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차 뒷좌석에는 안경 코받침 하나가 뒹굴고 있었다. 토사물 등 오염을 방지하기 위해 검게 코팅된 시트로 덮인 좌석이 좁게 느껴졌다. 차량 내부용 CCTV가 뒷좌석을 녹화하고 있었다. 투명한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앞좌석에는 경찰관이, 뒷좌석에는 주취자(술에 취한 사람)나 피의자가 탄다.

지난 5월15일도 그런 ‘평범한’ 날로 지나갈 수 있었다.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대림동 경찰관 폭행 사건’이라는 제목의 영상이 올라오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영상이 공개되기 이틀 전인 5월13일 밤 10시, 서울 구로구의 한 술집 앞에서 취객 한 명이 집으로 돌아갈 것을 권유하는 남성 경찰관의 뺨을 때렸다. 해당 경찰관이 제압에 나서자, 이를 지켜보던 다른 취객이 여경을 밀치고 달려들어 남성 경찰관을 끌어냈다. 이 장면을 담은 14초짜리 영상 하나에 온라인은 ‘여경 무용론’으로 들끓었다. 5월17일 구로경찰서는 “여경이 다시 취객을 무릎으로 눌러 체포했으므로 대응이 소극적이었다고 볼 수 없다”라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냈고, 5월21일 민갑룡 경찰청장 역시 “여경의 조치가 적절했다”라는 입장문을 발표했지만, 여론은 가라앉지 않았다.
 

ⓒ시사IN 신선영가정폭력 신고를 접수하고 출동한 홍익지구대 현지나 순경이 현장에서 여성을 구급대원에게 이송하고 있다.

일선 경찰관들은 이 사태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여성 경찰의 근무 환경은 남성 경찰과 정말 다를까. 〈시사IN〉은 5월21~22일 ‘전국에서 제일 바쁜 지구대’로 손꼽히는 서울시 마포경찰서 홍익지구대 소속 여성 경찰과 동행 취재를 했다. 홍익지구대에 접수되는 신고 건수는 하루 평균 108건으로 특히 금·토요일 야간에는 신고 건수가 140~160건을 훌쩍 넘는다. 클럽과 술집이 밀집된 홍익지구대 경찰차 뒷좌석에는 특히 주취자가 자주 탄다.

5월21일 오후 5시, 3팀 소속 손병목 경위와 올해 1월 임용된 ‘막내’ 현지나 순경이 순찰을 위해 41번 순마(경찰차)에 탔다. 홍익지구대에 근무하는 86명은 4개 팀으로 나눠 ‘주간-야간-휴무-비번’ 순서로 돌아간다. 각 팀에 소속된 경찰관 약 20명은 항상 2인1조로 짝을 이뤄 움직인다. 현 순경을 비롯해 홍익지구대에 근무하는 여성 경찰관은 이지은 지구대장을 포함해 총 6명으로 전체 대비 약 6.9%에 불과하다.

입사 5개월차인 현지나 순경은 현장에 나갈 때마다 허리 벨트에 테이저 건(전자 충격 총)과 삼단 봉을 찬다. 아직 실제로 사용해본 적은 없다. 현 순경만이 아니라 경력 28년의 손병목 경위도 마찬가지다. 테이저 건은 한 번도 써본 적이 없고, 삼단 봉도 딱 한 번 꺼내봤다. 무기를 사용했다가 의도했던 바와 달리 피의자가 다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시사IN 신선영손님과 종업원 간 싸움이 벌어졌다는 신고를 받고 홍대입구역 인근 의류 매장으로 출동한 현지나 순경이 현장을 조사하고 있다.

반대로 경찰관이 폭행당하는 경우는 셀 수 없이 많다. 손 경위도 현장에서 부지기수로 정강이를 걷어차인다. 하지만 일일이 공무집행방해죄로 입건하기는 불가능하다. 2017년 11월 경찰청이 발표한 ‘주취폭력 및 공무집행방해 사범 특별단속 결과’에 따르면 2017년 9월11일부터 10월31일까지 51일 동안 특별단속 기간에만 1800건의 경찰 공무집행방해 신고가 접수됐다.

주목할 점은 공무집행방해 사범의 74.4%가 주취자라는 사실이다. 손 경위는 술에 취한 사람 한 명당 최소한 경찰관 두 명이 붙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한 명이 주취자를 제압하는 동안 다른 한 명이 수갑을 채워야 한다. 그만큼 주취자 제압이 쉽지 않다는 뜻이다. 손 경위는 대림동 사건을 예로 들며 “나도 주취자가 밀면 밀릴 수밖에 없다.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내가 되밀면 그 사람이 넘어져 다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신선영현지나 순경은 20명 팀원 중에 유일한 여성 경찰이다.

