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17일 아프가니스탄에서 영국군 정보부대 소속 사라 브라이언트 하사(26)가 장갑차를 타고 순찰하던 중 탈레반이 설치한 폭발물에 의해 동료 세 명과 함께 목숨을 잃었다. 아프간 주둔 영국군의 최초 여군 사망자인 브라이언트 하사는 금발머리와 영화배우 같은 미소를 가졌다. 그녀의 2년 전 결혼사진이 일간지와 방송을 뒤덮었다. 영국인들은 그녀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았고 왜 아프간에서 영국군이 죽어야 하는지 다시 회의했다.

영국군 9100여 명은 전투가 가장 치열한 아프간 남부 헬만드 지역에 주둔하고 있다. 아프간 전쟁 개전 이후 전사자가 220명을 기록하면서 미국 다음으로 많은 전사자를 냈다. 브라이언트 하사에 대한 관심과 동정은 영국 내 아프간 철군 여론을 키우는 기폭제가 되었다. 이를 반영하듯 여론조사 기관 BPIX가 영국 성인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인터넷 여론조사 결과 영국인 3명 가운데 2명꼴로 아프간 전쟁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고든 브라운 총리가 아프간 전쟁을 매우 잘 이끌었다고 생각하는 영국인은 고작 1.5%였다. 미국의 가장 큰 동맹국으로 아프간 전쟁에 그 어느 나라보다 적극적이던 영국조차 전쟁이 길어지자 한계에 이른 것이다.

지난 6월17일 전사한 사라 브라이언트 하사.
지난 7월 ‘브라운 총리가 아프간 대선 이후 영국군 1500명을 철수시키기를 원한다’라는 인디펜던트 보도는 영국 내 아프간 논란을 부채질했다. 한때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신청설이 나돌기까지 한 영국 정부는 추가 파병을 놓고 더 큰 재정 출혈을 감수해야 할 것인지를 놓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결국 영국 정부는 미국이 요청한 2000명 규모의 영국군 추가 파병을 군 내부 반발을 무릅쓰고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영국의 추가 파병 거절은 아프간 전쟁을 수행하는 미국에 직격탄으로 작용했다. 아프간 주둔 미국 사령관 매크리스털 장군은 최근 백악관에 4만여 명 규모의 추가 파병을 요청했다. 그는 “추가 파병을 하지 못하면 이 전쟁은 실패로 돌아갈 것이다”라는 최후통첩과 함께 오바마 대통령의 대답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미국의 친구’들, 돈과 병력 내놓지 않아

미국 처지에서 2만명을 파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본토로부터 다시 추가로 4만명을 아프간으로 보내기는 쉽지 않다. 결정을 차일피일 미루며 동맹국의 눈치를 살피는 와중에 가장 믿었던 영국이 추가 파병을 거절하자 아프간 전쟁 자체가 큰 난관에 봉착했다. 미국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병력과 돈이다. 하지만 이 돈과 병력을 선뜻 내놓는 동맹국이 없다. 현재 아프간에는 23개국 연합군이 주둔하지만 미국의 바람과는 달리 다들 아프간에서 발을 뺄 구실을 찾고 있다.

약 2700명을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군으로 남부 칸다하르에 파병한 캐나다의 경우 아예 총리가 나서서 “아프간 전쟁은 절대 승리할 수 없다”라고 장담했다. 지난 3월 캐나다 총리 스티븐 하퍼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아프간 무장반군이 패배할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캐나다는 확실한 출구 전략이 없는 한 추가 병력을 보내지 않을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단지 병력이 주둔하는 것으로 아프간 전쟁을 이기지 못한다. 우리는 절대로 반군을 패퇴시킬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아예 오는 2011년에 캐나다군을 모두 철수시킬 것을 의회에서 통과시켰다. 철군 시기까지 못을 박고 아프간에 더 이상 캐나다군이 주둔하지 않을 것임을 천명했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는 “아프간에서 즉각 철수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위는 아프간에서 전사한 이탈리아 병사의 시신 운구 모습.
하퍼 총리가 이렇게 대놓고 철군을 언급하는 이유는 그동안 아프간에서 캐나다군 사망이 늘어나며 철군 여론이 그의 정치 생명을 위협했기 때문이다. 아프간에서도 가장 위험한 칸다하르에 주둔한 캐나다군이 병사 131명과 외교관 1명을 잃자 여론이 나빠졌다. 아프간이 자주 국방력을 갖출 때까지 주둔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하퍼 총리도 철군 여론이 강해지면서 정치적 압박이 가중되자 2011년 말까지 아프간에서 철군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기자명 김영미 분쟁지역 전문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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