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삼성이 그룹 차원에서 ‘회계 사기’를 실행했다고 의심한다. 삼성이 받은 혐의는 대충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제일모직은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를 가졌다. 삼성바이오는 삼성바이오에피스(삼성에피스)를 가졌다. 삼성그룹은 ‘어떤 이유로’ 제일모직의 기업가치를 올리고 싶었다. 방법은 간단하다. 제일모직이 가진 삼성바이오의 가치를 올리면 된다. 삼성바이오의 가치는 어떻게 높일까? 삼성바이오가 가진 삼성에피스의 가치를 올리면 된다. 끝말잇기 같지만, 삼성에피스의 가치는 어떻게 올리지? 약간 기괴하게 들릴 수 있지만, 삼성에피스에 대한 삼성바이오의 영향력을 ‘회계적으로 낮게 표시’하면 된다. 이런 일련의 작업을 관통하는 삼성 측의 핵심 목표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승계라는 것이 검찰의 주장이다.

물론 삼성 측은 혐의를 전면 부인한다. 형법과 민법, 회계 부문 등에서 치열하고 까다로운 법적 공방과 여론전이 전개 중이다. 중요한 논전이다. 한국의 경제발전 역량과 고용에서 엄청난 비중을 점유하는 글로벌 기업 삼성을 둘러싼 싸움이기 때문이다. 그 발단인 2015년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부터 짚어보자.

ⓒ시사IN 이명익기업가치를 부풀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당시 삼성물산에
막대한 손해를 끼쳤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 전경.


2015년 삼성그룹은 계열사 구조를 개편하고 있었다. 크게 두 가지 기조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당시의 제일모직’을 지주회사로 세워 주요 계열사들을 지배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제일모직에 대한 이건희 회장 일가의 지배력이 매우 탄탄했기 때문이다. 전체 주식의 절반 이상을 갖고 있었다. 이 회장 일가의 지배력은 제일모직을 경유해서 다른 계열사들로 내려갈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그룹의 중추 회사인 삼성전자에 대한 이건희 회장 일가의 지배력을 더욱 확고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 회장 일가가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은 4.7%였다(계열사들이 보유한 지분을 합치면 17.4%). 물론 삼성전자 주식을 더 사들이면 되지만 너무 비쌌다. 지분율을 1%포인트만 더 높이려 해도 19조원 정도가 필요했다. 돈이 크게 들지 않는 다른 방법이 있었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을 합쳐서 ‘합병회사(지금의 삼성물산)’를 만들면 된다. 삼성물산은 삼성전자의 대주주(4.1%)였다. 그 지분이, 이건희 회장 일가가 지배하는 합병회사(제일모직+삼성물산)에 그대로 승계될 것이었다.

큰 문제가 있었다. 당시 삼성물산에 대한 이건희 회장 일가의 지배력이 매우 허약했다. 이 회장 일가가 직접 지닌 삼성물산 지분은 불과 1.4%(삼성 계열사들의 지분을 모두 합쳐도 14%). 이건희 회장 일가가 합병회사를 안정적으로 지배하려면, 제일모직의 기업가치가 삼성물산의 기업가치보다 훨씬 높아야 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들어보자. 김철수라는 사람이 100% 소유한 A라는 회사가 B라는 회사(김철수의 지분은 0%)와 합병한다고 치자. A사의 가치가 400만원, B사의 가치가 100만원으로 평가된다면, 합병회사의 가치는 500만원이다. 500만원짜리 합병회사에서 400만원이 A사(김철수가 100% 보유)에서 비롯되었다. 김철수가 합병회사에 보유할 지분율은 무려 80% (400만원÷500만원×100)다. 반대로 A사의 가치가 100만원, B사가 400만원으로 평가된다면? 합병회사에서 김철수의 지분율은 20%에 불과하다(100만원÷500만원×100). 김철수는 자기 지분이 높은 기업의 가치가 높이 평가될수록 합병회사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는 것이다.

