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아산병원 고 박선욱 간호사(27)가 입사 5개월 만인 지난해 2월15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8년차 간호사이던 최원영씨(서울대병원·33)는 “생전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타인이지만, 왜 죽었는지 잘 알 것 같았다”라고 말했다. 그 역시 박선욱 간호사처럼 내과 중환자실에서 병원 생활을 시작했다. 두 달 교육받고 중환자 2명을 책임져야 했다. 자신도 모르게 ‘죽고 싶다’ 생각하던 날들이었다. 작은 실수로도 누군가를 죽일 수 있다는 중압감에 시달렸다.

최원영 간호사는 가만있을 수 없었다. 페이스북에서 무작정 박 간호사의 지인을 수소문했다. 유족을 만나고, 언론에 사건을 알렸다. 추모집회를 열어 “나는 너였다”라고 외쳤다. 최씨는 지난 1년간 직장인 서울대병원 다음으로 서울아산병원을 자주 찾았다. 서울아산병원 근처에 추모 리본을 달자 병원 측이 떼어내기도 했다. 지난해 4월 보건의료·시민단체 17곳이 꾸린 ‘고 박선욱 간호사 사망사건 공동대책위원회’에 참여했다. 지난해 8월 유족은 딸의 죽음에 대해 산재 신청을 냈고, 권동희 노무사가 이를 대리했다.

ⓒ시사IN 이명익

박선욱 간호사가 숨진 지 1년여 만인 지난 3월6일, 근로복지공단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질판위)는 이 죽음이 산재라고 인정했다. “간호사 교육의 구조적인 문제로 직장 내에서의 적절한 교육체계 개편이나 지원 등이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과중한 업무를 수행, 이를 고려하면 고인의 사망과 업무 사이에 타당한 인과관계가 인정된다.” 간호사의 자살이 산재로 인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질판위는 박선욱 간호사의 죽음이 과로나 개인적·집단적 괴롭힘 때문이라는 객관적인 증거를 찾지 못했지만 병원의 ‘구조적인 문제’를 들어 업무상 재해라고 봤다. 애초에 이 사건은 간호사 간 괴롭힘을 가리키는 은어인 ‘태움’으로 이슈가 되었는데, 이 판정은 좁은 의미의 태움을 넘어선 것이다. 최씨는 “태움이 (간호사인) 여자들 간의 싸움처럼 자극적으로 보도되었지만, 간호사들을 힘들게 하는 건 병원의 구조 그 자체다. 인력이 부족하니 과중한 업무를 떠맡게 되고, 충실한 교육이 이뤄지기 어렵다. 이번에 그런 구조적인 문제가 인정받은 것은 큰 진전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 서울아산병원은 공식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 정부의 대책도 이렇다 할 게 없다. “박선욱 간호사 이후 간호사 4명이 또 목숨을 끊었다. 하루 온종일 밥도 제대로 못 먹고 화장실도 제때 못 가며 일하는 간호사들이 죽어간다면, 그런 간호사들에게 치료를 받는 환자들은 안전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했으면 좋겠다. 제2, 제3의 박선욱을 보고 싶지 않다.”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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