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을 둘러싼 불길한 흐름이 재개된 것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지난 4월25일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하기 직전이었다. 4월22일(현지 시각), 미국이 이란의 원유를 다른 나라들이 수입하지 못하게 한 조치를 한층 강화했다.

미국은 지난해 5월7일 오바마 정부 시절 체결한 이란 핵 합의(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 전격 파기를 선언했다. 그로부터 6개월 뒤인 11월5일부터는 이란산 석유에 대한 거래 중단 조치를 시행했다. 어떤 나라든 이란산 석유를 수입했다간 미국의 제재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8개국에 대해선 해당국의 원유 수급 상황을 고려해 예외를 인정했다. 한국·중국·일본·인도·터키·이탈리아·그리스·타이완이다. 다만 지난해 11월 이후 6개월(180일)마다 예외 조치를 연장할지 재검토하기로 했다. 올해 시한은 5월2일이었다.

그런데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4월22일 기자회견에서 “한국, 중국, 일본 등 8개국에 적용한 이란산 원유 금수 예외 조치도 5월2일자로 끝내고 더 이상 연장하지 않겠다”라고 발표했다. 북한은 물론 이 문제와 직접적 관련성은 없다. 중국에서 원유를 수입하고, 이란에게는 무기를 판다. 중국과 이란은 북한에게는 경제적으로 매우 중요한 국가이다. 어떤 측면에서는 북한이 ‘중동발 먹구름’의 최종 피해자로 전락할 수도 있다.

ⓒEPA2박3일간의 러시아 방문 일정을 마치고 귀국길에 오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블라디보스토크 역에서 전용열차에 올라 밖을 바라보고 있다.


지난 4월 초까지만 해도 이란 문제와 관련된 미국의 분위기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4월7일자 〈월스트리트저널〉은 “리비아 정국 혼란으로 리비아산 원유 공급 차질이 예상돼 이란산 원유 수입 금지 예외 조치가 연장될 가능성이 있다”라는 미국 정부 고위 관료의 발언을 전하기도 했다. 즉 4월 초만 해도 국제적인 유가 인상을 부담스러워하는 미국 정부 내 온건파들의 목소리가 강했다고 볼 수 있다. 미국 정부가 갑작스럽게 이란 압박을 강화한 것은 ‘원유 수출을 통제해야 이란을 새로운 핵 합의로 끌어낼 수 있다’라는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 등 강경파의 주장이 먹혔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란에만 초점을 맞추면 전체 국면을 이해하기 힘들다. 미국 정부 내에서 대(對)중국 견제 혹은 압박의 필요성이 크게 대두된 것이 더욱 중요한 원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현재 미·중 무역협상은 거의 막바지에 도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중국에 ‘외국 기업에 대한 기술이전 강요’ ‘지식재산권 침해’ ‘농산물 및 서비스 시장 개방’ ‘산업보조금 지급’ ‘위안화 환율 조작’ 등 이른바 무역 불균형 문제를 추궁하고, 중국이 시정안을 내놓는 방식으로 전개되어왔다고 한다. 5월8일, 중국 고위 협상단의 워싱턴 방문으로 합의안의 골자를 마련해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 간 마지막 담판으로 넘기리라 예상되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도발한 미·중 무역전쟁의 속내는 단지 무역 불균형 문제가 아니다. 중국몽(中國夢)과 일대일로(一帶一路)를 내세우며 미국의 세계 패권에 도전해온 시진핑 주석을 주저앉히려는 경고이기도 했다. 반면 중국은 무역협상과는 별개로 패권 행보를 중단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밝혀왔다. 지난 4월25~27일 베이징에서 성대하게 치러진 ‘일대일로 국제협력 정상포럼’이 바로 그것이다. 중국은 미국이 반발하는데도 이번 회의에 개발도상국 정상들을 대거 초청했다. 40여 명에 이르는 국가 정상 및 국제기구 대표들이 이 포럼에 참석해, 640억 달러 규모의 프로젝트를 중국과 합의했다고 한다.