이건희 회장 일가도 같은 처지였다. 실제로 2015년 합병에서 당시 제일모직과 당시 삼성물산의 기업가치는 ‘1(제일모직) 대 0.35(삼성물산)’로 평가되었다. 이른바 ‘합병비율’인데, 제일모직의 가치가 삼성물산의 3배에 이른다. “도대체 기업가치를 어떤 방식으로 산정한 것이냐” 하는 반발이 제기되었다. 양사가 가진 것, 즉 ‘자산(기업이 보유한 토지·공장·기계·증권 등)’ 기준으로 보면, 삼성물산(29조5000억원)이 제일모직(9조5000억원)의 3배를 웃돌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시민단체들과 미국의 헤지펀드 엘리엇은 이건희 회장 일가가 자신들에게 유리한 합병을 위해 두 기업의 가치를 조작했다고 주장했다. 기업가치란 것은 평가 방법에 따라 위아래로 요동칠 수 있다.

 

ⓒ연합뉴스2018년 5월2일 기자회견에서 김동중 삼성바이오로직스 전무(가운데)가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그러나 자산가치만을 기준으로 두 기업의 가치가 터무니없게 평가되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일반적으로 기업가치 산정에서 가장 핵심적인 기준은 주식가치이기 때문이다. 합병 직전 수개월 동안 제일모직의 주식가치는 삼성물산의 3배에 달했다. ‘기업가치’는, 그 회사가 생산과 고용으로 얼마나 사회에 기여하는지를 따져 평가되는 것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주주의 이익을 위한 개념이다. 즉, ‘해당 기업이 주주에게 얼마나 많은 현금을 돌려줄 수 있는가’에 따라 높거나 낮게 산정된다. 자산이 많아도 주주들에게 제대로 된 수익을 돌려주지 못하는 업체가 있다. 반면 적은 자산을 잘 활용해서 주주들에게 큰 수익을 환원하는 회사도 있다. 두 업체 가운데 어느 쪽의 주가가 높을까? 당연히 후자다. 주가가 높으니 기업가치도 높다. 기업가치 평가에서 주가에 큰 비중을 두는 방식(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경우)이 완전히 엉터리는 아니라는 이야기다. 더욱이 제일모직은 바이오 제약 업체인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자회사(지분 46%)로 두고 있었다. 글로벌 첨단 산업인 바이오 제약은 한국의 신성장 동력으로 주목되는 부문이었다. 삼성물산의 주력 사업은 건설이라는 구(舊)산업이다. 미래의 성장 가능성(=주주에게 많은 현금을 돌려줄 가능성) 측면에서, 삼성바이오는 제일모직의 높은 기업가치를 정당화할 수 있는 근거 중 하나로 보였다.

제일모직에 삼성바이오라는 자회사가 있다면, 삼성바이오에는 삼성에피스가 있다. 바이오 제약은 고부가가치 시장이지만 진입 장벽이 높은 부문이다. 바이오 신약을 개발할 수 있는 기업은 세계적으로 몇 되지 않는다. 신약 1종을 개발하는 데는 수조원대 자금과 10년 이상의 개발 기간이 필요하다. 글로벌 제약사들은 주로 연구·개발만 하고 의약품 제조는 외부 업체에 맡긴다. 그 외부 업체가 바로 삼성바이오 같은 ‘의약품 생산 전문업체(CMO)’다. 삼성바이오의 자회사인 삼성에피스는 연구·개발 업체다. 바이오시밀러(바이오 복제 의약품) 및 신약 개발이 주력 사업이다. 그룹 내에 생산 기능(삼성바이오)과 연구·개발 기능(삼성에피스)을 모두 갖춘 것에서 삼성 특유의 ‘추격 전략’을 읽어낼 수 있다. 하청 대량생산으로 축적한 노하우에 연구·개발 기능을 접목해서 일단 바이오시밀러부터 자체 개발할 수 있는 역량을 축적한다. 이를 기반으로 신약 부문으로 진출하겠다는 것이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스마트폰 등에서 글로벌 선진 기업들을 따라잡아온 패턴이다.

