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운동화 밑창이 유독 더 빨리 닳았다. 집집마다 오토바이를 세우느라 생긴 흔적이었다. 골목에 빽빽이 들어선 빌라 모두가 ‘정거장’이었다. 3m마다 오토바이 왼편에 달린 스탠드를 걷어 올리고, 다시 내렸다. 스탠드가 닿는 신발 밑창은 티끌 없이 매끄러웠다. “벌써 신발 바꿀 때가 됐네요.” 집배원 이한별씨(28)가 머쓱하게 웃었다. 다른 집배원들도 보통 신발을 4개월 이상 신지 못한다고 했다.

이씨가 담당하는 구역은 경기 안산시 상록구 일동 일대 326개 번지다. 대부분 4~5층짜리 다세대 주택임을 감안하면 2000가구가 넘는 곳에 우편물을 배달하는 셈이다. 오래된 동네라 대개 엘리베이터가 없어 온종일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한다. 오토바이에서 내리자마자 우편물을 손에 쥔 이씨가 계단을 두 칸씩 성큼성큼 올랐다. “한 칸씩 오르는 것보다 덜 힘들어요. 시간도 줄고요.” 뒤에서 쫓아가다 보면 그를 놓치기 일쑤였다. 우편물을 배달한 후 시동이 켜져 있는 오토바이 핸들을 다시 잡기까지 채 30초가 걸리지 않았다.
 

ⓒ시사IN 신선영오토바이를 타고 분주하게 배달 중인 이한별 집배원.


06시52분 안산우체국 도착

화요일은 일주일 중 택배 물량이 가장 많은 날이다. 출근길부터 바짝 긴장했다. 주말 동안 밀렸던 택배 주문이 화요일이면 관할 우체국에 쏟아진다. 7월2일 새벽 5시30분부터 안양물류센터(택배)와 안양집중국(등기·일반통상·EMS)에서 우편물을 가득 실은 대형 차량들이 우체국 1층 발착장에 들어서고 있었다. “물량에 따라 오늘 점심을 먹을 수 있을지 없을지가 갈려요.” 오전 6시52분 자전거를 타고 출근한 이한별씨가 발착장을 살피며 3층 집배실로 올라갔다. “원스타(이씨의 별명) 왔어?” 먼저 출근한 동료 집배원들이 많았다. 정식 출근 시간은 오전 8시지만 물량이 많은 날에는 오전 6시30분~7시면 업무를 시작한다. 먼저 우편물을 동마다 분류한다. “하루에 거의 1000개 정도 쳐요.” 집배원들은 담당 우편물을 처리하는 일을 ‘친다’ 혹은 ‘쳐낸다’라고 표현했다. 해치운다는 의미에 가깝다. 집배원 네다섯 명이 모여 밀려드는 ‘팔레트(소포가 담긴 캐리어)’를 빠른 속도로 쳐냈지만, 분류작업은 오전 8시30분까지 계속 이어졌다.

 

 

 

ⓒ시사IN 신선영7월2일 안산우체국에 들어온 전체 등기는 1만7649개, 택배 1만862개, 일반통상 9만6057개였다.

 


이날 안산우체국에 들어온 전체 등기는 1만7649개, 택배 1만862개, 일반통상 9만6057개였다. 평소 화요일보다는 적은 축에 속했다. 이씨는 “지난주 화요일에는 이것보다 딱 두 배 더 많았다”라고 말했다. 보통 우체국의 업무량이 늘어나는 시기는 명절과 선거 기간이라고만 알고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한 달로 따지면 고지서가 발행되는 3~4주차가, 연간으로 따지면 추석 3주 전부터 이듬해 설까지가 모두 성수기다. 법정공휴일 다음 날도 부하가 걸린다. 우체국이 하루 쉬면 택배는 하루치 더 쌓이기 때문이다. “중간 중간 빨간 날이 있으면, 그게 바로 그다음 날 업무로 고스란히 옮겨가거든요. 애초에 쉬는 날이 없었으면 할 때가 많아요.” 이씨의 동료 16년차 집배원 채승기씨(46)가 말했다. 2년차 집배원 양재천씨(40)도 명절이 돌아오는 게 두렵다. “2주 동안 하루도 못 쉬고 13시간씩 일했어요. 오토바이 타고 졸다가 사고 날 뻔했다니까요.”

