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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 비주류의 성공과 리얼타임 영웅의 탄생

2019년 07월 04일(목) 제615호
배진경 (<포포투> 편집장)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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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전히 새로운 한국 축구 시대가 열렸다. 정정용 감독은 스타 출신이 즐비한 세계에서 비주류가 어떻게 성공하는지 보여주었다. 이강인은 영웅 탄생 설화의 서사를 고스란히 따르는 캐릭터다.

6월9일 새벽, 제주 출장 일정으로 들른 김포공항은 조용했다. 떠나는 이도, 돌아오는 이도, 심지어 게이트 오픈을 대기하던 항공사 직원들까지 숨죽이게 만든 건 운명의 승부차기. 대형 텔레비전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이들은 양 팀의 키커와 골키퍼가 바뀔 때마다 탄식과 함성을 교차하며 ‘어떤 역사’를 목격하는 중이었다. 마침내 세네갈 주장의 마지막 슈팅이 크로스바를 벗어나고, 한국 골문을 지키던 이광연이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환호하며 달려 나왔다. 큰 환호성과 함께 ‘일시정지’ 버튼이 해제된 공항도 그제야 다시 자신의 길을 바삐 가는 사람들로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정정용 감독과 그의 아이들은 미처 몰랐을 것이다. 2주 뒤 ‘어게인 1983’을 초과 달성한 국민 영웅으로 귀국하게 될 줄은.

1983년은 한국 축구사에 기원과도 같은 숫자다. 2012년 런던 올림픽 동메달의 기적 이전에,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전설 이전에, 세계무대 ‘도장 깨기’에 성공한 1983년의 신화가 있었다. 붉은 유니폼을 입은 도깨비 같은 팀의 등장과 그 팀의 돌풍에 외신들이 ‘붉은악마’라는 별명을 달아주었다는 이야기는 오래된 설화 같다. 박종환 감독이 이끈 1983년 4강 신화는 이후 U-20 월드컵에 나서는 모든 팀의 전범이 된 동시에 한국 남자 축구가 넘어야 할 기준점이었다. 그러니 2019 FIFA U-20 월드컵이 열리는 폴란드로 떠나기 전 “어게인 1983”을 외친 정정용 감독의 출사표에 새삼스럽게 흥분하는 이는 없었다.

ⓒ연합뉴스
6월17일 2019 U-20 월드컵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축구대표팀 환영행사에서 선수들이 정정용 감독을 헹가래 치고 있다.
축구 기자들에게도 U-20 월드컵은 크게 주목할 만한 대회는 아니었다. 2년 주기로 열리는 이 대회가 유망주들을 뿜어내는 화수분인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2002년의 신화를 목격했고 유로 대회와 유럽 리그를 비교지표로 삼는 이들에게 이 대회의 상업성이나 흥행성은 크게 와닿지 않았다. 유망주는 유망주일 뿐, 이들 중 A대표팀에서 5년 뒤, 10년 뒤까지 활약상이 이어지는 선수도 많지 않다. 스포츠를 다루는 미디어는 대체로 앞서서 열광하는 속성이 있다. 그리고 가장 먼저 식어버린다.

폴란드로 향하는 이 팀에 ‘슛돌이’가 있다 한들 화제의 대상이기만 할 뿐, 정말로 ‘초특급 슈퍼울트라’ 파워를 휘둘러 팀을 정상으로 올려놓으리라 기대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U-20 월드컵은 그저 팀 캐릭터와 선수들의 미래상을 그려보는 정도 외에는 크게 의미를 부여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었다. 무엇보다 조 편성부터 핑곗거리가 생겼다. ‘축구력’에서 세계 최고 수준으로 꼽히는 포르투갈과 아르헨티나가 같은 조였다. 애초부터 큰 기대는 않는 게 차라리 속 편했다.

