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몸에서 가장 큰 근육은 무엇일까요? 바로 엉덩이에 붙어 있는 볼기근(Gluteus)입니다. 볼기근은 큰볼기근, 중간볼기근, 작은볼기근으로 나뉘며, 큰볼기근은 인간에게만 큽니다. 다른 동물들의 볼기근은 그다지 큰 근육이 아닙니다. 인류의 진화 역사 속에서 큰볼기근(Gluteus Maximus)이 커지게 된 배경은 아직 수수께끼입니다(여기서 잠깐 보충 설명이 필요합니다. 성인, 특히 성인 여성의 도톰한 엉덩이는 볼기근보다는 엉덩이 부위에 쌓인 피하지방층 때문입니다. 피하지방층에 가려져서 볼기근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보디빌딩 대회 출전을 준비하는 보디빌더의 볼기근은 잘 보입니다).

볼기근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서는 그 생김새부터 살펴봐야 합니다. 볼기근은 엉덩관절을 중심으로 골반과 넙다리뼈를 연결합니다. 몸통의 뒷부분인 등허리에서 시작해 허벅지 바깥쪽에서 끝나는 볼기근은 다리를 움직이기에는 합당하지 않습니다. 볼기근이 수축해봤자 다리는 몸 뒤쪽-몸 바깥쪽으로 벌려집니다. 움직임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근육을 인간만이 왜 가장 크게 키웠을까요?

걷거나 뛸 때 넙다리뼈를 움직이는 근육은 볼기근이 아닌 허벅지 근육입니다. 동물들은 넙다리뼈를 움직여서 앞으로 나아가는 추진력을 얻습니다. 허벅지 앞쪽의 근육이 수축하면서 다리가 앞으로 나아가고 뒤쪽의 근육이 수축하면서 다리가 뒤로 당겨짐과 동시에 몸은 앞으로 튕겨 나갑니다. 허벅지 근육은 잘 뛰는 동물들에서 크게 발달해 있습니다. 달리는 말을 보면 허벅지의 움직임이 생생하게 드러납니다.
 

ⓒEPA인류는 두 발로 걷고 뛰기 시작하면서 볼기근이 커졌다.


두 발로 걷는 인간은 걸을 때 허벅지 근육에 의지해서 앞으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두 발 걷기는 허벅지 근육보다 중력과 관성에 의지합니다. 앞서 땅을 디딘 다리가 뒤로 가고, 뒤로 갔던 다리가 앞으로 오는 움직임은 시계의 추와 비슷합니다. 알맞은 걸음 속도만 유지하면 중력과 관성을 이용해서 큰 힘을 들이지 않고 걸을 수 있습니다. 인간의 두 발 걷기는 좋게 말하면 에너지 효율성이 뛰어나고, 바꿔 말하면 한없이 게으른 방법입니다. 인류는 허벅지 근육에 크게 의지하지 않고도, 에너지를 별로 쓰지 않고도 얼마든지 걷도록 진화했습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추진력을 해결한 인류가 두 발로 걸으면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따로 있었습니다. 한쪽 발로 체중을 지탱하면서 생기는 균형의 문제입니다. 한쪽 발로 체중을 지탱할 뿐 아니라, 한쪽 발에서 다른 쪽 발로 체중을 옮길 때 균형을 유지하면서 옮겨야 합니다. 균형을 잡지 못하면 뒤뚱뒤뚱하게 되고 에너지를 낭비하게 됩니다. 뒤뚱거리다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뒤쫓아 오는 맹수에게 목숨을 내어주게 됩니다. 맹수가 뒤쫓아 오지 않더라도 넘어지면 크게 다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갓 걸음마를 시작한 아기 시절부터 어른이 된 이후까지도 걷다가 넘어질 때가 종종 있습니다. 네 발로 걷는 다른 동물들은 갓 태어났거나, 생명이 위독해서 쓰러지지 않는 한 넘어지지 않습니다.

