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 2위 경제 대국인 미국과 중국의 10여 차례 무역협상이 타결되지 못하면서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이 부쩍 높아지고 있다. 미국은 지난 5월10일, 20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율을 10%에서 25%로 전격 인상했다. 이와 함께 추가로 30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대해서도 고율 관세를 부과할 방침을 공식화했다. 이에 맞서 중국도 미국산 제품들에 대해 5~25%의 보복관세를 부여하기로 결정하면서 지난해 서막이 오른 양국의 무역전쟁이 본격화된 느낌이다.

급기야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 최대의 통신장비 업체인 화웨이를 ‘수출 제한 블랙리스트’에 올렸다. 이런 조치에 부응해서 구글은 화웨이와 거래 중단을 선언했다. 구글에 이어 인텔, 퀄컴, 브로드컴 등 미국의 다른 IT 거대 업체들도 부품 공급을 중단할 태세다. 중국공산당의 기관지 격인 〈환구시보〉는 화웨이 제재에 대해 “미국이 과학기술 분야에서 중국에 선전포고를 한 것이다”라고 반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과의 타협에 실패할 경우, 농민 유권자들이 집중돼 있는 아이오와, 네브래스카, 미네소타 등 이른바 ‘팜 벨트(farm belt)’ 지역의 표가 떨어져나가고 주식시장이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 그런데도 굳이 협상 결렬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AFP PHOTO트럼프 대통령이 5월20일 펜실베이니아주 몬투어스빌에서 열린 2020년 대선 유세에서 연설하고 있다.


먼저, 미국 경제의 실적이 최근 크게 개선되었기 때문이다. 실업률은 반세기 만에 최저이고 올해 상반기의 국내총생산 성장률 역시 지난해 대비 3.2% 상승하리라 예측된다. 이에 따라 무역 갈등에 따른 충격을 충분히 흡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 것이다. 또한 나름 정치적 계산도 깔려 있다고 보인다. 내년 11월 미국 대선이라는 정치적 프리즘을 통해 미·중 무역분쟁을 관찰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다.

트럼프 행정부 초기 때 백악관 선임고문을 지낸 대중 강경파 스티브 배넌은 “미국이 중국에 부드럽게 나가던 시대는 지났다. 지금은 정치가 경제를 추동한다”라고 〈뉴욕타임스〉에 밝혔다.

실제로 외교 소식통들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초까지만 해도 지지부진한 미·중 무역협상에 조바심을 보이며 참모들에게 협상 타결을 종용했다고 한다. 특히 지난 2월 미·중 양측 협상가들이 최종 문안 작업을 벌이던 상황에서 트럼프는 미국 측 협상가들에게 중국 시진핑 주석과 자신의 개인 별장인 마러라고에서 만나 협정문에 서명하는 방안을 거론할 정도로 미·중 협상에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4월 들어 분위기 변화가 감지됐다. 당시 미·중 양국은 막판 타결을 위해 150쪽에 달하는 잠정 합의문까지 작성했지만 마지막 7개 핵심 조항은 여전히 답보 상태였다. 핵심은, 지식재산권 보호, ‘기술이전 강요 등 불공정 무역관행 시정’ 같은 조항을 중국 측이 법제화하고, 이를 합의문에 명기하라는 것이 미국의 요구였다. 중국은 이런 내용을 법률이 아니라 ‘국무원 행정명령’에 담겠다고 맞섰다. 이 문제로 진통을 겪자 트럼프 대통령이 결국 강경 모드로 돌아섰다는 것이다.

정치 분석가들은 경제적 요인 외에 4월 하순이라는 정치적 시점을 주목한다. 4월25일 민주당의 조지프 바이든 전 부통령이 대권 도전을 선언하며 트럼프 대통령에게 정면 도전장을 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바마 행정부에서 두 번이나 부통령을 지낸 바이든에 대해서는 극히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그가 대권 도전을 선언한 당일 트럼프 대통령은 트윗을 여러 차례 올리며 극도의 경계감을 드러내는 등 바이든 전 부통령을 민주당 라이벌로 기정사실화했다. 바이든 전 부통령은 중국에 유화적 견해를 가진 것으로 알려진 정치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바이든 전 부통령과 차별화하기 위해 중국에 대한 매파적 이미지로 자신을 부각하려 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렇게 정치적으로만 보면,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에 양보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미국의 요구가 최종 협상안에서 후퇴했다는 내용이 보도되면 ‘트럼프는 중국에게 약하다’라는 이미지가 굳어지면서 민주당 대권 후보들로부터 공격을 받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현재 민주당 대선 주자들은 대중 무역협상에 관한 한 강공 모드가 대세다. 샌더스 후보는 당선하면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하고 불공정 무역관행을 손봐주겠다는 등 중국에 대한 공세를 늦추지 않고 있다. 미국기업연구소(AEI) 중국 경제 전문가인 데렉 시저스 박사는 “미·중 무역협상에서 취약한 합의문이 나올 경우 누가 민주당 후보로 나서든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은 그만큼 떨어질 수밖에 없다”라고 〈워싱턴포스트〉에 밝혔다.

물가 상승으로 직격탄 맞을 수도

미·중 무역협상 파국에 따른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계산법도 흥미롭다. 먼저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의 보복관세로 피해가 불가피한 농민들에게 향후 보조금 지급을 통해 충격을 흡수한다는 방침이다. 내년 대선에서 농민 유권자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은 “약 150억 달러에 달하는 농가 피해액을 보전해주겠다”라고 말했다. 미·중 교역액 가운데 농산물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2과 2013년 각각 260억 달러에 달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2017년에는 195억 달러로 줄어들었다.

어쩌면 트럼프 대통령은 ‘팜 벨트’보다 오히려 제조업 중심지대인 ‘러스트 벨트(rust belt)’의 노동자를 더 의식했을 수도 있다. 백악관 참모들은 대중 강경 방침이 내년 대선 때 펜실베이니아, 위스콘신, 미시간 등 러스트 벨트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제조업체들 태반이 중국으로 공장을 이전한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 주장대로 미국 기업들이 본국으로 돌아오게 만들려면 대중 관세 인상도 나쁠 게 없다는 것이다. 무역 갈등으로 인해 해당 지역도 단기에는 피해를 입겠지만, 트럼프 행정부 들어 호황인 이 지역들의 경기가 완전히 가라앉을 만큼 심각하지 않으리라는 낙관론을 깔고 있다. 러스트 벨트는 트럼프 대통령이 내년 대선에서 재선하려면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지역이다.

문제는 미·중 무역 갈등이 단기간에 해소되지 않고 양측의 보복전이 확대되면서 장기전으로 가는 경우다. 일반 소비자들까지 큰 피해를 보면서 2020년 대선의 표심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도이치 증권의 토르스텐 슬록 선임 분석가는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와 인터뷰하면서 “앞으로 미국 소비자들이 백화점에 가서 상품 가격이 종전보다 25%(미국이 중국 상품에 부과한 관세율)나 갑자기 오른 것을 발견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이겠는가?”라며, 내년 대선을 겨냥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계산법이 틀릴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정치·경제 부문의 전문가들은 6월 하순 일본 도쿄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를 주목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을 만나 최종 담판을 시도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중 협상이 결렬된 직후 트위터에 “시 주석과 나와의 관계는 아주 훌륭하고, 대화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대중 관세는 향후 협상 결과에 따라 철회될 수도, 안 될 수도 있다”라며 협상 여지를 남겼다.

기자명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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