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9일 강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5월7일 한·미 정상 간 통화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방한을 요청했다는 내용이었다. 문 대통령의 요청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귀로(歸路)에 잠깐 들르는 방식으로 충분할 것 같다. 일정이 바빠 즉시 떠나야 한다”라고 답했다고 했다. 문제는 이 정보가 청와대 발표에는 포함되지 않은 기밀 사항이라는 점이다. 3급 국가 기밀이었다. 3급 국가 기밀은 ‘누설될 경우 국가 안전보장에 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비밀’이다. 강 의원은 이 정보의 출처가 ‘미국 외교 소식통’이라고 밝혔다. 청와대와 외교부가 특별 감찰에 나섰다.
의회 담당인 ㄱ 참사관은 이 기밀문서의 열람 권한이 없었다. ㄱ 참사관이 이 문서를 보기 위해서는 적어도 20일 전에 소속 기관장의 허락을 받았어야 한다. 그러나 이번에 유출된 한·미 정상 간 통화 내용은 복잡한 절차 없이 강효상 의원에게 흘러 들어갔다. 외교부의 보안 문제가 함께 제기된 것도 이 때문이다.
자유한국당은 당초 ㄱ 참사관의 정보 제공을 일종의 공익 제보로 규정지었다. 5월23일 나경원 원내대표는 “이 정권의 굴욕 외교와 국민 선동의 실체를 일깨워준 공익 제보 성격이 강하다”라고 말했다. 이때 동원된 것이 ‘알 권리’다. 문재인 정부가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방한을 요청했으나 결과적으로 거절당한 맥락에 대해 국민들이 알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알 권리와 공익 제보 모두 정보를 유출한 당사자가 부인하면서 셈법이 복잡해졌다.
자유한국당, 여론 지지 얻기 쉽지 않아
이 통화에서 강 의원이 트럼프 대통령의 5월 방한 가능성에 대해 추가로 물었고, ㄱ 참사관은 답변하는 과정에서 실수로 한·미 정상 통화 녹취록에 있던 일부 표현을 그대로 말하게 됐다고 주장한다. ㄱ 참사관 측은 “국회의원에게 외교부 정책을 정확히 알리는 것도 외교관의 업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설명은 국회의원의 정책 이해도를 높이기 위한 것일 뿐이었다. 잘못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의도를 가지고 강효상 의원에게 비밀을 누설한 것은 아니라는 점만 알아줬으면 한다”라고 덧붙였다. 공익적 내부 고발이라는 강 의원의 주장과 “의도가 없이 그랬다고는 보기 어렵다”라고 말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5월25일 발언을 동시에 반박하는 내용이다.
외교부는 ㄱ 참사관의 강 의원에 대한 정보 유출이 이번만이 아니라 여러 차례 있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5월28일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외교안보통일자문회의에 참석한 조세영 외교부 1차관은 현재 확인된 5월 통화 내용 유출 외에도 추가로 기밀이 유출됐다고 밝혔다. 지난 3월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보좌관을 만나려 했으나 결국 무산됐다는 내용, 4월의 한·미 정상회담 형식에 관한 한·미 간 실무협의 내용 등이었다. 외교부는 새로 논란이 된 두 건을 포함해 총 세 건에 대해 강효상 의원을 검찰에 고발했다.
ㄱ 참사관은 외교부의 추가 의혹을 부인한다. ㄱ 참사관의 변호인은 5월29일 〈시사IN〉과의 통화에서 “(귀국 후) 외교부 조사에서도 ㄱ 참사관은 5월8일 한·미 정상 간 통화 내용을 유출한 것은 잘못이라고 인정했지만, 그 외에는 강효상 의원에게 기밀을 유출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라고 설명했다. 5월30일 진행된 외교부 징계위원회에서도 ㄱ 참사관이 인정한 내용에 대해서만 책임을 물었다. 이날 징계위원회에서 ㄱ 참사관은 최고 수위 중징계인 ‘파면’ 처분을 받았다. 공무원 신분에서 제외되는 것은 물론 퇴직급여도 절반으로 삭감되며 추후 5년 동안 공무원에 임명될 수 없다. ㄱ 참사관에게 녹취록을 건네준 다른 직원은 감봉 처분을 받았으며, ㄱ 참사관에 대한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공사(고위공무원)는 중앙 징계위에 회부되었다.
5월29일 문재인 대통령은 자유한국당을 겨냥해 “정상 간 통화까지 정쟁의 소재로 삼고, 이를 국민의 알 권리라거나 공익 제보라는 식으로 두둔하고 비호하는 정당의 행태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라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자유한국당은 곧바로 의원총회를 열었다. 강 의원은 의원총회에서 “정부·여당의 탄압에 앞으로도 당당하고 단호하게 대처하겠다”라고 말했고, 나경원 원내대표도 “강 의원 고발은 야당에 재갈 물리기와 정치 탄압”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자유한국당이 여론의 지원을 얻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012년과 2013년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과 국가정보원은 2007년 남북 정상회담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 포기 발언’을 했다며 논란을 만들고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을 공개하는 등 외교 기밀을 활용했다. 외교안보 분야 기밀을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공개해버린 선례가 우리에게는 이미 ‘흑역사’로 남아 있다. 이번 사건 역시 장기적으로 우리 외교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문제다. ‘한국은 외교 기밀도 못 지키는 나라’라는 오명을 두고두고 감수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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