종속기업과 관계기업의 차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당시, 삼성바이오가 삼성에피스에 가진 지분은 91.2%였다. 두 업체 모두 비상장 기업이었다. 이 회사들의 주식이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당연히 주가도 형성되어 있지 않았다. 주가를 기반으로 기업가치를 산정할 수도 없었다. 제일모직의 가치를 평가하려면 그 자회사이자 자산인 삼성바이오와 삼성에피스의 가치 역시 어떻게든 평가되어야 했다.

비상장회사의 기업가치는 어떻게 산정해야 할까? 그나마 ‘순자산’이 기업가치와 가장 비슷한 개념일 듯하다. 순자산은 자산에서 부채를 뺀 수치.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말 현재 삼성바이오의 순자산은 6300억원 정도다. 그런데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이 이뤄진 2015년 말, 삼성바이오의 순자산은 2조7700억여 원으로 크게 증가한다. 같은 해의 순이익도 1조9000억원에 달했다. 겨우 1년 동안 순자산과 순이익이 엄청나게 늘었다. 하지만 영업활동의 성과가 아니었다. 전적으로 재무제표 작성 방법을 바꾼 덕분이었다.

재무제표 작성 방법을 어떻게 바꾼 것일까? 삼성바이오의 경우를 이해하려면, 투자를 통해 연관된 기업들의 재무제표가 어떻게 작성되는지 예를 들어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어떤 기업(편의상 A사)이 단지 금융수익을 올릴 목적으로 다른 기업(B사)의 주식을 소량(예컨대 B사 총주식의 0.5%) 매입해서 보유하는 경우가 있다. A사가 B사에 투자한 것이지만, A사는 B사의 경영에 어떤 영향도 미칠 수 없다. A사는 재무제표에 B사의 주식을 단순한 금융자산으로 기입해 넣으면 된다. 그 주식이 오르면 수익을, 내리면 손실을 볼 뿐이다.

대조적으로, A사가 B사의 주식에 투자해서 100%를 보유할 수도 있다. A사는 B사의 경영에 절대적 영향력을 미친다. 즉, 두 회사 간에는 ‘지배(A사)-종속(B사)’ 관계가 존재한다. 지배기업은 종속기업의 영업·재무 활동을 조정해서 자사(지배기업)의 회계상 실적을 실제보다 우월하게 나타냄으로써 주가를 올리거나 거액의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지배기업의 상품을 종속기업에 떠넘기면 된다. 종속기업이 그 상품을 시중에 팔지 못하고 있다면, 실제 수익은 창출되지 않은 셈이다. 그런데도 기업별로 재무제표(개별재무제표)를 작성하면, 지배기업에는 매출과 수익이 잡히는 반면 종속기업은 비용만 쌓게 된다. 혹은 지배기업이 종속기업에 지나친 배당금을 요구해서 자사의 수익을 과장할 수도 있다. 지배기업이 종속기업에 대한 지배력을 악용해서 투자자들을 속이는 경우다. 그래서 지배기업과 종속기업에 대해서는 아예 두 회사의 자산·부채·손익 등을 모두 합친 뒤 양사 간에 오간 금액(판매대금, 배당금 등)을 빼는 방법으로 ‘연결재무제표’를 작성한다. 두 기업을 사실상 ‘하나의 회사(단일 경제 실체)’로 간주하는 것이다. 두 회사 간에 흐른 돈이 하나의 금고 속에서 오간 것으로 처리된다. 이렇게 되면 지배기업이 종속기업으로부터 받은 판매대금이나 배당금으로 자사의 실적을 과장할 수 없다. 보통 한 기업이 다른 기업에 대해 50% 이상의 지분을 보유하면 지배-종속 관계가 존재한다고 간주한다.

 

ⓒ연합뉴스2015년 7월17일 제일모직과의 합병을 놓고 삼성물산 주주총회가 진행 중인 모습.


