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마을 주민 전부를 소작농으로 부리는 후작 부인 알폰시나(니콜레타 브라스키)가 아들 탄크레디(루카 키코바니)와 함께 인비올라타에 온다. 폐병으로 짐작되는 아들의 요양을 위해서란다. 하지만 지루한 시골 생활에 적응할 생각이 그에겐 없다. 잔꾀를 낸다. 납치된 척 산속에 숨어 엄마의 돈을 받아낸 뒤 도시로 뜨겠다는 계획. 혼자서는 안 된다. 이럴 땐 누굴 부른다고? “라짜로!”
어쩌다 보니 납치 자작극의 공범이 되어버린 우리의 라짜로. 실종신고를 받고 경찰이 출동하던 날, 급히 산에 오른다. 탄크레디에게 가는 길이다. 그런데… 그 길의 끝에서 믿기 힘든 일이 일어난다. 라짜로가 미스터리의 한복판으로 들어가는 사이, 마을에서는 주민 모두의 운명을 뒤바꿀 비밀이 폭로되고, 이때부터 영화는 관객이 전혀 상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내달린다.
이탈리아 영화 〈행복한 라짜로〉를 보고 제일 먼저 떠올린 건 영화 〈기생충〉이었다. 장르도, 이야기도, 표현 방식도 전혀 다른 두 편을 이어붙인 고리는 제72회 칸 영화제. 봉준호 감독에게 황금종려상을 안긴 시상식. 심사위원장이 수상자를 발표하는 순간, 무대 한쪽에서 얼른 눈물을 훔쳐내던 심사위원이 잠시 화제가 된 적 있다. 그가 바로 이 영화의 감독 알리체 로르바케르이다. 〈행복한 라짜로〉로 지난해 칸 영화제 각본상을 받고 올해 심사위원으로 불려온 서른아홉 살 젊은 감독. 그는 왜 눈물까지 훔쳤을까?
〈기생충〉의 공간과 〈행복한 라짜로〉의 시간
아직 말하지 않은 영화의 나머지 절반에 답이 있다. 〈기생충〉과 전혀 다른 영화이지만, 결국엔 〈기생충〉과 전혀 다르지 않은 영화로 기억하게 만드는 후반전. 〈기생충〉이 ‘공간’을 활용해 우리 시대의 본질을 꿰뚫는다면, 〈행복한 라짜로〉가 움켜쥔 무기는 ‘시간’이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지만, 누구에게도 공평한 삶의 결과를 만들어주는 법이 없는 그것, 시간. 그것으로 이야기를 비트는 감독의 솜씨가 매우 비범하다. 슬프고 서글프며 또한 성스러운 이 영화에 나는 완전히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피카소가 그랬다. “예술은 우리가 진실을 깨닫게 하는 거짓말”이라고. 〈행복한 라짜로〉는 ‘우리의 황폐한 진실을 깨닫게 하는 아주 세련된 거짓말’이다. 〈기생충〉이 수상자로 불릴 때 알리체 로르바케르 감독이 남몰래 훔쳐낸 눈물. 그건 어쩌면, ‘진실을 발설하는 거짓말쟁이’끼리의 연대감 같은 게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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