지난 4월 초 이미 포럼 불참을 통고한 미국으로서는 유쾌한 상황 전개가 아니다. 미국은 일대일로가 성공하리라고 보지 않는다. 경제성이 없다고 추정되었기 때문이다. 중국의 홍보 덕분에 최근 일부 유럽 국가들이 일대일로에 관심을 보이기도 했지만, 미국은 별로 개의치 않는다. 1970년대 미·소 대결 시대에도 소련이 유럽 쪽으로 세를 확장하려고 공을 들였다. 유럽 국가들은 결국 미국 편일 수밖에 없었다. 유럽의 안보를 미국이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유럽 국가들은 다만 중국이 돈을 쓰겠다는 것을 마다하지 않을 뿐이다.

미국 측이 단행한 이란산 원유 거래의 전면 금지 조치의 최대 피해자는 말할 것도 없이 당사국인 이란이다. 이란은 미국의 제재로 인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마이너스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원유 거래가 전면 금지되는 경우 이란 국내 물가가 40% 이상 급등하리라 본다. 예외를 인정받았던 8개국 중에서 가장 큰 충격을 받게 될 나라는 단연 중국이다. 이탈리아, 그리스, 타이완은 이미 이란산 원유 수입을 중단했다. 한국과 일본은 이란산 원유의 수입 물량을 대폭 줄였다. 전체 원유 수입에서 차지하는 이란산 비중이 크지 않다.

미국 “중국을 위한 면제 조치는 없다”

 

ⓒEPA5월1일 중국 베이징에서 미·중 고위급 무역협상이 열렸다.
미·중 무역협상이 거의 막바지에 이른 분위기다.


중국의 경우, 이란산 원유 수입 규모 자체가 엄청나다. 블룸버그 통신이 유조선 추적 시스템으로 추산한 바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 3월 하루 평균 이란산 원유 61만3000배럴을 수입했다. 이란의 하루 수출량 110만 배럴의 절반 이상에 해당한다. 평균적인 하루 수입량이 지난해의 58만5400배럴에서 올해 들어 3만 배럴 정도 오히려 증가한 것이다. 중국 측은 지난해 11월 이후 수출 길이 막힌 이란산 석유를 싼값에 대거 사들여 짭짤한 재미를 보기도 했다. 미국의 이번 조치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이란산 원유 수입을 중단하지 않을 경우 더 많은 이란산 물량이 중국으로 몰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여차하면 중국의 이란산 석유에 대한 하루 수입량이 100만 배럴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5월2일 현재 중국 측은 미국의 조치에 따를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폼페이오 장관이 이란산 원유 거래 금지를 발표한 지난 4월22일,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중국은 미국의 일방적 제재를 일관적으로 반대한다. 중국과 이란의 협력은 공개적이고 투명하며 합리·합법적인 것으로 존중받아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시진핑 주석은 지난 2월 중국을 방문한 이란 국회의장 등 핵심 고위 인사들을 만나 “국제 지형이 어떻게 변하든 이란과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을 지속할 것”이라고 약속한 바 있다. 대국으로서 체면 때문에라도 물러서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미국 측 방침은 확고하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이란과 교역하는 국가나 단체는 미국의 제재를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뉴욕타임스〉는 ‘이란산 원유 수입국을 제재하는(세컨더리 보이콧) 이번 조치가 미·중 관계를 풀기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제3국의 기업이나 개인이 미국 금융권에 접근할 수 없게 하는 세컨더리 보이콧이란, 미국 주도의 달러 경제 체제에서 해당 국가나 기업(이란산 원유를 수입하는)을 제외한다는 의미다. 세컨더리 보이콧을 받는 국가와 기업은, 달러 경제가 주도하는 국제 상거래 질서로부터 퇴출당하게 되는 것이다.

미국은 이미 ‘중국만을 위한 이란산 원유 금수의 단계적 축소나 면제 조치는 없다’고 못 박았다. 심지어 이 문제를 막바지에 이른 미·중 무역협상과도 연계할 방침이다.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은 4월28일 “중국 측에 이란산 원유 수출을 막기 위한 노력이 트럼프 행정부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이미 설명했다. 이 문제가 미·중 무역협상에서 논의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REUTERS페르시아만에 있는 이란 유전에서 석유 시추봉 위로 불꽃이 타오르고 있다.


