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션이라기보다는 장사꾼에 가깝다. 조금 미화해서 표현하면 ‘음악을 사랑하는 장사꾼’이라 할 수 있겠다. 장사꾼이기 때문에 음악을 파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좋아하기 때문에 장사꾼이 되었다고 보면 맞다.” 양현석 전 YG엔터테인먼트(이하 YG) 대표 프로듀서가 15년 전 인터뷰에서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의 자신은 잊으라며 기자에게 했던 말이다.

외국인 투자자에게 ‘성접대’를 한 의혹에 이어, 소속 가수의 마약 투여 의혹을 제보한 연예인 지망생에 대한 진술 번복 강요 논란에 잇달아 휩싸인 양 전 대표에게서 이제 대중은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수단 방법 가리지 않는 장사꾼의 면모를 본다. 그동안 YG 관련 사건을 검찰과 경찰이 축소 수사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면서 대중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월드스타 싸이가 소속되어 있었고(얼마 전 독립), 남성 그룹 빅뱅·위너·아이콘이 있고, 여성 그룹 투애니원과 블랙핑크 그리고 혼성 그룹 악동뮤지션이 속한 YG는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 그리고 JYP엔터테인먼트(이하 JYP)와 함께 3대 연예기획사로 꼽힌다. 6월14일 양현석 대표 프로듀서는 “입에 담기도 수치스럽고 치욕적인 말들이 무분별하게 사실처럼 이야기되고 있다. 인내심을 갖고 참아왔지만 더 이상은 힘들 것 같다”라는 말을 남기고 YG의 대표 프로듀서 직에서 사퇴했다.

ⓒ연합뉴스양현석 전 YG엔터테인먼트 대표 프로듀서(위)는 소속 연예인의 대소사를 직접 꼼꼼하게 챙기고 관장하는 스타일이었다.

자신에 대한 루머 때문에 고통스러워서 사퇴한다고 밝혔지만 양 전 대표가 사퇴한 이유는 YG의 주가 하락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연초에 4만9000원 수준이었던 주가는 버닝썬 사태 이후 꾸준히 하락해 2만8400원(6월26일 현재)으로 떨어졌고, 시가총액도 5000억원대로 반 토막 났다. 양 전 대표에 대한 검경의 수사가 본격화하면 더 하락할 수도 있으리라 보인다.

“콘텐츠는 시스템이 아닌 사람이 만든다”

‘강남스타일’ ‘젠틀맨’ 등을 발표하던 전성기의 싸이와 함께했고, ‘연예인들의 연예인’이라고 일컬어지는 지드래곤을 비롯해 ‘사랑을 했다’라는 히트곡을 만들어 ‘초통령’으로 군림했던 그룹 아이콘의 전 리더 비아이가 속한 YG는 최근 10년간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싸이가 결합한 뒤로는 SM 독주체제를 끝내고 주식 시가총액과 매출액 부문에서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런 ‘양현석 제국’이 어떻게 추락하게 되었을까?

공고를 졸업하고 건축 관련 자격증을 따 회사 생활을 하던 양현석은 회사를 그만두고 가수 박남정의 백댄서로 연예계 활동을 시작했다. 이때 서태지를 만나 ‘서태지와 아이들’을 결성해 1992년 데뷔하고 1996년까지 활동했다. 곧바로 양군기획(나중에 YG엔터테인먼트로 변경)을 설립해서 독립했는데, 처음 만들었던 그룹 킵식스는 성공적이지 못했다. 하지만 지누션과 원타임이 인기를 얻고, 엠보트와 손잡고 데뷔시킨 휘성, 거미, 빅마마 등이 히트하면서 회사가 정상 궤도에 올라섰다.