08시50분 오토바이에 우편물 싣고 출발

주차장에는 빨간색 오토바이 수백 대가 늘어서 있었다. 이한별씨는 등기 40개와 소포 80개, 우편 800개를 오토바이 뒤에 달린 보관함에 차곡차곡 담은 후 시동을 걸었다. 이제는 눈 감고도 골목골목 건물 위치와 모양을 속속들이 그릴 수 있을 정도다. 하루 우편물 1000여 건을 번지마다 구분하고 배달한다.

오토바이는 집배원이 되기 위해 배웠다. 이씨는 2016년부터 3년간 상시계약집배원(무기계약직)으로 일하다 지난 6월 우정직 공무원으로 발령 났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기조에 따라 우정사업본부가 작년과 올해 상시계약집배원 3000여 명을 공무원으로 전환하고 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맛본 안정감이었다. “처음부터 장기적인 미래를 생각해서 선택한 직업이에요. 공무원이라는 메리트가 있잖아요.” 업무는 동일하지만 호봉제로 시작해 월급은 조금 더 깎였다.

 

 

 

 

ⓒ시사IN 신선영이한별 집배원이 등기 40개와 소포 80개, 우편 800개를 싣기 위해 오토바이로 향하는 모습.

 


이씨가 일하는 안산우체국은 지역을 총괄하는 우체국 중 노동시간이 연간 2932시간으로 상위 10%에 든다. 이곳의 집배 인력은 총 158명(상시계약집배원 5명 포함), 7월2일에는 병가 5명, 연차 4명을 제외한 149명이 일했다. 병가를 낸 사람들은 배달 중 오토바이 사고를 당하거나, 장시간 노동으로 척추와 다리 쪽에 무리가 간 경우다. 척추증, 등통증, 다리 및 골반 손상은 집배원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직업병이었다. 15년차 집배원 김명수씨(50·가명)는 “두세 달에 한 번씩 연골주사를 다리에 맞고 있다. 계단을 많이 오르내리다 보니 무릎관절이 약해졌다. 나이를 먹으니 몸에 무리가 오기 시작한다”라고 말했다.

휴가 내기가 쉽지 않다. 팀원 한 명이 빠지면 담당 지역을 나눠서 하는 ‘겸배’ 때문이다. 양재천씨는 지난 2년 동안 딱 하루 연차를 사용했다. “이모님이 돌아가셔서요. 그럴 때 아니면 못 쓰죠. 다른 사람들이 힘들어지니까요. 괜히 눈치보고 미안해지거든요.” 쓰지 못한 연차가 사람마다 축적돼 있다.

과로사 및 자살로 집배원이 잇달아 사망하는 등 사회문제로 부상하면서 노동조합·우정사업본부·정부·전문가로 구성된 ‘집배원 노동조건 개선 기획추진단(기획추진단)’이 2017년 8월 발족했다. 기획추진단은 1년간 우정사업본부 전체 집배원 1만6459명을 대상으로 노동환경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기획추진단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집배원의 연간 노동시간은 2745시간으로 측정됐다. 한국 임금노동자(연간 2052시간)보다 87일, OECD 평균(1763시간)보다 123일을 더 일하는 셈이다. 하루 중 휴식시간은 34.9분, 평균 연가 사용일수는 5.6일이었다. 사회적 합의기구인 기획추진단은 2018년 9월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7대 권고안을 발표했다. 대표적인 것이 정규직 인력 증원과 토요근무 폐지를 위한 사회협약을 마련하자는 내용이었다. 당시 전문가위원으로 참여했던 한국노동연구원 이정희 연구원은 “공무원 조직에서 이런 비정상적인 노동 관행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필요하다. 행정 부담이 예상되는데도 인력 증원을 요구한 것은 그만큼 연간 2745시간이라는 장시간 노동을 줄여야 할 필요가 더 컸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신선영이한별 집배원이 담당하는 구역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주택 밀집지역이라 온종일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한다.