그렇다면 A사가 B사의 경영에 대해 ‘지배’까지는 아니지만 ‘상당한 영향력(지분율로는 20~50%)’을 미칠 수 있을 때는 어떻게 될까? A사가 연결재무제표를 작성할 필요까지는 없으나, 자사(A사)의 재무제표에 B사의 실적을 지분율만큼 반영해줘야 한다. B사(투자받은 기업)가 100만원 순익을 올렸다면, 이 회사에 30%의 지분을 가진 A사(투자한 기업)는 자사의 재무제표에 30만원(100만원의 30%)을 ‘지분법 이익’으로 기입하는 방식이다. 이른바 ‘지분법’. 이처럼 지분법이 적용되는 ‘투자받은 기업(B사)’을 ‘관계기업’이라고 부른다. ‘관계기업’은 ‘투자한 기업’의 영향을 받긴 하지만, 엄연히 별도 회사다.

삼성바이오의 2014년 재무제표는 삼성바이오만의 자산과 부채, 손익을 표시한 것이 아니었다. 삼성바이오와 삼성에피스의 실적을 합친 뒤 양사 간의 거래액을 제외한 연결재무제표였다. 삼성에피스가 삼성바이오의 ‘종속기업(91.2%)’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5년의 삼성바이오 재무제표는 삼성바이오만의 ‘개별재무제표’다. 삼성 측이 삼성에피스의 지위를 삼성바이오의 ‘종속기업’에서 ‘관계기업’으로 변경했기 때문이다.

투자한 기업의 처지에서 종속기업과 관계기업(의 주식)의 가치를 평가하는 방법은 매우 다르다. 투자기업에게 종속기업은 ‘다른’ 회사가 아니라 하나의 경제적 실체 내에 있는 ‘식구’다. 투자기업의 운영에 종속기업이 기능적으로 필요한 경우(중간재나 기술 공급 등)가 많다. 그래서 투자기업은 종속기업의 영업과 재무활동에 적극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연결재무제표를 작성한다. 재무제표에서 종속기업은 당초 인수·설립된 비용으로 반영된다. 이 금액에, 이후 종속기업이 매년 올리는 실적을 추가하면 된다. 종속기업을 ‘시장에서 얼마로 팔 수 있느냐’는 중요한 고려 사항이 아니다.

이에 비해 관계기업은 투자기업의 ‘금융자산’적 성격이 강하다. 투자기업이 영향력을 미치긴 하지만 엄연한 외부 기업이다. 식구로 부를 수 없다. 그 관계기업에 다른 기업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식구가 아니라면 사고팔 수도 있다. 투자기업의 재무상태가 여의치 않을 때는 관계기업의 지분을 매각해서 현금을 조달해도 된다. 그래서 투자기업의 재무제표엔 관계기업(정확하게는 투자기업이 보유한 관계기업의 주식)을 ‘시장에서 거래하는 가치’, 즉 ‘공정가치’로 기입해야 한다.

종속기업이 관계기업으로 변경되는 경우엔 그 기업가치가 어떻게 달라질까? 연결재무제표에서 종속기업은 자사만의 뚜렷한 가치를 표시할 수 없다. 투자기업의 한 기능이라는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시장에 매각하려면 어느 정도를 받아야 할까’라는 시각에서 볼 때 비로소 해당 기업의 가치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만약 종속기업이 투자기업과의 관계에서 사회적으로 희귀한 역량을 쌓았다면, 그 공정가치가 의외로 높이 나타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일이 삼성바이오와 삼성에피스에서 일어났다고 삼성 측은 주장하는 셈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2011년 12월6일 삼성바이오로직스와 미국 바이오젠이 합작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2015년 말 삼성 측은 삼성에피스의 지위를 삼성바이오의 종속기업에서 관계기업으로 변경한다. 삼성바이오는 삼성에피스를 공정가치(=시장가격)로 평가해서 자사의 장부에 기록해야 했다. 만약 삼성에피스의 주식이 시장에서 거래되고 있다면, 그 가격(주가)을 공정가치로 간주하면 된다. 그러나 삼성에피스는 비상장회사다. 다른 방법으로 공정가치를 추정할 수밖에 없다.