대형 기획사 중에서도 YG는 자기 컬러가 확실한 곳이다. 힙합이나 리듬앤드블루스 같은 비주류 장르를 대중화하고, 빅뱅이나 투애니원 등 동성 팬에게도 역할 모델이 되는 아이돌을 만들었으며, 기획사가 인위적으로 키우는 아이돌 모형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꼴을 만들어가는 아이돌 모형을 이룬 것 등이 업적으로 꼽힌다.

매니지먼트도 매우 안정적이었다. SM에서는 H.O.T. 멤버 중 일부가 나가서 JTL을, 동방신기 멤버 중 일부가 나가서 JYJ를 만들었다. JYP에서도 2PM 멤버 중 박재범이 이탈했다. 하지만 YG에서는 이런 매니지먼트 문제가 노출되지 않았다. YG 홈페이지에서 소속 가수들을 ‘YG 패밀리’라고 소개하는데 양 전 대표는 소속 연예인과 끈끈한 유대를 유지했다.

ⓒ연합뉴스YG는 마약·표절 의혹 등이 터질 때마다 ‘이번만 대충 수습하자’는 식으로 대처했다. 오른쪽은 YG엔터테인먼트 사옥.

연예계에 ‘SM은 시스템이 움직이고 YG는 사람이 움직인다’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사람이 바로 양현석이다. 그만큼 양현석 1인의 비중이 크다는 의미다. 친동생인 양민석씨가 맡은 경영 부문을 제외하고는 양현석 본인이 모든 것을 챙겼다. YG에서 중간간부로 일했던 한 연예계 관계자는 “소속 뮤지션에 대한 것은 양현석 대표가 직접 꼼꼼하게 챙겼다. 대소사를 모두 관장하는 스타일이다”라고 회고했다.

양 전 대표는 콘텐츠의 질을 가장 강조했다. 연습생들에게도 “나에게 아부하려 하지 말고 실력을 보여달라”고 말하곤 했다. 뮤지션은 스스로 알아서 커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양 전 대표 자신이 판단해서 이제 내보낼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면 그때 데뷔시켰다. 그래서 YG 연예인들에게 ‘7층 회장실’은 혹독한 조련사 양현석을 상징하는 표현이었다.

좋은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그는 사람을 붙잡는 데 집중했다. 콘텐츠는 시스템이 아니라 사람이 만든다는 확신을 가졌던 그는 페리, 원타임의 테디, 스토니스컹크의 쿠시, 빅뱅의 지드래곤 등 뛰어난 음악 프로듀서를 붙잡았다. 20여 년 넘게 연예기획사를 하면서 연예인의 이탈도 없었고 이런 음악 프로듀서들과 파트너십을 유지한 용인술은 높이 평가받는다.

음반기획사로서 입지를 다진 뒤에는 배우 매니지먼트에도 손을 댔다. 2014년 차승원, 최지우 등의 영입을 시작으로 김희애, 손호준, 유인나, 김새론 등을 데려왔다. 자회사인 YG플러스에서는 프로 골퍼 김효주 등의 스포츠 매니지먼트도 하고 있다. CJ의 브랜드 전략 고문이었던 노희영씨를 영입해 요식업에도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기획사의 위상이 높아져 소속 뮤지션에 대한 표절 의혹을 제기한 방송사에 대해선 출연 보이콧으로 굴복시키기도 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연예기획사 초반에 가졌던 그의 소신이 글로벌 기획사가 되면서 많이 바뀌었다는 점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그는 “음악에만 집중하겠다” “간섭이 싫어서 투자를 안 받으려 한다” “비주류라도 뮤지션이 좋아하는 음악만 하게 하겠다”라는 소신을 밝혔다. 하지만 부동산 등 음악 외 사업에도 적극 나서고, 이런 사업을 위해 투자자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고, 음악도 “대중적인 것만 듣는다”라고 말할 정도로 주류 마인드로 바뀌었다.

