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아주 어릴 때 일입니다. 우리 가족은 응골이라 불리던 산동네에 살았습니다. 우리 집은 동네에서도 꼭대기에서 세 번째 집이었습니다. 고도가 꽤 높아서 경치가 참 좋았습니다. 
 
그런데 그 높은 곳까지 낡은 옷을 입고 세수도 하지 못한 아저씨들이 제법 자주 찾아왔습니다. 우리 집보다 더 가난한 아저씨들이었습니다. 저는 무서워서 엄마와 할머니 뒤에 숨었지만 엄마와 할머니는 그분들을 반갑게 맞았습니다. 그리고 아저씨들의 사발에 밥이랑 김치를 듬뿍 담아드렸습니다. 엄마와 할머니는 멀어져가는 아저씨들을 오래도록 지켜보았습니다. 
 
그림책 〈할머니의 식탁〉 표지에는 어느 할머니가 요리를 하고 있습니다. 냄비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릅니다. 아마도 수프를 만드는 모양입니다. 할머니는 냄비 앞에 서서 한 손으로는 국자로 수프가 눌어붙지 않게 젓고, 다른 손으로 간을 봅니다. 간을 보는 할머니의 얼굴이 참 보기 좋습니다. 눈은 지그시 감았습니다. 양쪽 입꼬리는 웃을 듯 말 듯 살짝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끄덕이는 듯 턱선이 흔들립니다. 모든 게 만족스러운 모양입니다. 

 

〈할머니의 식탁〉 오게 모라 지음, 김영선 옮김, 위즈덤하우스 펴냄
오게 모라 작가는 모든 표현을 콜라주로 했습니다. 종이에 칠을 하고 오려서 붙였습니다. 질감을 표현하기는 했지만 색은 원색이 아닌 단색을 썼습니다. 예컨대 할머니의 흰머리는 흰색을 바탕으로 하고 아주 연한 노란색으로 질감을 표현했습니다. 표지 전체가 차분하고 부드러운 느낌입니다. 수프만 빼고 말입니다. 수프만 단색이 아닌 꽃무늬로 표현했습니다. 어두운 갈색에 붉은 꽃무늬입니다. 수프에서 희뿌연 김이 피어오르자, 조명을 비춘 것처럼 수프의 진짜 색깔이 드러납니다. 바로 붉은색 바탕에 하양, 파랑, 분홍, 연두 꽃무늬입니다. 
 
온 동네 사람 유혹한 할머니의 토마토 스튜
 
본문을 펼쳐 보니 수프처럼 보였던 음식의 정체는 토마토 스튜입니다. 할머니 이름은 오무입니다. 오무 할머니가 끓인 스튜의 냄새가 아주 좋습니다. 할머니의 스튜 냄새는 여기저기로 퍼져나가 동네 사람들을 유혹합니다. 곧이어 맛있는 스튜 냄새를 따라 꼬마가 찾아오고 경찰관이 찾아옵니다. 오무 할머니는 그때마다 맛있는 토마토 스튜를 자꾸자꾸 내어줍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찾아올까요? 
 
7월23일, 저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주관하는 ‘찾아가는 한국도서전’에 참가하기 위해 베트남 하노이에 왔습니다. 여기서 한 서점에 들렀습니다. 이따금 하드커버 그림책이 있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책 가운데 철심을 박아 만든 소프트커버였습니다. 책 가격은 우리 돈으로 1000∼3000원 사이였습니다. 제가 아주 어릴 때의 책값처럼 말입니다.
 
아침밥을 먹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지금 먹고 있는 음식이 어쩌면 어릴 때 엄마와 할머니가 그 아저씨들에게 나눠준 밥과 김치가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엄마와 할머니가 내어준 밥은, 자신이 먹을 밥이자 사랑이었습니다. 우리의 살림살이가 더 나아진 건 서로 밥을 통해 사랑을 나누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오무 할머니가 전하는 사랑처럼 말입니다. 
기자명 이루리 (작가∙북극곰 편집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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