널리 사용되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현금흐름할인’이다. 해당 기업이 ‘앞으로 벌어들여 주주들에게 돌려줄 수 있는 현금’을 추정한 뒤 ‘요구수익률’로 나눠 현재가치로 환산한다. 예를 들어, 여러 투자자들이 어떤 회사(1년 동안만 운영되는 것으로 가정)를 설립했는데, 그 수익률이 ‘한 해 10% 정도는 되어야 손해를 보지 않는다’고 생각했다고 치자(요구수익률). 그렇다면 그 투자자들에게 현재의 100억원은 내년 같은 시기의 110억원과 같다. 만약 회사가 1년 뒤에 투자자들에게 돌려줄 현금이 110억원으로 추정된다면, 현금흐름할인법에 따른 해당 기업의 현재가치(요구수익률 10%로 할인)는 100억원이다. 또한 이 회사의 공정가치는, 투자자들이 모아준 밑천(자본금)이 10억원이든 1000억원이든 상관없이 100억원이다. 현금흐름할인법에서 기업가치는 오로지 ‘투자자들에게 돌려줄 돈’과 요구수익률로 산정되기 때문이다.

삼성에피스 기업가치 5조원대로 껑충

삼성에피스 역시 2015년 말 현재 자산 6500억원, 부채 3600억원 정도 규모의 기업이다(순자산 2905억원). 기업가치를 추정한 회계법인은 삼성에피스가 이후 수십 년 동안 투자자에게 수익을 돌려줄 것으로 추정한 모양이다. 그 추정 금액을 현재가치로 할인한 삼성에피스의 기업가치가 무려 5조2726억원에 달했다. 그리고 삼성바이오의 삼성에피스 지분율은 2015년 말 현재 91.2%다. 즉, 5조2726억원의 91.2%인 4조8086억원이 삼성바이오 재무제표의 비유동자산 항목에 ‘지분법적용투자주식’으로 들어갔다. 삼성바이오가 1년 만에 몸집(제일모직의 기업가치도)을 크게 불릴 수 있었던 비결이다. 문자 그대로 삼성에피스에 대한 삼성바이오의 영향력을 ‘회계적으로 낮게 표시(종속기업→관계기업)’한 것만으로 가능해진 일이다.

삼성 측이 삼성에피스의 지위를 삼성바이오의 종속기업에서 관계기업으로 바꾼 명분은 무엇이었을까? 삼성이 글로벌 바이오 제약 시장에 진입한 것은 2010년대 초반이다. 후발 기업으로서 선진 바이오 기업과 제휴할 필요가 있었다. 미국 바이오젠이 손을 내밀어주었다. 1978년에 설립된 바이오젠은 알츠하이머 치료제 등 일부 바이오 제품에서 세계 선두권인 업체다. 삼성바이오와 바이오젠은 지난 2012년 삼성에피스를 합작으로 설립했다. 당시 삼성바이오와 바이오젠의 삼성에피스 지분은 각각 85%와 15%였다. 이후에도 삼성바이오는 삼성에피스에 대한 투자를 여러 차례 늘렸다. 결과적으로 2015년 말, 삼성바이오와 바이오젠의 삼성에피스 지분은 각각 91.2%와 8.8%로 재편되어 있었다.

다만 삼성바이오는 바이오젠과 합작의 대가로 ‘콜옵션’을 제공했다. 예컨대, 당신에게 ‘어떤 회사의 주식을 1만원으로 살 수 있는’ 콜옵션이 부여되었다고 가정하자. 당신은 그 주식이 2만원으로 올랐을 때 콜옵션을 행사하면, 불과 1만원으로 2만원짜리 주식을 살 수 있다. 주당 1만원의 수익을 낼 수 있다. 만약 해당 주가가 1만원 선 밑에 머문다면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아도 좋다.