 


권고안은 이행되지 않았다. 지난해 10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가 국회에 집배원 2000명 충원 예산을 요청했지만 절차상 문제로 편성이 되지 않았다. 공무원을 늘리기 위해서는 인력 조직 진단을 받아야 한다는 이유였다. 과기정통부는 올해 국회에 예산을 다시 신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사이 집배원의 죽음이 이어졌다. 지난 5월 공주우체국에서 상시계약집배원으로 일하던 이 아무개씨(34)는 “피곤해서 자야겠다”라는 말을 남긴 뒤 이튿날 심정지로 일어나지 못했다. 6월에는 충남 당진우체국 소속 강 아무개씨(49)가 자택 화장실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사망 원인은 뇌출혈이었다. 이들을 포함해 2019년에만 집배원 9명이 목숨을 잃었다. 결국 6월25일 전국우정노동조합, 전국집배노동조합 등 우정 노동자들은 인력 증원과 근로 단축을 요구하며 파업을 결의했다. 1958년 우정노조 출범 이후 61년 만에 처음이다.

09시47분 상록수역 근처에서 위탁 배달원 이형규씨를 만남

11시 일동우체국 우편보관함에서 남은 우편물을 가지고 옴

방문하는 집 대다수는 사람이 없었다. 벨 다섯 번을 눌러도 소식이 없자, 이한별씨는 PDA(개인 휴대 단말기)로 전화를 걸었다. “택배인데요” “우체부인데요” “집배원인데요” 전화를 할 때마다 호칭이 다양했다. 우편물에 쓰여 있는 주소와 실제 배달지가 달라 통화가 길어질 때도 있다. 이씨는 “현장에서 육체노동만큼이나 감정노동도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아침에 깨우면 화내는 분도 많고, 왜 제시간에 도착하지 않느냐고 민원 넣으시는 분들도 있고요.” 택배가 늦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매번 납득시키려 했지만, 무턱대고 욕하는 이들을 마주할 때도 많았다. 이동하는 중간 중간에도 전화가 울렸다. 하루 평균 30~40통 전화를 받는다.

 

 

 

 

ⓒ시사IN 신선영방문하는 집 대다수에는 사람이 없다. PDA 단말기로 전화를 걸 때마다 감정노동도 함께 한다.

 


골목 앞으로 흰색 트럭이 지나가자 이한별씨가 함박웃음을 띠었다. 소포위탁 배달원 이형규씨(35)였다. “이 시간에 구역이 겹치니까 친하게 지내요. 서로 물량이 많다 싶으면 도와주기도 하고요.” 우체국 마크가 그려진 동일한 유니폼을 입었지만 이형규씨는 우정사업본부와 위탁계약을 체결한 물류지원단에서 재위탁을 받은 개인사업자다. 집배원과 달리 배달 건당 수수료를 벌어가는 식이다. 같은 업무를 하지만 신분이 다르다. 우체국 택배 물량이 늘어나자 우정사업본부가 택배 업무를 일정 부분 외주화하면서 생긴 직군이다. 실제로 2017년과 2018년 우정사업본부는 집배 인력을 전체 1062명 늘렸지만, 그중 918명은 이형규씨와 같은 소포위탁 배달원이었다. 그래도 같은 현장에서 일하다 보니 통하는 게 있다. 이한별씨가 이형규씨에게 ‘조만간 술 한잔 하자’며 짧은 만남이 끝났다.

