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부코스키의 〈할리우드〉(열린책들, 2019)는 그가 발표한 장편소설 여섯 권 가운데 다섯 번째 소설이다. 부코스키는 스물네 살이던 1944년 첫 단편소설을 발표하고 서른다섯 살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으나, 시쳇말로 좀체 뜨질 못했다. 부코스키가 쓴 여러 에세이에 따르면, 미국의 대다수 백인 시인들은 평생 돈 많은 부모 특히 어머니의 보호를 받는다고 한다(대신 시를 써주기도 한다!). 하지만 하류 계층을 겨우 면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부모와의 관계도 좋지 못했다. 그는 온갖 일용직을 전전하며 젊은 시절을 보낸 다음, 우체국 직원으로 12년을 근무했다.

부코스키는 1994년에 발표한 마지막 소설 〈펄프〉를 제외한 다섯 권의 소설에서 ‘헨리 치나스키’라는 주인공을 등장시킨다. 작중의 치나스키는 허구를 위해 창작된 인물이 아니라, 부코스키가 소설에서 사용하는 본인의 가명이다. 작가의 체험을 충실히 기록하고 있는 데다 많은 내용이 이성애에 기반한 성애를 다루었기 때문에 그의 소설은 헨리 밀러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밀러의 소설이 성 심리를 기반으로 하는 반면, 부코스키에게서는 그런 심리주의가 없다.

ⓒ이지영


한국에 번역된 장편소설 다섯 권 가운데 한 권을 고르라면 단연 그가 쉰한 살에 발표한 첫 소설 〈우체국〉 (열린책들, 2012)을 꼽아야 한다. 생계를 위해 우체국의 분류 직원이 된 치나스키는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의 꿈과 멀어지며 조직의 부품이 되어가는 것에 두려움을 느꼈다. 그는 같은 직장에서 오래 근무했던 동료 두 명이 육체적·정신적 소진 끝에 정신분열증에 빠지는 것을 보고 나서, 자신을 조롱에 든 새에 비교했다. 조롱에 길든 새는 문을 열어놓아도 쉽게 날아가지 못한다. “새는 초조하게 새장 바닥을 거닐었다. 결정하려니 머리 터지겠지. 인간이건 새건 모든 것은 이런 결정을 해야 한다.” 갈등 끝에 사표를 낸 그는 쉰 살에 전업 작가가 되었다.

못 말리는 술꾼이었던 부코스키는 거의 매일 경마장으로 출근을 했고, 이 여자에서 저 여자로 옮겨 다녔다. 그의 삶은 그를 숭앙하는 열혈독자를 낳기도 했지만 치나스키와 육체관계를 맺기 위해 등장하는 소설 속의 무수한 여성은 부코스키의 소설을 포르노그래피로 만들었고, 그를 남성우월주의자로 낙인찍기도 했다. 하지만 치나스키의 여성 편력을 노골적으로 나열했던 〈여자들〉(열린책들, 2012)에서 주인공은 미국 문학사에서 남성이 흔히 과시해온 권위와 강인함을 전혀 드러내지 않는다. 오히려 치나스키와의 관계에서 주도권을 행사하는 것은 여자들이며, 여성의 성적 자율권은 두드러지게 강조되었다. 이런 역전은 1960∼1970년대 미국 여성해방운동에 한껏 부응하는 것이다.

술·경마·여자에 대한 탐닉은 부코스키를 미국 사회의 반(反)영웅으로 만들었다. 그는 청교도적 죄의식을 느끼기는커녕 그것을 자신의 상표로 삼았다. 더 중요한 점은 그가 선택한 비생산적인 탕진이 자본주의라는 현대적 삶에 대한 거부였다는 것이다. 그는 일흔셋에 작고하기 직전까지 쓴 일기를 모은 〈죽음을 주머니에 넣고〉(모멘토, 2015)에서 “나 역시 어떤 면에선 병들었다. 현실을 직시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느 인간이 현실을 직시하고 싶은가?”라고 반문한 뒤 이렇게 덧붙였다. “뭐가 쓸모가 있는지 내게 말해보라. 변호사가 되라고? 의사? 국회의원? 죄다 똥이다. 그자들은 체제에 단단히 묶여 벗어나지 못한다.” 어쩌면 그는 에리히 프롬이 〈정신분석과 듣기 예술〉(범우사, 2000)에서 포착했던 역설을 실천했는지도 모른다.