당초 바이오젠은 원하는 시기에 3500억원 정도만 내면 삼성에피스의 49.9% (50%-1주)에 해당하는 주식을 매입할 콜옵션을 받았다. 삼성에피스가 바이오 의약품 개발에 성공해서 기업가치를 크게 올릴 것으로 보일 때 콜옵션을 행사하면 된다. 2015년 말 삼성에피스의 공정가치(5조2726억원) 기준으로 보면, 바이오젠은 불과 3500억원으로 2조1670억원 상당의 삼성에피스 지분을 매입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셈이었다. 물론 삼성에피스가 실패하면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마침 삼성에피스는 2015년 들어 바이오시밀러 2종 개발에 성공하고 국내 시판 허가를 획득했다. 기업가치가 크게 오를 조건이 갖춰졌다. 바이오젠이 콜옵션을 행사하면, 삼성바이오의 삼성에피스 지분은 91.2%에서 50.1%(50%+1주)로 축소된다. 그래도 과반수 이상의 지분을 보유하니 삼성에피스에 대한 지배력을 유지할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머지 지분이 수많은 주주들에게 흩어져 있는 경우와 바이오젠 같은 유명 업체가 49.9%를 단독으로 보유하는 경우는 다르다. 이에 따라 삼성바이오의 삼성에피스 지배력이 크게 약화될 것으로 추정되었기 때문에 그 지위를 종속기업에서 관계기업으로 바꿨다는 것이 삼성 측의 주장이다.

 

ⓒ연합뉴스2018년 7월19일 참여연대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 조작 고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실제로 바이오젠은 지난해 6월 콜옵션을 행사했다. 현재 삼성바이오와 바이오젠의 삼성에피스 지분은 각각 ‘50%+1주’ 대 ‘50%-1주’다.

2015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이 성사된 이후 그 문제점을 선도적으로 제기한 쪽은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였다. 합병 자체가 부당했으며, 이후 삼성바이오와 삼성에피스에 가해진 일련의 작업은 합병을 정당화하기 위한 분식회계라는 주장이다. 제일모직의 가치를 높이려면, 삼성바이오의 가치를 높여야 했고, 삼성바이오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바이오젠의 콜옵션을 빌미로 삼성에피스의 가치를 올렸다는 것이다. 이런 의혹이 확산되면서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삼성바이오에 대한 재감리 결정을 내렸다. 증권선물위원회 또한 ‘삼성바이오가 대규모 분식회계로 기업가치를 부풀렸다’며 이 회사와 회계법인들을 외부감사법 및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삼성 측 “검찰 주장에 시간적 모순 있다”

검찰은 삼성 측이 ‘이재용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합병부터 삼성에피스의 지위 변경에 이르는 일련의 작업을 조직적으로 추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엔 삼성 측이 삼성바이오와 삼성에피스의 회계 관련 자료를 공장 마룻바닥에 숨기는 등 증거를 인멸한 사실이 적발되었다. 7월 초 현재까지 삼성전자 출신 임원만 5명이 증거인멸 혐의로 구속되었다. 검찰의 칼끝은 더 ‘윗선’, 즉 이재용 부회장을 겨냥하고 있다.

삼성과 그 지지자들은 검찰의 시나리오를 ‘끼워 맞춘 이야기’로 평가 절하한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기업가치는 2015년 5월에 결정되었지만, 삼성바이오의 회계기준 변경은 2016년 초에 벌어진 일이라는 것이다. ‘제일모직의 기업가치를 부풀리기 위해 삼성바이오의 분식회계가 자행되었다’라는 주장이 시간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증거인멸 혐의에 대해서도 관계 당국의 수사가 들어온다고 할 때 기업 측이 흔히 보이는 반사적 대응에 불과하다고 항변한다.

검찰 수사 속도에 따라 이르면 하반기부터 관련 재판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삼성바이오의 분식회계가 법률적 사실로 확인되면 파장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지금 삼성그룹의 등뼈인 삼성물산(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회사)의 존재 자체를 위협하게 될지도 모른다. 삼성바이오가 분식회계로 기업가치를 부풀렸다면 이에 따른 2015년 당시의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역시 불법으로 규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룹으로서의 삼성이 소멸하거나 엄청나게 축소되는 사건을 실제로 목도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