ⓒ연합뉴스
정정용 감독은 대표팀을 소집할 때마다 선수들에게 읽을 책을 갖고 오라고 한다.
정정용을 공부하게 만든 ‘빈약한 이력서’


이제 정정용 감독 이야기를 할 차례다. 기대감이 크지 않았던 팀을 정상으로 끌어올린 원동력은 감독의 리더십 빼고는 설명하기 쉽지 않다. 일단 세상의 반응은 이렇다. ‘어, 잘한 거 알겠고, 축하하고, 그런데… 정정용이라니?’ 아르센 벵거 감독이 떠오른다. 프랑스 출신 아르센 벵거가 일본 J리그를 거쳐 잉글랜드 클럽 아스널의 새 감독으로 부임했을 당시 영국 언론의 헤드라인은 “아르센… 누구라고(Arsen WHO)?”라는 비아냥이었다. 축구에 관심 많은 이들은 익히 알겠지만, 그 이후의 일은 역사가 되었다.

1996년 아스널에 부임한 벵거 감독은 2018년을 끝으로 물러나기까지 22년간 장기 집권하며 리더십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았다. 리그 우승 3회, FA컵 우승 3회 등 영광의 순간을 지휘했고 ‘벵거의 아이들’을 키워냈다.

정 감독은 철저한 비주류에 속한다. 선수 생활부터 주목할 만한 내용이 거의 없다. ‘박주영의 모교 청구고(물론 정정용이 선배다)를 졸업하고 경일대를 거쳐 실업팀 이랜드 푸마에서 5년간 활약하다 부상으로 29세의 젊은 나이에 은퇴함.’ 활자로 옮긴 그의 선수 생활은 이렇듯 단출하다.

성공하는 사람들이 대체로 그렇듯 스포츠에서도 결핍은 성장 동력이 된다. 빈약한 이력서는 정정용을 공부하게 만들었다. 이랜드 시절 명지대 대학원에 진학해 ‘주경야축’을 실행했고, 은퇴 후에는 한양대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거치며 학구열을 불태웠다. 전술적인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지식을 굳은 채로 두지 않고 최신 전술을 익힌다는 점에서 진가가 드러난다.

그는 오랜 시간 선수들의 체력을 키우는 데 공을 들였다. 그 결과 한국 팀의 운영 능력은 후반 활동량과 집중력이 더 올라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별 리그 아르헨티나전과 16강 일본전, 8강 세네갈전 등 결정적인 경기가 그 증거다. 한국이 세계 대회에서 뒷심 부족으로 고민하던 것과 확실히 달라진 점이다.

전술적 유연성도 돋보였다. 이번 대회 한국은 3-5-2 포메이션을 기반으로 그 변형인 3-4-2-1 포메이션과 4-2-3-1 포메이션 등 세 가지 전술을 준비했다. 전술적인 변화가 가장 눈에 띈 경기는 일본전이었다. 전반전에 3-5-2로 나섰다가 점유율에서 밀리자 후반전에 4-4-2로 바꿨다. 이 과정에서 수비수 이지솔을 빼고 윙어 엄원상을 투입하며 공격을 강화하고 속도를 높였다. 점유율을 회복하면서 결정적인 기회까지 만들어내 승리했다.

ⓒ연합뉴스
유럽의 미디어들은 손홍민의 미소와 ‘핸드셰이크’에 큰 관심을 보인다.
같은 포메이션 안에서도 선수 활용법이 달랐다. 조별 리그 첫 경기인 포르투갈전에서 이강인을 중앙 미드필더로 활용하는 3-5-2 포메이션이 실패하자 이강인을 섀도 스트라이커로 전진시키는 유연성도 보였다. 이후 이강인은 장신 공격수 오세훈과 함께 최전방 투톱을 이루거나, 2선에서 공격을 지원하는 역할에 집중할 수 있었다. 결승전에서는 아예 공격적인 중원 구성이 눈에 띄었다.

사실 정정용 감독의 전술적 철학은 ‘선수비 후역습’을 기본으로 한다. 세계 무대에서 한국이 가장 현실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접근법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결승전에서는 승부수를 던졌다. 대회 내내 주전으로 활약했던 수비 성향의 정호진 대신 공격적인 미드필더 김정민과 함께 조영욱, 김세윤을 중원에 배치하는 파격을 보였다. 우크라이나에 패했지만,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승부사로서의 기질이 드러났다.

