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보건기구(WHO)가 정했다. 오는 2022년부터 게임중독과 관련된 질병이 새로 생긴다. WHO는 지난 5월25일 개최한 제72회 총회에서 ‘국제질병분류(ICD) 기준안’을 개정했다. 제11차 개정판이다. 이 개정안에 ‘게임이용장애(gaming disorder)’라는 새로운 ‘질병코드’가 추가됐다. 의사가 “게임이용장애에 걸렸다”라고 진단한 환자는 건강보험을 적용받게 된다.

한국의 게임업계와 관련 학계는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려 비판 성명서를 냈다. 검증되지 않은 연구를 토대로 게임을 매도해 산업을 위축시킨다는 것이다. 정부 안에서도 파열음이 나왔다. 보건복지부는 국내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한 반면 문화체육관광부는 반대 의사를 드러냈다. WHO의 ‘국제질병분류 제11차 개정판(ICD-11)’에 대한 논란을 정리한다.

5월29일 열린 ‘게임 질병코드 도입 반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출범식.
‘게임이용장애’와 ‘게임중독’의 개념적 차이는?

지난 5월30일 기자간담회에서 김강립 보건복지부 차관은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할 만한 필요성이 국제적으로 인정됐다”라고 말했다. ‘게임 질병코드 도입 반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격하게 반발했다. 성명서에서 “(김 차관이)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를 게임중독과 동일한 단어로 인식하고 있”는데, “‘게임중독’이란 단어”는 “WHO조차 사용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WHO는 ‘중독’이란 용어를 실제로 사용한다. ICD-11 원문에 따르면, 게임이용장애는 ‘중독성 행동(addictive behaviours)으로 인한 장애’로 분류된다. ‘통제 불능’, ‘(다른 생활보다 게임에) 우선순위 부여’ 등의 기준에서 일정 수준을 모두 넘어서면 ‘장애’라는 의미다.

다만 WHO의 ‘장애(disorder)’나 ‘질병(disease)’ 같은 단어는 의학용어라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WHO가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정했다’는 이야기를 곡해로 볼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게임중독이 마약중독처럼 치명적이다’라는 의미는 아니다. WHO가 ‘어떤 증상이 질병인지’ 여부를 ‘건강에 치명적인 정도’에 따라 분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ICD-11은 수면장애, 섭식장애 등도 질병코드에 집어넣고 있다. ‘게임이 마약과 같다는 말인가’라는 비판은 비약이다. 이 비약은 ‘게임은 마약이 아니므로 게임이용장애라는 질병도 없다’라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게임은 문화다. 수출 효자 상품이기도 하다.

사실이다. 의료계에서도 이런 주장에 토를 달지는 않는다. 한국콘텐츠진흥원(한콘진)에 따르면, 지난해 게임산업 수출액은 42억3000만 달러(약 4조9800억원)에 이른다. e스포츠 등 고유하고 독특한 문화의 근원이기도 하다. 하지만 ‘게임에 순기능이 있다’라는 사실로부터 ‘게임이용장애를 질병으로 분류해서는 안 된다’라는 결론을 이끌어낼 수는 없다. WHO와 의료계 전반은 거의 일관되게 ‘게임의 본질이 무엇이든, 질병의 수준까지 오남용하는 케이스가 발견된다’라는 입장을 갖고 있다.

스마트폰이나 넷플릭스, 유튜브는 어떤가? 유독 게임이용장애만 질병코드에 포함된 건 편견에 따른 ‘게임 죽이기’ 아닌가?

WHO 같은 국제기구가 어떤 증상을 질병으로 규정하려면 관련 연구를 축적해야 한다. 돈·인력·시간이 드는 일이다. 게임중독 논의는 역사가 길다. 2000년대 초엽부터 진행되었다. 이에 비해 스마트폰이나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중독에 대한 논의는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는다. 실제로 ‘스마트폰 역시 조만간 질병코드를 적용받게 될 것’이라고 예측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그들이 ICD-11에 찬성하든 반대하든 불문하고 말이다.