현재 미국 내 전문가들은, 중국이 미국의 경고를 무시하고 이란에서 원유를 계속 수입하면 이 같은 거래의 직접 당사자인 중국 석유천연가스집단유한공사(CNPC)와 주거래 은행인 인민은행(중국의 중앙은행)까지 제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화웨이의 멍완저우 부회장이 구속되었던 이유도, 이란과의 금지된 거래를 위해 글로벌 은행들을 속인 혐의다. 당시 ‘화웨이 다음은 CNPC’라는 소문이 떠돈 바 있는데, 그 실체가 드러나는 듯하다.

이란발 원유 수입 문제로 중국이 어려움에 처하면 중국으로부터 매년 일정량의 원유를 공급받는 북한 역시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중국 원유를 북한에 공급하는 당사자이기도 한 CNPC가 미국의 제재를 받게 되면 북한 역시 직접적으로 피해를 볼 수 있다.

당사국인 이란의 반발로 인한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 가능성 또한 북한에는 달가운 소식이 아니다. 김정은 위원장의 통치자금을 관장하는 노동당 39호실의 최대 수입원인 무기 판매가 주로 이란을 통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란과 미국, 이스라엘까지 연루된 중동의 긴장 상황이 발생하면 당연히 그동안 느슨했던 북한 무기의 중동 수출에 대한 통제가 강화될 것이다.

4월22일 미국 국무부의 이란산 원유 거래 금지 조치 이후 당사자인 이란은 ‘유사시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겠다’는 입장을 거푸 내놓았다. 당일인 4월22일 이란 혁명수비대 소속 알리레자 탕시리 해군 사령관은 즉각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수 있다고 위협했다. 4월28일 모하마드 바게리 이란 군 참모총장이 테헤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 석유가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가지 못한다면, 다른 나라도 그렇게 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호르무즈 해협은 페르시아만과 오만만 사이의 좁은 해협으로 세계 석유의 20%(해상 석유 운송의35%)가 지나가는 통로다. 매일 1700만 배럴의 석유가 유조선으로 호르무즈 해협을 지난다. 해협의 가장 좁은 구역이 국제법상 이란의 영해다. 이란이 봉쇄하면 통행이 불가능해진다.

북한 무기 수출 위태로워질 수도

 

ⓒREUTERS이란 해군 소속 잠수함이 호르무즈 해협에서 국기를 세우고 있다.
이란은 유사시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면, 그동안 시리아 주둔 이란 군과 사실상 교전해온 이스라엘 측이 군사행동을 벌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지난해 8월1일, 이란이 바브엘만데브 해협(아라비아반도 남단의 예멘과 아프리카 지부티 사이에 위치)의 봉쇄를 시도한다면, 사우디아라비아와 협력해 저지하겠다고 밝혔다. 원래 미국의 유대인 이익집단과 그리 가까운 편이 아니었던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 후 미국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등 친이스라엘 행보를 걸어온 데 대한 보답으로라도 이스라엘이 미국과의 역할 분담 속에서 대(對)이란전의 선봉으로 나설 가능성이 높다.

이러면 이란에 대한 북한의 무기 공급망에 대해 모사드 등 이스라엘 정보기관들의 추적이 이뤄지면서 결과적으로 북한의 최대 외화 수입원인 무기 수출도 위태로워질 수 있다. 현재 해상 수송로가 거의 봉쇄된 상태에서, 북한의 무기 수출은 주로 중국을 거쳐 육상으로 이뤄지고 있으리라 보인다. 이런 육상 수송 역시 중국이 계속 궁지로 몰릴 경우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다.

원유와 무기는 현재 김정은 체제를 지탱하는 양대 수입원이다. 이란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중동의 풍운이 김정은 위원장의 발밑을 위협하는 결과로 나타나지 말란 법이 없다. 결국은 공급 루트를 다변화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다. 이란과 중국으로 이어지는 루트가 위태로워진다면 새로운 루트를 개발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지난 4월25일 김정은 위원장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상회담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기자명 남문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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