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엠넷의 〈프로듀스 101〉 새 시즌이 한창이다. 101명의 연습생이 열한 개의 데뷔 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 중이다. 누가 춤을 잘 추나, 노래를 잘하나, 랩을 잘하나 등 분야를 나눠 자기 특기를 뽐낸다. 각자 나름의 강점을 내세우고 있지만, 그 많은 사람 중에서도 이 모두를 다 잘하는 이는 흔치 않다. 그만큼 전천후
댄스 가수란 드문 재능이다.

전천후 댄스 가수라 하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바로 채리나다. 채리나는 ‘춤·노래·랩 다 되는 아이돌’의 원조 격이다. 그는 1995년 열일곱 살의 나이로 당시 큰 인기를 얻고 있던 댄스 그룹 룰라에 합류했다. 룰라에는 이미 김지현이라는 걸출한 스타성을 가진 여성 멤버가 존재했지만, 채리나의 매력은 댄스 그룹 룰라를 완성시켰다. 안무를 추는 멤버 세 명 중에 센터로 선 그는 도무지 신인으로는 보이지 않는 춤 실력을 보여주며 속된 말로 ‘무대를 씹어먹었다’. 힘과 유연함, 그루브를 모두 갖춘 그의 춤은 지금 보아도 그만큼 추는 가수를 찾기 힘들 만큼 탁월하다. 요즘 아이돌처럼 연습생 기간을 거치지도 않았다. 그저 춤을 기가 막히게 잘 춘다는 이유로 발탁된 그는 일명 ‘엉덩이춤’을 만들어 전국을 ‘날개 없는 천사’로 들썩이게 만들었고, 이 곡이 수록된 2집은 167만 장을 팔기도 했다.


ⓒ시사IN 양한모

그가 뛰어난 것은 춤뿐만이 아니었다. 댄스 가수 중에 손에 꼽히는 가창력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춤 실력이 너무 탁월해 노래 실력이 가려진 경우다. 약간의 허스키함이 특징인 그의 음색은 룰라가 부르는 업비트의 댄스 음악에 잘 어울렸다. 음역대가 넓고, 음감이 정확하며, 성량도 좋다. 김지현의 탈퇴 후 5집에서는 메인 보컬을 맡기도 했다. “바보 바보 바보야”라는 도입부로 유명한 ‘연인’은 고음으로 시작해 후렴구로 갈수록 더욱 가파르게 높아지는 곡인데, 채리나는 이 곡을 라이브로도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그는 실은 랩도 잘한다. 디바 시절 노래를 들으면 확실히 알 수 있다. 그는 ‘걸스힙합’에 관심이 많았고, 특히 미국의 알앤비 힙합 그룹 TLC를 좋아했다고 한다. 룰라 해체 후 솔로 제의를 받았지만, TLC 같은 그룹을 만들고 싶어서 기회를 마다했다. ‘왜 불러’ 같은 유명곡도 좋지만, 싱어송라이터 윤건(당시에는 양창익이라는 이름을 썼다)에게 받은 뉴잭스윙 힙합곡 ‘그래’ ‘Joy’ ‘좋아하면 다 그래’ 등에서는 세련된 1990년대 감성을 훌륭하게 표현했다. 아크로바틱 안무를 소화하며 숨 한번 헐떡이지 않고 정확한 딕션(발음)으로 빠른 랩을 쏟아내는 그의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유튜브에서 룰라와 디바를 검색해보면 ‘어릴 때는 몰랐는데 지금 보니 채리나의 실력이 대단하다’는 댓글로 가득하다. 그룹 해체, 사망자가 발생한 피습 사건 목격 등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어온 그이지만, 1990년대를 살아온 사람들은 아직도 전천후 퍼포머 채리나를 기억한다. 실력이 곧 카리스마가 된 가수다. 댄스 가수를 꿈꾸는 사람들이 많은 요즘 같은 때에, 채리나는 무대 위의 카리스마를 배우고 싶은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참고할 만한 멋진 여성 롤모델이다.

기자명 랜디 서 (대중음악 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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