이날 오후 6시30분, ‘전기선이 늘어져 있어서 위험해 보인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휴대폰 대리점의 호객 행위가 심하다’ ‘버스킹 소음이 크다’ ‘길거리에서 누군가 돈을 요구하고 있다’ 등 경찰차 내비게이션에 떠 있는 사건들은 대개 민원성 업무였다. 막상 현장에 도착해보니 늘어진 줄은 전기선이 아니라 케이블 선이었다. 현 순경이 골목에서 차를 빼는 사이 손 경위가 케이블 선을 주변 전봇대에 둘러 묶으며 말했다. “경찰에 신고된 10건 중에 7~8건은 상담으로 상황을 중재하거나 이런 민원을 해결하는 일이다.” ‘상담 스타일’은 개인마다 다르다. 현 순경은 “남경 중에서도 부드럽게 하시는 분이 있고 여경 중에서도 강하게 나가시는 분이 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지만, 나는 강하게 하는 편이다”라며 웃음을 지었다.

다음 날인 5월22일 저녁 7시30분, 야간 근무를 맡은 3팀 경찰관들이 속속 모였다. 10분 남짓한 ‘석회(저녁 회의)’가 끝나고 출동 준비로 지구대가 분주해졌다. 현 순경은 주간 근무를 마치고 들어온 김지현 경위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다른 팀이더라도 여성 동료를 보면 반갑고 편하다고 했다. 손병목 경위가 덧붙였다. “여경 비율이 좀 늘어나야 한다. 만약 거꾸로 한 팀에 여성이 19명이고 남성이 1명뿐이라면, 남성도 일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실제 2019년 3월 기준으로 전체 경찰관 12만487명 중 여성 경찰관은 1만3594명으로 11.3%에 불과하다.

출동 준비를 마치자마자 신고가 들어왔다. 옷 가게에서 점원과 손님 사이에 싸움이 일어났다는 내용이었다. 가는 도중 현 순경이 신고자인 건물 관리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현 순경은 ‘119 구급차량이 필요한 상황이냐’고 묻는 등 사건의 자초지종을 파악했다.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현 순경은 옷 가게 점원을, 함께 출동한 류정안 경위는 옷 가게 손님을 서로 멀찍이 떨어진 곳으로 데리고 가서 각자의 이야기를 들었다. 피의자들이 언성을 높이거나 상대방 쪽으로 다가갈 때마다 현 순경은 앞을 막아서며 더 큰 목소리로 “선생님, (제 말씀을) 들어보세요”라며 진정시켰다. 현 순경은 양측에게 임의동행 시 피의자가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고지한 뒤 지구대까지 함께 동행했다. 지구대에서 진술서를 작성하고 마포경찰서로 사건을 인계하는 작업이 계속됐다. 한 사건이 마무리되기까지 약 2시간이 걸렸다.

잠시 쉬면서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현 순경이 갑자기 무전기에 귀를 가까이 댔다. “41?” 현 순경과 류 경위가 그날 배정받은 순마 번호가 41번이었다. 이번에는 가정폭력 신고였다.
 

ⓒ시사IN 신선영
사건 당사자들을 지구대로 데려와 조서를 작성하고 있다.

주택가에 도착하자 집 밖에서도 여성의 울음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현 순경과 류 경위가 뛰어 들어갔다. 현 순경이 남성을 데리고 나와 10여 분 동안 이야기를 듣고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여성이 요청한 119 구급차도 곧 도착했다. 현 순경과 류 경위는 한 시간 동안 여성의 이야기를 듣고, 상황을 진정시켜 구급차에 태워 보냈다. 자정이 다 된 시각, 지구대로 돌아오는 경찰차 안에서 류 경위가 “(여성 분) 사연이 참 안됐다”라며 마음 아파했다. 현 순경은 가정폭력을 신고한 여성의 경우 여경에게 마음을 더 잘 여느냐는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이번에는 나이가 비슷한 류 경위님과 대화가 더 잘 통했다. 류 경위님도 가정이 있기 때문에 더 잘 이해하시는 듯했다. 성별이 중요한 게 아니라, 민원인이나 피해자가 해당 경찰관과 얼마나 비슷한 공통분모를 찾아내느냐에 따라 다르다”라고 말했다.

“여경·남경 따질 문제가 아니다”

류 경위도 경찰 업무를 여경과 남경으로 나눠서 보는 것은 편견이라고 지적했다. 류 경위는 대림동 사건에 대해 “현장에서 주취자를 다루는 일은 예측할 수가 없다. 주취자가 밀면 누구나 밀릴 수 있다. 여경·남경을 나눠 따질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경찰관을 폭행하는 주취자와, 주취자를 단호하게 제압할 수 없는 업무 환경에 대한 문제 제기 대신 엉뚱한 ‘여경 무용론’이 번지고 있는 상황을 누구보다 안타까워하는 건 일선 경찰관들이었다.

기자명 나경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did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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