이렇듯 중요한 균형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골반이 달라졌습니다. 사람이 아닌 유인원의 경우 부채꼴을 한 골반의 엉덩뼈가 뒤를 향하고 있지만, 사람의 엉덩뼈는 옆을 향합니다. 그리고 옆을 향하는 엉덩뼈와 넙다리뼈의 옆쪽을 이어주는 근육이 커져서 한 발로 지탱될 때에도 몸통이 흔들리지 않도록 몸통의 양옆을 튼튼하게 잡아줍니다. 이 중요한 기능을 하는 근육이 바로 볼기근입니다.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한 인간의 걷기

인간의 두 발 걷기는 골반뿐 아니라 무릎의 모양도 바꾸었습니다. 한 발짝 내디딜 때마다 온몸의 체중은 한쪽 무릎으로 전달되면서 무릎은 편평하고 튼튼해졌습니다. 엄지발가락도 달라졌습니다. 영장류의 엄지발가락은 엄지손가락처럼 생겼습니다. 엄지손가락처럼 두 마디만 있는 엄지발가락은 세 마디가 있는 다른 네 발가락보다 작습니다. 회전이 가능해서 다른 발가락과 맞닿을 수 있습니다. 철봉을 잡듯이 나뭇가지를 잡고 나무 위에서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지요. 영장류에는 네 개의 발이 아니라 네 개의 손이 있는 셈입니다. 그렇지만 인간의 엄지발가락은 엄지손가락같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엄지손가락처럼 두 마디만 가지고 있지만 세 마디를 가진 다른 발가락보다도 훨씬 큽니다. 다른 발가락과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고 회전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엄지발가락을 돌려서 다른 발가락과 마주 보게 하기는 힘듭니다.

인간은 알맞은 속도로만 걷는다면 아무렇지도 않게 몇 시간이고 걸을 수 있습니다. 다리와 발이 아파서 그만 멈출 때까지 계속 걸을 수 있습니다. 걷기와 달리 뛰기는 쉽지 않습니다. 몇 시간이고 뛸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고, 그나마 열심히 연습해야 가능합니다. 다리와 발이 아파서라기보다는 숨이 차서 더는 뛰기 힘들어집니다. 에너지를 제대로 충당하지 못하기 때문이죠.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의 두개골과 골반뼈(왼쪽). 오른쪽은 침팬지의 두개골과 골반뼈.

 


인간의 두 발 걷기는 에너지를 최소한으로 써서 최대한의 결과를 낼 수 있는 훌륭한 적응 양식입니다. 500만여 년 전에 등장하여 300만여 년 동안 키가 1m 남짓했던 초기 인류는 200만여 년 전부터 180㎝도 쉽게 넘볼 수 있는 크기로 키가 커졌지만, 몸통의 크기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인류의 키는 다리가 길어져서 커졌습니다. 에너지 효율이 높은 두 발 걷기에서 다리가 길어지니까 에너지를 크게 더 쓰지 않고도 성큼성큼 걸어서 커버할 수 있는 지역이 늘어난 것입니다. 긴 다리로 걸으면서 넓은 지역을 차지하게 된 초기 인류는 그 지역의 사냥감을 차지해 동물성 지방과 단백질을 규칙적으로 섭취하면서 얻은 에너지로 두뇌를 점점 키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른 동물들은 두 발로 걷더라도 하늘을 날거나, 헤엄을 치거나,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달리거나, 나무를 능숙하게 탈 수 있습니다. 인간은 두 발 걷기 외에는 달리 움직일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도 성공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큰 그림 속에서 학자들은 볼기근의 수수께끼에 대해 고인류학사 초창기부터 관심을 보였습니다. 19세기 초 고생물학자 퀴비에는 볼기근이 몸통의 균형을 잡기 위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설득력이 있는 가설입니다. 그렇지만 막상 걷고 있는 인간의 근육 활동을 EMG(근전도 검사)로 관찰해보면 볼기근은 잠잠했습니다. 볼기근은 쓸모없이 크기만 한 근육이었을까요?

사람들을 트레드밀에서 뛰게 하고 근육 활동을 분석한 인류학자 대니얼 리버먼은, 볼기근은 걸을 때 잠잠하지만 뛸 때는 활동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혁신적인 가설을 내놓았습니다. 인간의 볼기근이 걸을 때보다 뛸 때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인류의 볼기근이 커지게 된 시점은 본격적인 두 발 걷기를 시작한 400만 년 전이 아니라 본격적인 오래 뛰기를 시작한 200만 년 전이라고 주장합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평범한 볼기근을 가졌지만 호모 에렉투스의 볼기근은 컸다는 이야기입니다.