14시55분 동료 채승기씨와 점심식사

15시41분 주차장에서 잠시 휴식 후 복귀

밥 먹는 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바쁠 때는 라면으로 때우기도 하지만, 오늘은 물량이 적어서 점심 먹을 시간이 있단다. “그래도 먹고살자고 하는 건데요.” 오후 3시가 가까워서야 바로 옆 동에서 배달하는 채승기씨를 만나 냉면집으로 향했다. 오전 6시30분에 기상한 이후 처음 먹는 끼니였다. “지금 가지고 나오는 물량의 3분의 2 정도만 되어도 좋을 것 같아요. 그러면 밥도 여유 있게 먹을 수 있을 텐데.” 우편 물량이 예전보다 감소했지만 집배원들에게 부담이 되는 건 등기와 택배였다. 우정사업본부에 따르면 전체 우편 물량은 2013년부터 5년간 22.5% 감소했다. 택배와 등기 물량이 늘면서 현장에서 집배원들이 방문해야 하는 ‘배달점’은 훨씬 더 많이 늘었다. 특히 이한별씨가 담당하고 있는 지역은 대부분 1인 가구가 사는 빌라촌이라 배달 개수는 적어도 이동거리는 오히려 늘었다. 밥을 먹을 때도 PDA로 전화벨이 울렸다.

 

 

 

 

ⓒ시사IN 신선영하루 배달 물량을 끝내면 우체국 집배실로 돌아와 다음 날 배달할 우편물을 미리 정리한다.

 


잠자리에 누울 때 간혹 머릿속에 불안감이 차올랐다. ‘내일 혹시 못 일어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5월 사망한 서른네 살 집배원에 대한 기사를 보고 나서다. “남의 일 같지 않았어요. 젊은 분도 한 명 돌아가셨잖아요. 저랑 나이 차이도 별로 안 나는데….” ‘과로사’라고 판명된 것은 아니었지만 이한별씨는 짐작할 수 있었다. 하루 8시간을 밖에서 뛰어다니다 보면 심장박동이 비정상적으로 빨리 계속 뛰는 게 느껴진다. 2008년부터 2019년 6월까지 사망한 집배원 중 과로사로 의심되는 뇌심혈관 질환 사망자는 41명, 자살 29명, 업무 중 교통사고가 32명이었다.

늦은 점심 식사는 30분 만에 끝났다. 오후가 되자 볕이 뜨거웠다. 철물점 주인이 “수고가 많다”라며 캔커피 하나를 건넸다. “그래도 이런 게 있으니까 버티죠.” 이씨가 빌라 주차장에 비치된 평상에 앉아 잠시 숨을 골랐다. “제가 쉬는 곳이에요.” 오후 4시가 되자 가지고 온 우편물이 동났다. 우체국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시사IN 신선영집배원들은 “과로사가 남의 일이 아니다”라고 입을 모았다.


16시56분 동료들과 커피 마시며 잠시 휴식

19시01분 퇴근

오후 5시가 넘자 한산했던 집배실로 집배원들이 땀을 흘리며 돌아왔다. 쉴 틈 없이 다시 업무가 이어진다. 배달하는 동안 쌓인 우편물을 미리 분류하는 작업이다. “커피 마실래?”라는 동료의 제안에 자판기 주변으로 삼삼오오 몰려들었다. 바로 앞에는 조합원 게시판이 있었다. ‘7월9일 총파업 돌입’이라는 글자가 보였다. 마지막 조정회의가 7월5일로 미뤄지는 바람에 당장 파업이 어떻게 될지 예상하기 어려워졌다.

“2000명 증원하겠다고 권고안에 합의까지 했으면서 우정사업본부가 말을 돌렸다” “회사가 현장 사정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지금 인원으로는 간당간당 버티고 있는 느낌이다” “과로사가 정말 내 일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이야기가 집배원들 사이에서 커져갔다. 자리로 돌아오니 금세 등기가 또 쌓였다. 미리 분류해두지 않으면 다음 날 부하가 걸릴 게 뻔하다. 이씨는 이날 하루 총 12시간 동안 안산 시내 27㎞를 이동했다. 내일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기자명 김영화 기자 다른기사 보기 you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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