“노력하지 마라”

“우리는 어떤 것이 사회적 기능을 방해할 때만 아프다고 부른다. 어떤 사람이 돈의 실제적인 가치 말고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고 하자. 그럴 때 우리는 그 사람을 똑똑하다고 부른다. 이런 사람들이 가장 성공적인 사람이다. 그러나 그런 이유로 당신이 더 건강한 것은 아니다. 정신병이라 불리는 사람과 현실적인 사람 중에 누가 더 아픈가라는 문제가 생긴다. 나는 많은 정신분열증 환자가 정신분열증에 걸려서 오히려 더 행복해졌다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체국을 마지막으로 그는 반(反)노동을 실천하면서, 어쩌다 생긴 쥐꼬리만 한 원고료를 모조리 경마장에 내다 버렸다. 부코스키가 매일 경마장으로 향하는 이유는 그곳이 자본주의를 능멸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경마장은 자본주의 종교의 가장 중요한 덕목인 근면과 금욕(절약)을 내팽개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파산해서 신용마저 저버리는 곳이다(그곳에서는 모두들 갚지도 못할 돈 빌리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경마장에서 돈을 따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공한 것만큼이나 부도덕하고 부조리하다. 대낮에 모든 것을 탈탈 털리고 집으로 돌아와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쓴 그의 글에서는 절망을 찾아볼 수 없다.

 

 

 

 

자신들의 이중성이 괴로워서였는지 많은 엘리트 예술가들이 부코스키의 팬이 되었고, 예술 (저예산) 영화감독들이 그에게 눈독을 들였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그가 시나리오를 쓰고 바르베 슈뢰더가 연출한 〈술고래(Barfly)〉 (1987)다. 당대 최고의 남자 배우였던 미키 루크가 부코스키 역을 맡았고, 페이 더너웨이가 부코스키의 연인이었던 제인 역을 맡았다. 〈할리우드〉는 시나리오를 집필한 부코스키가 영화 제작 현장을 관찰하고 쓴 소설로 걸작은 분명 아니지만, 가명으로 처리된 영화계 인사들의 이름을 알아맞히는 일에서 쏠쏠한 재미를 느낄 독자도 없지 않을 것이다. 부코스키는 여러 에세이에서 영화를 멍청한 것으로 비난해왔던 만큼, 이 소설에 나오는 독설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그들은 단순히 어쩌다 큰 성공을 거두었다. 아니면, 일반 대중이 어리석어서 부자가 되었다. 보통은 재능도 없고, 눈도 없고, 영혼도 없는 자들이었고 걸어 다니는 똥 덩어리였다. 하지만 대중의 눈에 그들은 신과 같고 아름다우며 숭배의 대상이었다. 나쁜 취향이 좋은 취향보다 더 많은 백만장자를 만든다. 사람들은 영화에서 쓰레기를 보는 데 너무 익숙해져서 그게 쓰레기라는 것도 이제 깨닫지 못했다.” 부코스키는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이레이저헤드(Eraserhead)〉(1977)를 자신이 본 최고의 영화로 추켜세우기도 했으나, 그가 누린 유일한 문화생활은 앞서 말한 클래식 음악 감상이었다. 그는 클래식 음악만 켜놓으면 글이 저절로 쓰인다고 할 만큼 클래식 음악을 좋아했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부코스키의 묘비 사진을 꼭 보여주고 싶다(인터넷으로 볼 수 있다). 그의 묘비에는 아주 짧은 글이 적혀 있다. “노력하지 마라(Don’t try).”

 

기자명 장정일 (소설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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