전술가로서의 치열함이 전부는 아니다. 선수들과 격의 없이 지내는 모습에서 인간미를 보여준다. 최근 훈련에서 족구 게임을 하다 이규혁이 “어이, 정 감독!”을 외치는 영상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선수들은 열이면 열 “배울 점이 많은 좋은 분”이라고 입을 모은다. 귀국 후 공식 환영행사에서 “감독님 헹가래를 꼭 해드리고 싶다”라며 실행에 옮긴 선수들의 마음은 진심을 다한 존경이다.

정정용 감독은 대표팀을 소집할 때마다 선수들에게 “읽을 책을 갖고 오라”고 한 뒤 그 목록을 정리해 공유하기도 한다. 선수가 ‘기능인’으로 뛰는 데 그치지 않고 사고와 교양을 갖춘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전술 노트를 만들어 소집 기간에 팀의 방향성과 운영법을 공유한 것도 이번 대회 성공 요인 중 하나로 꼽혔다. 대한축구협회 기술교육국에서 오래 일해온 차영일 과장은 이를 두고 ‘소프트한 리더십’이라고 정의했다. “감독이 성공하고자 하는 욕심을 드러내는 게 아니라 선수들에게 ‘이 감독을 따르면 내가 성공할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을 갖게 한다.” 대한축구협회의 또 다른 관계자는 정 감독의 성공에 대해 “스타 출신들이 즐비한 이 세계에서 비주류가 어떻게 살아남는지 보여주는 전형이다. 첫째, 실력을 기른다. 둘째, 자기 절제가 강하다. 셋째, 자신의 욕심보다 타인의 성공과 이해관계를 배려한다로 요약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정정용 감독은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
이강인 선수는 2019 U-20 월드컵에서 대회 최우수 선수에게 수여하는 골든볼을 받았다.
한국 팀의 성공을 논하는 데 이강인을 빼놓을 수 없다. 만 18세로 U-20 월드컵에 참가한 이강인은 대회 참가팀을 통틀어서 가장 어린 축에 속한다. 마지막 경기까지 살아남은 팀의 공격을 이끌었고, 2골 4도움을 기록했다. 한국의 9득점 중 그의 지분이 67%인 셈이다. 그렇지만 세상이 이강인에게 환호하는 건 공격 포인트 같은 기록 때문만은 아니다.

이강인은 대회 내내 상대 진영을 자유로이 넘나들며 키 패스를 보내고 정확한 크로스로 수차례 상대 수비에 균열을 일으켰다. 이강인을 향한 상대의 견제도 심해졌다. 때론 네 명이 에워싸는 상황도 생겼다. 이강인은 유유히 ‘탈압박’ 기술을 선보이며 역습을 주도했다. 마르세유 턴을 자유로이, 수차례 구사하는 한국 선수를 보는 건 확실히 이색적이었다. 무엇보다 패스의 세기와 방향을 완벽하게 조절하는 능력이 돋보였다. 유럽 선수들에게서 흔히 보던 능력이다. 김재성 스포티비 해설위원은 “동료 발밑에 정확하게 보내주는 패스는 발목 힘이 필요하다. 또래들 사이에서도 그 힘이 강해 보인다. 공간으로 전달하는 패스는 두세 수를 먼저 보는 시야가 확보되어야 한다. 이강인은 월등한 클래스의 선수다”라고 평가했다. 대회 최우수 선수에게 수여하는 ‘골든볼’도 이강인의 몫이었다. 과거 디에고 마라도나부터 리오넬 메시, 세르히오 아구에로, 그리고 폴 포그바 등이 이 상을 받으며 ‘글로벌 스타 탄생’을 예고했다.

이강인, 그토록 염원한 ‘기술’까지 특화

그간 유럽에서 뛰면서 일정 궤도에 오른 우리의 레전드들은 대체로 ‘성실, 근면’의 이미지였다. 차범근은 폭발적인 주력과 결정력 그리고 겸손함으로 독일인들의 사랑을 받았다. 박지성은 많이 뛰는 활동량과 헌신성으로 ‘세계적 명장’ 앨릭스 퍼거슨의 인정을 받았다.

