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배경은 1976년 여름, 미국 플로리다. 지금으로부터 40년도 더 지난 시대적 배경, 게다가 우리와 별 인과관계가 없는 머나먼 미국 땅에서 벌어지는 열 살 소녀 써니(썬샤인 르윈)의 ‘그해 여름’이 왜 하나도 멀게 느껴지지 않는 걸까? 아니, 이 총체적 공감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 책은 ‘뉴베리 상’ 3관왕에 빛나는 작가의 작품답게 촘촘하면서도 풍부한 스토리라인을 보여준다.

가볍게 스치듯 지나칠 수 있는 대사 하나에도 깊은 의미를 심은 작가 제니퍼 홀름의 〈써니 사이드 업〉은 단순하면서도 재치 있게 묘사한 매슈 홀름의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완성도를 더했다. 두 작가는 남매 사이다. 어른이 되기까지, 가족의 아픔을 껴안고 성장하는 ‘한여름의 풍경’을 묘사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묘하게도 글 작가와 그림 작가가 가족이라는 점에서 타마키 자매의 그래픽노블 〈그해 여름〉을 떠올리게 한다. 〈그해 여름〉이 부모의 아픔과 고통을 이해하며 커가는 소녀 로즈의 성장통을 그리고 있다면, 〈써니 사이드 업〉에서 주인공 써니는, 가족의 골칫덩이여서 늘 숨기고 싶은 약물중독 오빠 데일 르윈의 고통을 마주하고 있다.

〈써니 사이드 업〉 제니퍼 L. 홀름 지음, 매슈 홀름 그림, 조고은 옮김, 보물창고 펴냄


펜실베이니아에 사는 써니는 친구와 함께 바닷가에서 여름휴가를 보낼 생각에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다. 부모는 큰아들 데일의 문제로 ‘어른처럼 혼자 비행기를 타보라’며, 써니를 할아버지가 살고 있는 플로리다 실버타운 ‘파인 팜즈’로 홀로 보낸다. 온통 노인들이 가득한 그곳에는 낭만적인 휴가와는 거리가 먼 일들만 가득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써니는 아주 특별한 여름을 맞는다.

짧은 챕터 여러 개로 나뉜 이 그래픽노블은 끝없이 현재와 과거를 오간다. 예고 없이 겹치는 플래시백은 독자가 써니의 환경과 마음을 더욱 이해하기 쉽게 한다. 작품은 정말 유쾌한 톤으로 많은 사건을 다루지만, 그 안에 담긴 주제는 가볍지 않다. 홀름 남매의 자전적 이야기이기도 한 이 작품은 약물중독이 한 가정의 울타리를 어떻게 허물어뜨리는지를 보여준다. 등장인물의 내면과 상황에 대한 세밀한 묘사는 주변 사람들이 느끼는 슬픔과 두려움, 혼란스러움 등의 감정을 현실적으로 표현해낸다.

처음 할아버지 집에 도착한 써니는 거실 소파에서 잠을 청하려 한다. 할아버지는 소파의 용도가 보기와는 달리 침대라고 설명한다. 이 장치는 책의 끝부분에서 다시 언급되는데, 써니는 이 침대가 데일(오빠)과 똑같다고 말한다. 우리 삶에서 보이는 것과 그 실체는 다른 것이다.

“바로 우리가 히어로”

 


파인 팜즈에서 우연히 만나 친구가 된 관리인의 아들 버즈와 겪는 좌충우돌 에피소드에서는 마음이 따듯해지는 감동과 재미가 넘친다. 특히 만화광인 버즈와 나눈 대화에서는 수많은 슈퍼 히어로가 언급되는데(우리에게도 친숙한 캐릭터인 헐크·원더우먼·스파이더맨· 배트맨·슈퍼맨 등이 등장한다), 좀 색다른 관점을 보여준다. 배트맨은 어린 나이에 부모가 살해당하는 걸 목격했고, 스파이더맨은 벤 삼촌이 살해당할 때 삼촌을 구하지 못했고, 슈퍼맨은 자기 행성을 통째로 잃어버렸으며… 그러니까 그 누구보다 가슴 아픈 기억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 슈퍼 히어로라고 모두를 구할 수는 없다는 것. 써니는 말한다. “바로 우리가 히어로”라고.

칙칙하기만 할 것 같은 노인들로 가득한 실버타운에서 써니는 잃어버린 고양이를 찾아주어 그들을 행복하게 하고, 정신이 오락가락해 길 잃은 할머니 미라 씨를 찾아내 “여기는 플로리다예요”라고 말한다. 만화는 그저 태양 하나를 그려놓고 있다.

세월이 흘러도, 지구 그 어디에서도 그 태양이 변함없는 것처럼, 세상의 많은 ‘써니’들이 그렇게 아픔을 딛고 태양을 향해 일어선다.

기자명 김문영 (이숲 편집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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