달라진 상황에 맞춰 그의 마인드도 변했다고 볼 수 있지만 회사의 위상과 규모에 맞는 시스템을 구축하지는 못했다. 담아야 할 내용물은 커졌지만 담는 그릇이 같이 커지지 못해서 지체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안팎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YG는 이너서클과 일반 직원 간의 경계가 확실한 회사였다. YG에서 중간간부를 하다 나온 한 연예계 종사자는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도 이번에 뉴스를 보고 알았다. YG는 이너서클이 아니면 회사 일을 제대로 파악하기 힘든 구조다”라고 말했다. 양 전 대표는 자신이 비난했던 이전 세대 연예제작자들의 행태를 그대로 답습한 셈이다.

연예기획사가 사업을 확장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 경우다. 하나는 회사의 사업 규모를 키우기 위해서이고, 다른 하나는 소속 연예인이 해보고 싶은 사업이 있을 경우다. 문제는 주로 후자에서 발생한다. 연예인 처지에서는 인기가 영원할 수 없으니 잘나갈 때 사업을 시작하고 싶어 하는데, 이미지 관리를 해야 하는 소속사는 이를 들어주기도, 그렇다고 외면하기도 어렵다.

YG에서는 왜 사건·사고가 많이 발생했나

YG는 이 같은 사업 확장이 자연스러운 기획사였다. 초기부터 홍대 앞에서 클럽을 열었고 요식업체도 운영했으며 부동산 매입에도 적극적이었다. 나중에는 SBS, CJ, 루이비통, 네이버 등 업계의 강자들과 파트너십을 맺고 이들로부터 상당한 투자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연예계에서는 빅뱅 멤버들이 군대를 가기 시작하면서 매출 축소를 만회하려고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한 것으로 보고 있다.

연예인이 사업을 하고 싶어 하는 경우, 생각할 것이 많아진다. 이럴 때 대형 기획사는 보통 그 사업의 시장성과 리스크를 검토해주고 판단은 연예인 본인과 부모에게 맡기곤 한다. 기획사는 이런 사업을 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왜냐하면 연예인 뒤에서 이런 사업을 기획하는 또 다른 주체가 끼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갈등이 야기되고 이 대목에서 소속사와 연예인이 갈라서곤 한다. SM 소속이었던 소녀시대 제시카의 탈퇴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런데 YG는 거침이 없었다. 사업 지역도 국외로 확장하고 음악 외 사업에도 적극적이었다. 이번에 밝혀진 바와 같이 타이의 대자본가 밥과 결합해 대형 쇼핑몰에 빅뱅 카페 YG리퍼블릭 바를 열기도 했다. 한 대형 기획사 간부는 “해외에서 음악 외 사업을 벌이는 것은 위험천만하다.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중국 같은 곳은 실력자를 만나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억대의 소개료를 요구하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양현석 전 대표는 연예기획사를 시작하던 무렵부터 클럽을 운영했다. 한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연예인이 인기를 끌 때 가장 효과적인 사업이 무엇인지 분석해보았는데 클럽이라는 답이 나왔다. 하지만 문제가 될 ‘회색지대’가 많아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사업이 매력적인 것은 현금 거래로 이뤄지는 부분이 많다는 점이다. 그것이 바로 위험 요소다”라고 지적했다. 현금 거래 위주여서 나중에 문제가 되었을 때 추적하기도 어렵다.

ⓒ연합뉴스2월14일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가 클럽 ‘버닝썬’에 대한 압수수색을 마친 후 압수 물품을 가지고 나오고 있다.

대형 기획사 중 YG는 유난히 사건·사고가 많았다. 2010년 투애니원 멤버 박봄의 마약 밀수 혐의 조사, 2011년 빅뱅 멤버 지드래곤의 대마초 흡입 의혹, 2017년 빅뱅 탑의 마약 의혹, 2017년 프로듀서 쿠시가 마약을 구매하려다 적발된 사건 등 이번 아이콘 멤버였던 비아이의 마약 의혹 전에도 여러 건이 제기되었다. 하나같이 폭발력이 강한 사건이었지만 양현석의 YG는 잘 넘어갔다.