서구에서 아시아인의 정형성으로 평가하던 이런 미덕은 손흥민 시대에 이르러 ‘아시안 쿨(Asian Cool)’이라는 좀 더 근사한 수식어로 바뀌었다. 아시아의 멋 혹은 아시아가 선도하는 트렌드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손흥민은 빠르고 폭발적인 피니셔이자 많이 뛰면서 기회를 열어주는 이타적인 플레이어로 인정받는다. 여기에 그의 능력을 배가시키는 건 인간적인 매력이다. <포포투> 영국판을 비롯해 유럽 미디어들은 손흥민의 미소와 ‘핸드셰이크’에 굉장한 관심을 보인다. 늘 지치도록 뛰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비결과 동료별로 다른 동작을 만드느라 10가지도 넘는 핸드셰이크를 선보이는 그의 친화력이 흥미로워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부디 유튜브에서 손흥민의 핸드셰이크들을 검색해보시라).

이강인은 이 모든 것에 더해 우리가 그토록 염원하던 ‘기술’을 특화한 선수로 등장했다. 이강인은 영웅 탄생 설화의 서사를 고스란히 따른다. 어린 시절 고향을 떠나 세상의 거친 풍파를 뚫고 자란 뒤 극적인 복귀로 등장한다는 전개다. 발렌시아에서 일찌감치 입도선매한 재능을 생각하면 ‘고난’ 운운이 비약일 수 있지만, 붉은 유니폼을 입고 자신보다 두세 살 많은 형들을 독려하며 경기를 지배하는 모습은 상식을 깨기에 충분하다.

흥미로운 사실은 온 국민이 마치 영화 <트루먼쇼>를 보듯 그의 성장기를 지켜봐왔다는 점이다. 이강인은 만 여섯 살이던 2007년 KBS <날아라 슛돌이>에 출연해 ‘꼬마 스타’가 되었다. 이를 계기로 2011년 스페인으로 건너가 몇몇 구단에서 입단 테스트를 거친 뒤 발렌시아에서 터를 잡고 자랐다. 이런 성장기가 초 단위로 정보가 공유되는 리얼타임 미디어 시대를 통과했다. 구전이나 텍스트에 의존하지 않고 인터넷과 유튜브를 통해 적극적으로 정보를 취합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요즘 축구를 소비하는 세대는 새벽 시간 해외 축구 관람을 일상화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의 정보를 인터넷의 다양한 플랫폼으로 챙겨 본다. 팬들은 이강인이 유스팀에서 어떤 활약을 했는지, 현재 팀 내 입지가 어떤지, 연습경기에서 그의 패스 구질과 킥의 궤도가 어떠했는지를 논한다. 1군 계약 소식도 실시간으로 접했다. 자신이 취사선택한 정보를 통해 선수에 대한 판단이 완료된 셈이었다. 이강인에게 매겨진 8000만 유로(약 1057억원)의 바이아웃이 얼마나 합당한지 적극적으로 공감을 표할 수 있다. 한국 축구에서 큰 역할을 해줄 거라는 팬들의 기대는 근거 있는 낙관론이었다.

그 해법을 발견한 무대가 2019 U-20 월드컵이다. 심지어 자신보다 두어 살 많은 형들을 독려하고 분위기를 주도했다. 8강전 승부차기를 앞두고 골키퍼 이광연의 얼굴을 붙들고는 “하면 되잖아. 못해?”라는 말로 힘을 실었다. 어리지만 권위가 생긴 그의 모습에 동료들과 팬들은 ‘막내형’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수비수 김현우와 최준은 “외국에서 좋은 선수들이랑 하다가 우리랑 경기하니까 답답해하는 것 같다. 팀에서는 막내지만 형 같다”라고 증언했다.

결승전이 아쉽게 끝난 후 눈물이 나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강인은 이렇게 답했다. “뭐하러 울어요? 전 후회 안 합니다.” 세계무대에서 ‘우리 것을 다 못 보여줬다’는 억울함에 땅을 치고 서럽게 울던 과거의 선배들을 떠올린다면, “후회 없는 놀이 한 판”으로 바뀐 이 세대의 축구가 어떻게 진화할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비주류의 성공 신화와 리얼타임 시대 아이콘의 등장. 완전히 새로운 한국 축구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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