진엽서다. 일제는 자신의 우월성을 강조하기 위해 식민지 조선의 풍속을 활용했다. 문화적 이질성을 보여주는 풍속 사진을 엽서로 만들어 대량 유통했다. 조선을 타자화하면서 반대급부로 일제 자신을 ‘자랑질’하는 효과를 노린 것이다. 그중 대표적인 이미지가 바로 기생과 한복을 입은 여성이 등장하는 관광 포스터다.

공유한 사람들에게는 놀이에 불과하겠지만 섹스링은 엄연히 범죄다. 문제는 범죄를 놀이로 여기는 심리다. 범죄를 범죄로 여기면 죄의식이라도 있지만, 범죄를 놀이로 여기면 죄의식도 크지 않거나 아예 없어진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 위험은 또 있다. 전통적인 미디어에서 특정 대상을 정형화하는 일반화가 해악이었다면, 디지털 시대에는 정형화한 이미지가 마구 유포된다. 찍힌 사람에게는 공포 그 이상이다. 자신이 찍힌 사진이나 영상이 도달 범위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광범위하게 확산된다.

몰카, 리벤지 동영상, 정준영 사건과 섹스링이라는 단어 등에서 알 수 있듯이 타자화하며 편견을 조장하는 이미지를 유희의 대상으로 삼고 공유하는 행위는 정형화를 더욱 공고히 할 뿐이다. 그 순간, 이미지 속 사람은 더 이상 인격체로서의 ‘그(녀)’가 아닌 ‘그것’이 되기 때문이다.

기자명 김성민 (경주대학교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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