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한국에 〈애프터 미드나잇〉이라는 이름으로 개봉된 이탈리아 영화가 있다. 주인공은 토리노에 있는 영화박물관 직원인데 무성영화광이다. 이 영화는 치정극이기는 하지만 그가 자정 넘어 트는 무성영화가 영화 안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무성영화 시대를 다룬 또 다른 유명한 영화로는 2012년 아카데미상을 휩쓴 〈아티스트〉가 있다.

현대 영화 속에서 이렇게 재연되는, 진짜 무성영화의 보존이 실은 엉망진창이다. 미국 의회도서관의 ‘1912~1929년 미국 무성영화 필름 보존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에서 만들어진 무성영화 원본의 70% 이상이 소실되었다. 가령 MGM 사의 경우는 68%가 남아 있지만, 파라마운트 사는 29%만 남아 있다. 나머지는 전부 소실되었다. 〈이스트사이드-웨스트사이드(East Side-West Side)〉(1923)와 같은 명작 무성영화도 원본은 사라지고 가정 상영용 필름만 있다.

무성영화 보존율이 낮은 까닭

무성영화광이 주인공인 영화 〈애프터 미드나잇〉의 한 장면.


프랑스의 경우 1895년부터 1905년까지 뤼미에르 영화사에서 제작한 1428편 중 1400편이 국립영화센터(CNC)에 남아 있다. 하지만 민간 영화사의 보존은 부실하다. 예를 들면 파테 영화사는 1896~1929년에 만든 9000편 중 3000편만을 보관하고 있고 나머지는 소실했다. 국가가 나서서 기록물을 관리하는 편이 좋기는 한데, 그렇다면 어째서 이렇게 보존율이 낮을까? 단순히 민간이 맡아서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 당시 필름을 만들고 보관하던 방식 때문에 원본 보존율이 낮았다. 무성영화 필름은 발화성 물질로 만들어졌다. 무성영화 시대를 다룬 것은 아니지만 타란티노 감독의 〈바스터즈:거친 녀석들〉을 보면 영화 필름을 폭발시켜 히틀러를 암살하려는 장면이 나온다. 히틀러 암살은 상상이지만, 영화 필름이 폭발하는 장면은 고증을 거쳤다. 이런 발화성 필름은 1950년에야 교체되었다. 그 시대 이전 필름은 발화 가능성이 높았다.  

게다가 특유의 점착 현상 때문에 필름이 젤라틴화해 오리지널본과 카피본을 같이 놓았을 경우 서로 붙어버리기도 했다. 물론 다른 영화 필름과 같이 놓아도 마찬가지였다. 무성영화 보존이 엉망인 데는 이런 기술적인 것뿐 아니라 다른 이유도 있었다. 어쩌면 이 이유가 더 결정적이었을 터이다.

바로 검열이다. 미국의 경우 1934~1966년 검열지침(Motion Picture Production Code)이 있었다. 보통 ‘헤이스 지침(Hays Code)’이라 불렸는데 검열을 받지 않으면 상영 불가는 물론이고 일부 영화사(가령 워너)는 필름 원본을 파기하기도 했다.

프랑스는 그나마 1906년 이래 검열지침이 없었다. 프랑스가 미국보다 낫다고는 하지만 일부 프랑스 영화사는 저장 공간이 부족하다며 옛날 필름을 불태우기도 했다. 다만 고몽 영화사는 자사 영화가 아니더라도 1920년대 이후 제작된 영화 필름을 일부러 인수하려고 노력했다.

각국은 뒤늦게 국가 차원에서 무성영화 필름을 포함해
필름 보존에 나섰다. 프랑스는 1977년 이후부터 필름 기탁 및 보존을 의무화했고 미국은 1990년부터 시행했다. 이렇게 프랑스가 미국보다 무성영화를 잘 보존한 것은 국가 예산 투입 외에도 조기에 검열을 없애는 등 여러 가지 우연이 겹쳤기 때문이다.

기자명 위민복 (외교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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