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서강대 박정수 교수가 소득주도 성장을 비판하는 논문을 발표해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내용인즉 노동자들이 일한 만큼 대가를 받지 못하여 소득주도 성장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잘못된 현실 인식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이다. 진보 성향 학자들의 기존 연구들은 2000년 이후 노동생산성에 비해 실질임금의 상승이 낮았다고 보고한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결과가 소비자물가지수로 실질임금을 계산하고 GDP 디플레이터로 노동생산성을 계산했기 때문이며, 물가지수의 차이를 배제하면 그런 증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보수 언론들은 이 연구를 보도하면서 소득주도 성장을 공격한다.

하지만 이 연구에는 여러 문제가 있다. 먼저 물가 상승을 고려하지 않은 명목변수를 사용하더라도 어느 시점을 기준 연도로 잡느냐가 영향을 미친다. 박 교수의 논문은 2000년을 기준 연도로 사용했지만 외환위기 이전인 1993년부터 그래프를 그려보면 외환위기 이후 노동생산성과 임금 사이에 격차가 드러나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도 격차가 다시 나타난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몇 년 동안은 임금 상승이 크게 둔화되었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대부분의 임금 자료가 5인 이상 상용노동자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노동자 중 약 35%에 달하는 많은 저임금 노동자들을 포괄할 수 없다는 점이다. 국민계정의 피용자보수를 임금근로자 수로 나누어 모든 노동자의 임금을 계산해보면 노동생산성과의 격차가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런데 ‘명목 GDP÷취업자 수’로 계산되는 노동생산성은 감가상각이 포함되어 있어서 이를 제외한 요소비용국민소득을 사용하는 게 개념적으로 더욱 정확할 것이다. 자본소득과 노동소득의 특징을 모두 지닌 자영업자의 소득은 빼고, 법인 부문의 영업잉여와 피용자보수를 임금근로자 수로 나누면 순노동생산성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사용하면 노동생산성과 임금 사이의 격차가 작아지지만 여전히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격차가 나타난다. 이는 사실 자영업 소득을 보정한 노동소득분배율의 계산 방식과 일치한다. 국민소득에서 노동자가 가져가는 몫인 노동소득분배율은 1997년과 2008년 위기 이후 하락하여 현재도 20년 전보다 낮다. 결국 거시경제 전체를 고려하면 1997년 이후 임금이 노동생산성에 뒤처진 것이다.

이른바 노동생산성-임금 격차 문제의 원조는 미국이다. 경제정책연구소 등 진보적인 연구자들은 1973년 이후 미국의 노동생산성에 비해 보통 노동자들의 실질임금 상승이 훨씬 느리다고 주장해 왔다. 흥미로운 것은 미국도 생산자물가로 실질임금을 계산하면 노동생산성과의 격차가 2000년 이후에야 나타난다는 점이다. 이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소비자물가가 생산자물가에 비해 더 빨리 높아졌기 때문이다. 실질임금을 노동자들의 생활수준을 나타내는 지표로 생각한다면 소비자물가지수나 개인소비지출 물가지수를 사용하는 것이 더욱 적절하다.

실질임금 계산엔 소비자물가지수 사용이 적절

주목해야 할 점은 미국의 노동생산성-임금 격차 논의가 흔히 중위임금을 임금의 지표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노동자들 중에서도 고소득 계층은 임금이 크게 높아졌고 임금 불평등이 심화되어 평균임금과 중위임금 사이의 격차가 커졌기 때문이다. 비관리직 생산직 노동자의 임금이나 중위임금을 사용하면 노동생산성과의 격차가 더욱 커지게 된다.

불평등이 심해진 한국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경제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1995년 이후 한국이 선진국들 중 노동생산성-임금 격차가 가장 컸고, 중위임금을 적용하면 평균임금의 경우보다 격차가 더욱 커졌다. 앞서 지적한 임금 자료의 한계를 고려할 때 현실에서 보통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생산성 사이의 격차는 더욱 클 것이다. 이는 물론 소비와 총수요를 억압하여 성장에도 악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결국 지난 20년 동안 한국 경제에서 임금은 노동생산성을 따라잡지 못했다. 현실을 잘못 인식하고 있는 것은 과연 누구인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

기자명 이강국 (리쓰메이칸 대학 경제학부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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