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무게 120g, 키 26㎝. 나는 작고 가볍다. 내가 품은 노동자들의 땀방울 무게는 무겁다. 먼저 〈시사IN〉 식구들 노동이 담긴다. 대학노트에 빼곡히 취재를 하고, 할리우드 구강 액션을 하고, 머리카락을 뜯고, 손톱을 물어뜯으며 온몸으로 마감한 뒤에야 나는 이 세상에 나온다. 매주 금요일 새벽, 파주에 있는 인쇄 노동자들의 밤샘 작업을 거쳐야 제 모습을 갖춘다. 끝이 아니다. 이때부터 독자를 향한 여정이 시작된다.


나는 고양우편집중국으로 보내진다. 전국의 우체국 노동자들 손을 거친다. 집배원 노동자들은 241원을 받고 나를 독자들에게 배송한다. 원래 가격은 710원. 정기간행물 우편료 할인 정책에 따라 66%를 할인받는다. 권당 4000원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어쩌면 이들의 노동에 기댄 덕이다.

우체국 노동자들이 죽어가고 있다. 올해 벌써 9명이 숨졌다. 지난해에는 25명이 죽었다. 2008년부터 지난 6월까지 과로사로 의심되는 사망자가 41명, 자살자 29명에 이른다. 업무 중 교통사고 사망자도 32명이다. 자다 심정지로 죽고, 화장실에서 뇌출혈로 죽고, 배달하다 교통사고로 죽는다. 번개탄을 피워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이도 있다. 단일 직종에서 매년 10명 가까운 노동자들이 일하다 죽고 있다. 집배원 산업재해율은 재해 현장에서 일하는 소방관(1.08%)보다 높은 1.62%다. 그 이유를 모두 알고 있다. 일을 너무 많이 하기 때문이다.

집배원의 연간 노동시간은 2745시간. 다른 임금노동자 평균 2052시간보다 약 700시간 더 일한다. 날짜로 따지면 87일이다. OECD 평균보다 무려 123일 더 일한다. 다른 나라도 그럴까? 2015년 기준 우리나라 집배원 1인당 담당 가구수는 1160가구다. 미국 514가구, 일본 378가구와 비교되는 수치다. 집배원 1인당 담당 인구수도 한국 2763명, 미국 1400명, 일본 905명이다(〈시사IN〉 제523호 ‘이 아픈 몸 이끌고 출근하라네’ 기사 참조).

나를 배송하는 이들은 살인적인 노동강도 해소를 위해 동료 2000명을 늘려달라고 했다. 지난해 국회에서 관련 예산이 삭감되면서 물거품이 됐다. 우체국 노동자들은 노조가 생긴 지 61년 만에 처음으로 파업을 결의했다. 모두가 원인을 아는데 도대체 왜 죽음의 행렬을 멈추지 못하는 것일까. 김훈 소설가 말처럼 “돈 많고 권세 높은 집 도련님들”이 일하다 죽어나갔다면 이 문제도 진즉 해결되었을 것이다.

파업을 하면 나는 독자들에게 늦게 배송될 것이다. 협상이 타결되어 파업을 피하더라도 이참에 우체국 노동자들의 땀방울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그들이 나를 당신에게 전달한다.

기자명 고제규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unjus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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