이런 흐름을 ‘디지털 매체에 대한 과잉통제’라고만 보기도 어렵다. 다른 부문에서도 질병으로 규정되는 증상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WHO가 이번 개정 때까지 질병으로 분류한 코드는 1만4000여 개였다. 이번 ICD-11에서는 그 수가 5만5000여 개로 늘었다. 의학 발전과 사회 변화에 따라 새로운 증상이 나타나거나 기존 증상들을 새롭게 질병으로 규정하는 것은 사실 자연스러운 일이다. 디지털 분야는 이런 추세의 일부일 뿐이다.

연구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WHO가 급히 등재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국내 의료계에서 주도했다는 말도 있다.

ICD-11 개정 작업은 2005년 시작됐고, 게임이용장애가 포함된 최종판은 만장일치로 의결됐다. 지난해 7월 타릭 자세레빅 WHO 대변인은 게임 매체 〈인벤〉과 인터뷰에서 “세계 각국에서 지속적으로 제기하는 치료 필요성, ICD-11의 엄격한 발전 과정을 뒷받침하는 수백, 수천 권의 과학 출판물이 있다”라고 말했다. 전통적으로 연구가 가장 활발한 곳은 한국과 중국 등 아시아권이지만, 미국 정신의학협회 역시 2013년 정신질환진단 편람 ‘추가 연구 요망’ 항목에 ‘인터넷 게임장애’를 넣었다. 독일에서도 관련 논의가 활발하다. 게임이용장애가 질병코드로 분류된 것은, 오랜 기간 글로벌 차원에서 축적된 공식적 학술 연구의 결과다. ‘한국 의료계가 주도했다’라고 하기엔 근거가 부족하다는 이야기다.

다만 WHO가 보건·의료 부문 이외 조직들의 의견 개진에 매우 냉소적인 것은 사실인 듯하다. WHO 내부 사정에 밝은 한 의료계 관계자는 “지난 4월 문체부와 한콘진이 반대 의견서를 보냈는데, WHO 관계자들은 사실상 읽어보지도 않은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국제기구인 WHO의 결정을 두고 정부 부처들이 갈등을 빚은 까닭은?

무엇보다 예산이 걸려 있다. 게임이용장애가 질병인지 여부에 따라 사업 주무부처가 달라질 수도 있다. 현재 게임 관련 예산은 문체부와 산하의 한콘진으로 간다. 2019년 게임 예산은 612억원으로 지난해보다 57억원 늘었다. 이에 더해 사업 상당 부분이 게임과 겹치는 가상현실(VR) 콘텐츠 육성 예산도 261억원이다. 게임이용장애의 질병코드화가 국내에 도입된다면 게임산업을 육성할 명분이 약해진다. 이 예산도 온전히 보전되기 어렵다.

반면 보건복지부는 게임중독 예방, 치료, 통계 관련 사업을 가져갈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지난 몇 년간 문체부와 복지부는 각각 예산을 들여 게임중독 관련 연구용역을 여러 학자들에게 맡겨왔다. 연구 결론은 대체로 위탁 부처의 이해관계에 맞춰서 나온다.

내년부터 한국에서도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취급해서 치료한다거나 의료보장을 받게 되나?

그렇지 않다. WHO가 게임이용장애를 질병으로 분류했다고 한국에서도 곧바로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국내 병원에서 게임이용장애가 질병으로 통용되려면 5년 주기로 개정하는 ‘한국판 ICD’인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부터 바꿔야 한다. 다음 개정은 2020년인데, 담당 부처인 통계청 관계자는 “개정 작업이 3년은 걸리기에 빨라도 2025년 개정 때에나 등재 여부가 정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질병 가짓수가 워낙 늘어났기 때문에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게임업계가 가장 주시하는 곳은 국회다. WHO 조치에 따라 게임산업에 주목도가 높아지면 국회가 규제 법안을 도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기업 측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게임중독세’다. 2013년 손인춘 전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이 법안은, 게임사가 연간 매출 1%를 ‘게임중독 치유 부담금’으로 내놓도록 정했다.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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