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나의 옛날을 살고 나는 당신의 훗날을 살고윤병무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有日(유일)하게 사직할 수 없는 당신에게.”

조사 하나에 풍경이 달라진다. 윤병무 시인의 시 ‘뒷모습’의 첫 연은 이렇다. ‘당신이 그리워할 때마다/ 내 마음은 닳아요.’ ‘당신을 그리워할 때마다’라고 썼다면, 무심코 지나쳤을 듯하다. 조사 하나의 차이가 그 시 구절을 더 들여다보게 만들었다. 장정일 소설가는 지난 독서일기에서 시맹(詩盲)에서 탈출하는 두 가지 방법을 인용·소개했다(〈시사IN〉 제615호 ‘당신은 왜 시를 읽는가’ 참조). ‘특정 종류의 시가 나와 공명한다는 사실’(마이클랜 피트렐라)을 빨리 알아채는 것. 그리고 시집은 한번 읽고 마는 것이 아니라 ‘확실히 책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읽는 것(대니얼 핸들러). 19년 전에 출간된, 시인의 첫 시집 〈5분의 추억〉이 나에겐 잘 맞았다.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은유 지음, 돌베개 펴냄

“반항하는 것도 사회적 지위나 용기가 필요한 것 같아요.”

20년 가까이 공고에서 학생들을 가르쳐온 장윤호 선생님은 담담하게 말했다. “요즘은 성적이 가정경제하고 거의 비례한다”라고. ‘걔네들은 다 잘하고 얘네들은 다 못하는’ 와중에 영양 상태마저 정확하게 양극화된다. ‘얼떨결에’ 전국특성화고졸업생노동조합 위원장을 맡은 이은아씨가 학교에서 배운 건 체념과 단념이었다. “고등학교 졸업하면 위험한 일을 하게 되고 사고당하고 그럴 수 있지. 억울한 마음은 들지만….”지하철을 고치고, 자동차를 만들고, 콜센터에서 전화를 받는 등 모든 일상 영역에는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이 흔적으로 남아 있다. 저자는 2014년 숨진 특성화고 졸업생 김동준 군을 통해 존엄한 노동의 가능성을 세상에 묻는다.

붕괴애덤 투즈 지음, 우진하 옮김, 아카넷 펴냄

“이날 전 세계 글로벌 화폐시장들이 멈춰 섰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년의 세계사를 총체적으로 정리했다. 금융위기가 그 진앙인 미국과 유럽에서 중국과 러시아, 신흥 시장국가에 이르기까지 전 지구적 규모로 확산된 경과는 물론이고 위기 대응의 과정 및 방법론까지 글로벌과 지역적 차원 모두에서 꼼꼼하고 쉽게 서술했다. 다만 위기의 금융적 측면만 다루지 않았다는 데 이 책의 미덕이 있다. 우크라이나 위기, 브렉시트 국민투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등 세계 정치적 사건들을 금융 부문과의 관련 속에서 유려하게 풀어낸다. 국제기구와 선진국 중앙은행들, 각국 정상 등 권력의 최상층부에서 진행된 논의와 맥락을 에피소드와 함께 보따리 풀듯 전달해주는 입담이 놀랍다.

모든 시작의 역사
위르겐 카우베 지음, 안인희 옮김, 김영사 펴냄

“원숭이는 더 멀리 내다보려고 똑바로 일어섰던 것이 아니다.”

시작의 역사는 오류의 역사다. 원숭이는 더 멀리 내다보려고 똑바로 일어섰던 것이 아니고,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말을 시작한 것이 아니고, 재화의 교환에서 돈이 생겨났다는 가설도 사실이 아니며, 도시는 시민 보호를 위한 발명품과는 거리가 멀다. 이것이 철학과 독문학과 예술사를 전공하고 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고 대학에서 사회학 강의를 하는 저자의 분석이다.가장 중요한 발명들은 발명자가 없다. 아니 모른다. 그래서 그들을 대변해주는 사람도 없다. 저자는 그들의 친절한 대변자가 되어 인식의 첫 단추가 되는 그 발명에 대해 풀어준다. 이런 것을 따져보는 일이 흥미로우며 많은 깨우침을 준다는 걸 일깨워주는데, 직립보행에서 일부일처제까지 훑어가며 독자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한다.

발밑의 미생물 몸속의 미생물데이비드 몽고메리·앤 비클레 지음, 권예리 옮김, 눌와 펴냄

“영원한 동반자여~.”

미생물은 우리의 동반자다. 조용하고 강력한 삶의 동반자다. 미생물이 건강해야 우리 몸도 건강하다. 우리는 미생물과의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미생물의 역할을 인정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일할 기회를 줘야 한다. 지질학자와 생물학자 부부는 정원을 가꾸기 위해 흙의 상태를 살피다 동반자들이 하는 일을 깨닫게 된다.또한 미생물은 열쇠다. 현대인의 만성질환, 토양의 양분 고갈 등 인류가 맞닥뜨린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다. 그 열쇠는 우리 발밑과 몸속에 있다. 우리에게 보이는 세계는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이 친구들에게 달려 있다. 유전자 염기서열 분석 기술과 고성능 현미경 덕분에 우리는 미생물의 모습을 볼 수 있고 숨겨진 세계에 다가가게 되었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김초엽 지음, 허블 펴냄

“죽은 엄마는 이 도서관에 기록되었다.”김초엽 작가는 ‘사람이 물질을 기반에 둔 존재라는 것에 항상 흥미를 느꼈다’. 화학을 전공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바이오센서를 만들던 과학도가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2017년, 〈관내분실〉과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으로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대상과 가작을 수상하면서 작가가 되었다. 관심이 쏠렸고 여러 곳에서 원고 청탁이 들어왔다. 그간 발표한 글과 신작을 모아 첫 단편집을 완성했다.〈스펙트럼〉은 기술로 인해 변형된 인간의 감각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됐다. 데이터로 저장한 인간의 마음을 분실한다는 설정에서 출발한 〈관내분실〉을 비롯해 외계인들과의 공생관계를 다룬 〈공생가설〉 등 7편이 담겼다.

기자명 시사IN 편집국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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