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흑인 남성이 고개를 숙인 채 검은 장갑을 낀 주먹을 하늘 높이 치켜들고 있다. 처음 이 사진을 본 이들은 ‘뭘 하는 것일까?’라며 궁금증을 가질 법하다. 지금은 너무나 유명한 사진이다. 사진 속 두 선수는 1968년 멕시코 올림픽 남자 200m 경기에서 각각 금메달과 동메달을 차지한 토미 스미스와 존 카를로스다. 이들은 올림픽 시상식에서 당시 만연한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타임·라이프사의 사진기자였던 존 도미니스가 촬영한 사진이다. 4년에 한 번 열리는 올림픽 경기를 담은 사진은 다소 오락성과 대중성에 기반을 둔 사진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도미니스가 찍은 이 사진은 인종차별이라는 정치적 문제를 포착해, 당대를 보여주는 중요한 기호학적 가치를 가진다.

두 선수는 정치적 의사를 드러내기 위해 미국 흑인 사회를 상징하는 다양한 검은색 소품을 사용했다. 스미스와 카를로스 모두 검은색 장갑을 착용했다. 스미스는 흑인 사회의 힘을 보여주기 위해 오른쪽 주먹을, 카를로스는 통합을 의미하기 위해 왼쪽 주먹을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스미스가 두른 검은색 스카프는 흑인의 자부심을 뜻한다. 신발을 벗고, 검은색 양말만 신은 그의 모습은 인종차별로 심화된 흑인 빈곤 문제를 표상한다.

두 선수의 퍼포먼스에 따른 대가는 혹독했다. 당시 시상식이 열린 경기장에서 야유가 쏟아졌다. 일부 미국 관중은 이들이 국가(미국)의 치부를 드러내고 불명예를 안긴 분별없는 행동을 했다며 미국 국가를 크게 제창하기도 했다. 올림픽 경기에서 정치적 행위를 금한다는 이유로 이들은 메달을 박탈당했고, 선수촌에서 추방당했다. 선수 자격도 정지당했을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살해 위협에 시달리기도 했다.
 

ⓒAP Photo1968년 멕시코 올림픽 남자 200m 경기에서 각각 금메달과 동메달을 차지한 미국의 토미 스미스(가운데)와 존 카를로스(오른쪽) 선수가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흑인과 제3세계에 희망을 던진 사진

사진을 본 이들의 다른 반응도 있었다. 많은 사람이 두 사람의 행동에 큰 감동을 받았고, 이들을 칭송했다. 이 사진은 미국의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각성을 불러일으켰고, 많은 사람이 ‘인권을 위한 올림픽 프로젝트’라는 단체에 가입했다. 나아가 이 사진은 불평등과 억압에 시달리며 살던 남아프리카의 흑인 사회와 제3세계 국가들에 큰 희망을 던져주었다. 사진 속 두 육상 선수처럼 자신의 권리를 위해 싸우고,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쳐야 한다는 당위성을 부여했다.

영상 비평가인 리즈 웰스의 말처럼 “사진은 예술의 한 형태 그 이상으로, 역사적 문제뿐만 아니라 사회적·도덕적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이 사진도 그랬다. 많은 사람이 인종차별 문제를 ‘내 문제’로 생각했고, 불평등한 현실을 바꾸는 행동에 나서도록 했다.

롤랑 바르트도 사진의 특질을 다음과 같이 함축해 말한다. “언어는 사진과 같은 확실성을 주지 못한다. 언어는 그 자체를 인증할 수 없는 반면, 사진은 그 자체가 ‘하나의 인증’이다.” 결국 사진은 하나의 사건을 단순히 포착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며, 당시 시대상을 이해할 수 있는 그림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사진은 글이 만들어낼 수 없는 진실과 현실감을 창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은 사진 한 장이 때로는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과 정치적 견해를 바꾸게 한다.

기자명 김성민 (경주대학교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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