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커피명가 대표 안명규씨에게 연락했더니, 2010년 5월에 문을 연 ‘Camp by 커피명가’로 안내했다. 대구시 삼덕동 커피명가 본점에서 만나겠거니 여겼는데 뜻밖이었다. 이유가 있었다. 새로운 커피점은 바깥 풍경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안명규는 ‘씨~익’ 웃기를 잘 하는 사람이다. 그날도 그는 그렇게 웃으며 한마디 했다. “느낌 좋지요?”

느낌이 좋았다. 아니 조금 놀라웠다. 외국에서 산 지 10년이 다 되어가는 내 눈에도 주변 분위기는 이국적으로 보였다. 대구 중구 계산동2가 50번지. 〈매일신문〉 사옥 1층에 자리 잡은 캠프바이커피명가는 그 남동쪽이 계산동 주교좌성당의 마당과 연결되어 툭 트여 있다. 사적 제290호 쌍탑 고딕 성당의 110년 역사가 빚어내는 고즈넉한 분위기가 커피 향과 잘 어울렸다. 어떻게 이런 자리를 찾아냈을까 싶었다.
 

ⓒ시사IN 백승기대구 계산동 〈매일신문〉 사옥 1층에 자리잡은 캠프바이커피명가는 주교좌성당의 마당과 연결되어 툭 트여있다(위). 고딕 성당의 분위기가 커피 향과 잘 어울린다.


1990년 7월23일 대구 경북대 근처에 처음 문을 연 스페셜티 커피 전문점 커피명가는 전국 23개 프랜차이즈 가맹점을 거느린 (주)커피명가로 변신했다. 캠프바이커피명가는 직영점 세 곳 가운데 하나이다. 같은 이름을 사용하는 26개 점 중에서도, 캠프바이커피명가는 커피명가가 쌓아온 20년 전통과 문화를 가장 잘 드러내는 듯 보인다.

2000년 가을, 커피 잘한다는 소문을 듣고 대구 삼덕동 커피명가(그때는 유일했다)를 찾아갔을 때도 안명규씨는 커피 얘기 대신 바깥으로 열린 창문을 보면서 똑같은 말을 했다. “느낌 좋지요?” 거의 태우다시피 볶은 커피가 좋은 커피의 대명사로 통하던 그 시절, 부드럽고 약간 신맛 나는 커피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다. 바로 그 커피를 맛보러 간 사람에게 그는 이렇게 엉뚱한 소리를 했었다.

10년이 지난 뒤 다시 그를 만나면서 그 엉뚱함이 커피명가(明家)를 커피의 명가(名家)로 바꾼 에너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처음부터 그의 목표는 좋은 커피 만들기가 아니었다. 커피는 그의 꿈을 실현하는 도구에 불과했다. “고교 때부터 사람들이 모이고 쉬고 생각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그 공간의 ‘지기’가 되는 게 꿈이었다. 커피를 통해 사람들에게 따뜻함을 선물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20여 년 전 커피 값 5000원 받던 ‘또라이’

시작 또한 엉뚱했다. 고향인 경주에서 친구들의 부추김을 받아 ‘공간’을 만들었다. 고교 은사께서 “커피 값으로 5000원을 받아라”라고 말씀하셨다. 속으로 ‘미쳤다’고 생각하면서도 커피 값을 진짜 5000원씩 받았다. 경주 특급호텔 커피 값이 750원 하던 시절이었다. 손님은 드문드문 왔다. 1년 동안 그렇게 기다렸다. “그러는 사이에 생각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손님만 올 수 있게 한다면 뭐든 할 수 있었다. 선생님이 생각하라고 일부러 그렇게 말씀하셨다는 걸 알았다.”