인류의 뛰기는 걷기만큼 학계에서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걷거나 뛰거나 비슷한 적응일 것이라는 생각이 은연중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류의 뛰기, 특히 오래 뛰기는 인류에게 독특한 행위입니다. 인간의 뛰는 속도는 그다지 빠르지 않습니다. 그 대신 인간은 빠르지 않은 속도로 그 어떤 동물보다 오랜 시간 뛸 수 있습니다. 마음먹으면 마라톤도 할 수 있습니다. 필요하면 뛸 수 있을 만큼 오랜 시간 뛰는 능력은 인류의 진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인류 특유의 사냥 방식을 통한 적응을 가능하게 한 것입니다.

다시 약해지는 현대인의 볼기근

채식 위주로 먹던 초기 인류가 동물성 지방과 단백질을 규칙적으로 섭취할 수 있게 된 일은 간단하지 않습니다. 초기 인류는 시속 65㎞의 속도로 힘껏 달리는 영양을 따라 뒤쫓아서 죽일 수 있는, 몸무게 150㎏의 사자와 절대로 경쟁할 수 없습니다. 다른 동물들이 다 먹고 난 동물 사체 중 남은 뼈를 돌로 쳐서 깨뜨리고 그 안에 있는 골수 정도를 먹던 인류가 살아 있는 동물을 규칙적으로 잡게 된 것은 두 발로 걷고 뛰면서 며칠이고 쫓아다니다가 끝내 잡는 ‘스토킹’ 사냥법을 쓰면서부터입니다.

오랫동안 끈질기게 뛸 때 볼기근이 맹활약하면서 몸통의 균형을 잡아줍니다. 끈질기게 뛸 수 있는 능력으로 인류는 사냥을 통해 동물성 지방과 단백질을 규칙적으로 섭취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자는 폭발적인 속도로 뛰어 영양을 뒤쫓아서 잡습니다. 인류는 끈질기게 영양을 뒤쫓아서 결국 영양이 지쳐 쓰러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잡습니다. 이렇게 가장 크고 소중한 근육은 인류를 인류답게 만들어주었습니다.

한쪽 발에서 다른 쪽 발로 옮길 때, 균형을 잡아주기 위해서 인류는 큰 진화적인 변화를 겪었습니다. 몸을 앞으로 돌진시켜줄 수 있는 허벅지를 버리고 바른 자세로 걷고 뛰게 해줄 엉덩이를 선택했습니다. 이로써 인간을 움직이는 동력은 앞으로 나아가는 추진력이 아니라 쓰러지지 않게 잡아주는 균형감이 되었습니다.

현대인의 볼기근은 다시 작고 약해지고 있습니다. 아장아장 걷던 아기가 뛰어노는 어린이가 되면서 엉덩이는 탱탱하고 볼록하게 튀어나옵니다. 10대를 지나고 어른이 되면서 현대인은 하루의 대부분을 앉아서 생활합니다. 앉아서 일하고, 앉아서 먹고, 앉아서 쉽니다. 그리고 누워서 잡니다. 근육은 써야만 그 크기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쓰이지 않는 볼기근은 작고 약해져만 갑니다.

볼기근이 작고 약해졌다는 사실을 알기는 쉽지 않습니다. 특히 여자는 사춘기를 지나 성인이 되면서 성호르몬 에스트로겐의 영향으로 엉덩이 부위에 두툼한 피하지방층이 생깁니다. 그래서 엉덩이가 튀어나와 보입니다. 노년이 되어 호르몬이 줄고 엉덩이 부위의 피하지방층이 빠져나가고 나면 엉덩이 부위가 헛헛하게 됩니다.

볼기근이 빈약하면 균형을 잡기 힘듭니다. 볼기근을 키우기는 쉽지 않습니다. 에너지 효율성이 높은 두 발 걷기 덕분에 인간은 하체가 빈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걸어서 하체의 근육을 단련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걷지 않는 것보다는 걷는 편이 훨씬 건강에 이롭습니다. 그렇지만 중년과 노년을 맞으면서 줄어드는 근육의 양을 보강하려면 따로 근육운동을 해야 합니다. 튼튼한 볼기근은 몸통을 바로잡고 걷는 자세를 좋게 해줍니다. 엉덩이가 실해야 건강하게 장수한다는 옛이야기는 틀린 말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기자명 이상희 (캘리포니아 대학 리버사이드 캠퍼스 인류학과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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