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해지는 게 ‘나쁜 일 같다’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익숙해지면 많은 것들이 당연하고 무례해지니까. 말하지 않아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거나 무조건적인 이해를 요구하는 식이다. 상대가 내게 주고 있는 온도를 쉽게 잊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짝꿍은 어떤 익숙함은 좋은 거라고 대답하곤 했다. 그때는 그 말을 믿지 않았지만 지금은 몸으로 이해한다. 이를테면 내 짝꿍은 쉽게 잠들지만 잠귀가 밝은 편이다. 나는 고질적인 불면증이 있다. 뒤척대는 밤이면 짝꿍은 잠결에도 손을 내밀어 등을 쓸어준다. 그래서 나는 나도 모르는 새 등이 가려울 때마다 짝꿍을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어제와 오늘이 크게 다르지 않은 일상을 보내는 동안 시간은 흘러가버리는 것 같지만 나름의 두께를 지닌다. 그래픽노블 〈요요〉 속 희진과 경호가 보낸 반복되는 하루도 마찬가지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5월14일은 일요일이었다. 내키지 않는 소개팅이었지만 정석대로 차 마시고, 밥 먹고, 영화 보고 헤어졌다. 원래대로라면 다시 보지 않을 사이였다. 하지만 두 사람에게 월요일은 오지 않는다. 눈 뜨면 다시 반복되는 5월14일의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만나고, 만나고, 만나다가 연애가 시작된다.
신체적으로 다 자란 어른이 정신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는 남으로부터 온다. 연애를 비롯한 친밀한 관계를 통해 우리는 상대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더 속속들이 알게 된다. 그래서 남을 사랑하는 일은 나를 사랑하는 일이다. 〈요요〉의 희진과 경호도 서로가 있었기에 그 사실을 깨닫는다. 무엇보다 어떤 목표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사는 방법을 알게 된다. “오늘은 그냥 오늘이에요. 내일을 위해 있는 게 아니(95쪽)”라는 걸 이해하는 일은 왜 이렇게 늘 어려울까, 곱씹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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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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