 

 

ⓒ시사IN 백승기안명규 대표(오른쪽)는 전 세계 커피 농장에 학교 짓는 일을 한다. “소비자가 커피 농부를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당시 일본의 유명 커피회사인 UCC가 원두커피를 보급하려고 한국에 들어와 있었다. “저것이 핵심이다 싶어 나도 커피를 볶아야겠다고 결심했다.” 5000원짜리 커피를 팔며 구상한 갖가지 기획과 맞물려 구체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1990년, 나이 스물일곱살 때였다.

그는 경북대 부근에 터를 잡았다. 밝을 명(明)을 쓰는 명가라 이름 지었다. “사람들에게 밝은 느낌을 주고 좋은 기운을 갖게 하고 싶었다.” 커피를 팔면서 ‘장사를 한다’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밝은 느낌을 주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자꾸 엉뚱한 곳으로 나아갔다. 장사의 기술과 멀어질수록 장사가 더 잘되는 엉뚱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볶는 기계를 개발해 커피를 직접 볶았다. 주변 상인들로부터 ‘또라이’ 소리를 들으며 33평 공간에 생화 화분 수십 개를 들여놓고, 화장실을 호텔식으로 만들었다. 방학 때 하루 10~20명씩 드나들던 손님이 방학이 끝나자 폭발했다. 개강 첫날에 100명, 그 다음 날에는 150명. 화장실 때문에 오는 학생도 많았다. 그가 생각한 분위기가 무너졌다. 여유롭고 밝은 분위기를 되살리려면 손님을 못 오게 하는 수밖에 없었다. 다른 곳에서 300원 하던 시절 1000원을 받던 터여서 커피 값을 더 올리면 ‘치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안을 내렸다. 커피점 금연. 병원 응급실에서도 담배를 피우던 시절이었다. 손님의 70%가 떨어져 나갔다. 그런데 그 전략은 서서히 먹혀들었다. 고전음악이 흐르는 곳에서 바리스타가 직접 손으로 내리는 커피를 보고 마시며 손님들은 공간을 ‘소비’하기 시작했다. 공간 소비니 하는 용어들을 문화 이론가들의 글에서나 볼 수 있던 시절, 대중은 커피명가에서 벌써 공간을 직접 소비하고 있었다. 커피를 매개로….

그 공간의 전통이 110년 역사의 계산동 주교좌성당의 바깥 분위기와 만나 캠프바이커피명가를 이루고 있다. 이름이 커피명가 ‘청담동점’ ‘동성로점’ 따위와 다른 이유가 있다. 캠핑 갈 때의 두근거림 혹은 즐거운 마음을 갖게 하는 공간, 여러 사람이 모여 회의를 하는 작전 캠프 같은 이미지를 주기 위해서이다. 더불어 캠프바이커피명가의 실내 분위기는 건물 1층 갤러리와 연결되면서 가볍고 발랄하다.

세계의 커피 농장에 학교를 지어주는 작전 캠프도 이곳에 마련했다. 오전 8시부터 1시간 동안 커피명가의 커피는 1000원이다. 아침 1시간 동안 모이는 그 돈은, 커피명가와 직거래하는 다른 나라 커피 농장으로 나가 학교 선생님 월급을 주는 데 사용된다. “이제는 커피를 내리거나 볶는 것 말고 질 좋은 생콩을 구하는 것이 커피 맛을 좌우한다. 그 맛을 위해서라도 소비자가 커피 농부들을 지킬 책임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라고 안명규씨는 말했다.

 

 

 

 

Camp by 커피명가대구시 중구 계산동2가 50 매일빌딩 1층 / 전화 053-422-0892 / www.myungga. com교통편: 대구지하철 1호선 반월당역 하차. 매일신문사까지 걸어서 7~8분. 동대구역에서 택시로 15분(5㎞). 요금 4000~5000원.특징: 20년 전통의 수준 높은 스페셜티 커피를 느낌 좋은 공간에서 즐길 수 있음. 오전 8~9시에 커피 가격 1000원. 실내 금연. 원두 온라인 쇼핑 가능.

 

 

기자명 성우제 (커피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sungwooj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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