윤리의식 부족했던 ‘해결사 양현석’

마약 의혹 사건만이 아니다. 2009년 지드래곤의 표절 의혹은 국회에서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지만 역시 무마되었고, 빅뱅 멤버 대성의 교통사고 사망 사건도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 이런 일련의 사건 처리 과정을 통해 ‘해결사 양현석’의 이미지가 형성되었다.

신기하게도 근본적인 해결 없이 ‘이번만 대충 수습하자’는 YG의 대처는 생각보다 잘 먹혔다. 이런 불패 신화는 양 전 대표에게 좋지 않은 습관을 남겼다. 한 연예기획사 대표는 “약을 먹는 방식으로 설명하자면 JYP 박진영 대표는 증상이 좋아져도 의사가 그만 먹으라고 할 때까지 계속 먹는다. 반면 YG 양현석 대표는 자신이 판단해서 좀 괜찮아졌다 싶으면 바로 내려놓는다. 그것이 둘의 차이다”라고 말했다. 이 연예기획사 대표는 YG가 지금 이런 난관에 처한 이유를 한마디로 ‘윤리의식 부재’라고 분석했다. 정치인과 기업가들이 ‘윤리적이지 않아도 괜찮다’는 경험을 반복적으로 하게 되면 윤리의식을 잃게 되는데 YG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윤리의식을 내려놓은 YG는 부와 명예와 권력과 인기를 연결하는 접착제인 부패를 효과적으로 활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성접대 등 양현석 전 대표가 받는 의혹과 버닝썬 사건에서 승리에게 제기되는 의혹이 서로 닮은꼴이라는 점은 ‘YG 패밀리’에 광범위하게 퍼진 윤리의식 부재를 의심케 한다.

YG가 갖는 자신감의 비결 중 긍정적인 면이 콘텐츠라면, 로비력은 부정적인 면이다. 한 고참 연예부 기자는 “불리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SM은 매뉴얼대로 한다. 보도가 나가면 일단 어떻게 된 일인지 파악해보겠다는 공지를 내고 자신들이 파악해서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부정할 것은 부정하며 이를 공개한다. 반면 YG는 불리하면 ‘묵묵부답’인 경우가 많았다.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언론만 활용했는데, 팸투어를 갈 때도 우호적인 곳만 데려갔다. 옛날 기획사들이 쓰던 기자 길들이기 방식이다”라고 말했다.

버닝썬 사태 이후 YG와 경찰 그리고 검찰 간의 유착 의혹이 제기되었다. 비아이 마약 투약 의혹을 놓고는 검찰과 경찰이 서로 책임 떠넘기기 공방을 벌이고 있다(32~33쪽 기사 참조). 분명한 것은 그동안 YG에 대한 경찰 수사가 미흡했으며, 검찰 역시 수사 의지가 부족했다는 점이다.

YG의 로비력에 대한 의혹은 박근혜 정부 상층부까지 확장된다.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동생 양민석 전 대표가 박근혜 정부 시절 문화 자문기구인 ‘문화융성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으며, 박 전 대통령이 2013년 중국을 방문할 때 엔터테인먼트 업계를 대표해 사절단에 포함되었다는 점이다. 2015년 5월 청와대 비서관회의에서 박 전 대통령이 콘텐츠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양현석 대표에 대해 얘기하기도 했다.

‘음악을 사랑하는 장사꾼’은 장사꾼이어서 음악을 파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좋아하기 때문에 장사꾼이 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 드러나고 있는 그의 숨은 궤적에서 음악에 대한 애정은 보이지 않는다. YG와 YG 계열사들은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받고 있다. 양 전 대표 본인도 6월26일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에 출석해 9시간 동안 조사를 받았다. 그가 이런 파도와 해일을 헤치고 나와 다시 음악 장사꾼으로 우리 앞에 설 수 있을까?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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